그녀의 변신은 무죄 (隨筆)
影園 김인희
그녀의 저녁 산책코스로 궁남지는 황홀한 공간이다. 그녀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조이고 씩씩하게 운동을 시작한다. 그녀는 근처 중학교 운동장으로 간다고 마음먹지만 늘 무산되고 만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걸음은 궁남지를 향하여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
궁남지 입구에서 가장 먼 거리를 운동코스로 선택하고 한 치 망설임이 없다. 그녀의 키보다 훨씬 큰 연꽃이 키 작은 그녀를 무색하게 한다. 낮에는 홍련과 백련의 빛깔이 청록의 연잎 사이에서 해와 달처럼 빛난다. 밤에는 그 빛깔이 모두 향기로 승화되어 연꽃 사이를 걸을 때마다 온몸을 휘감는 은은한 향기에 매료된다.
여름에는 버드나무 가지마다 안고 있는 매미들이 어찌나 울어대는지 귀가 따가웠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들어앉으려는 찰나의 계절은 경건하다. 아직 삶의 유효기간이 남은 매미들이 목청 높여 소리로 역사를 쓰고 있다. 일찍 찾아온 가을 전령사들의 소리는 매미의 노래와 화음을 이루면서 차가운 공기를 불러들이고 있다.
궁남지 산책로 따라 설치한 경관조명은 여러 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녀가 내딛는 발걸음이 보랏빛이 되었다가 푸르게 변하고 선홍빛으로 물들었다가 다시 초록색으로 변했다. 마치 경관조명의 빛깔에 따라 연꽃의 향기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순간 그녀는 경관조명의 오색 빛깔이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상상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는 아침마다 집안일에서 손을 떼고 화장하고 출근 준비하면서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한다. 직장에서는 지자체에서 파견한 전문 사회복지사다. 정부와 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을 연결하는 업무가 그녀의 주된 일이다. 그녀는 업무로 인하여 장거리 출장과 지자체에 가는 일이 잦은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고 있다.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곧 그녀의 경쟁력이라 여긴다.
그녀가 퇴근하고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으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줌마의 대명사가 된다. 가족을 위하여 식단을 준비할 때 우선순위가 건강한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주방에서 조리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대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때도 그녀의 허밍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이불빨래를 할 때면 커다란 함지박에 이불을 넣고 힘차게 발로 밟으면서 세탁을 한다. 가족들은 그녀를 보고 힘들게 하지 말고 세탁소에 맡기자고 성화다. 이불은 살갗에 직접 닿고 긴 시간 동안 가족의 숙면을 책임지니 정결하게 세탁해야 한다는 그녀의 반박에 가족은 꼼짝하지 못한다. 나날이 그녀의 작은 손이 도톰해지고 손가락이 굵어지고 있다.
그녀가 시와 함께 무대에 서는 순간은 전문 시낭송가가 된다. 시에 어울리는 무대의상을 준비하고 배경음악의 선율에 그녀의 목소리가 얹어질 때 관객은 환호한다. 그녀가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대기실까지 따라와서 박수하는 관객이 있었다. 한 편의 시를 껴안고 몇 날 며칠을 외우면서 시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찾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녀가 PPT자료를 들고 강의를 하는 날은 강사답게 변신한다. 강단에 서는 순간까지 강의록을 손에 들고 낮이나 밤이나 공부한다. 단정하고 전문적인 용모로 변신하고 대상에 따라 강의의 수위를 조절한다. 전문적인 강의 못지않게 이벤트를 준비하고 선물을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녀는 효와 인성, 하브루타, 백제 역사, 아동 인권 등 주제를 들고 당당하게 강단에 오르고 있다.
그녀의 도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 토요일에는 격주로 대학원에 공부하러 간다. 그녀가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박사과정 공부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만류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가족은 물론 시댁과 친정을 비롯하여 지인들은 당연한 일인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박사과정 공부를 앞두고 나이 때문에 주저하고 경제 때문에 망설였던 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대학원에 가는 시간은 오롯이 그녀만의 것이다. 일주일 동안 쌓인 부유물을 말끔히 제거하는 거룩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동하는 시간의 절반은 기도하는 시간이다. 그녀의 현재의 모습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임을 믿는다. 그녀가 걸어온 길에 찍힌 그녀의 발걸음마다 동행하고 그녀의 기도를 모두 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린다. 그녀의 끊임없는 요구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하나씩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 그녀의 모든 것을 아시고 그녀의 모든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예배의 시간이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절반의 시간은 시낭송 연습을 한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낭송했던 시를 한 편씩 낭송하면서 시어가 가지고 있는 고, 저, 장, 단, 완, 급, 쉼의 원칙을 고수하고자 노력한다. 암송했던 시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녀의 목소리가 시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다. 프랑스의 학교 교육은 모국어로 쓴 한 편의 시를 암송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 말에 격동하면서 시낭송으로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할 수 있으리라 예견하고 있다.
그녀가 대학원에 도착하여 책상에 노트를 꺼내놓고 딱딱한 의자에 앉으면 비로소 가장 순하고 착한 학생이 된다. 수업 시간마다 교수님의 강의를 따라잡으려고 눈망울 영롱하게 굴리면서 열정적으로 수강한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빼곡한 수업 일정을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녀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조소하는 날들이다.
최근에는 부여학(扶餘學)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부여 문화원에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2시간씩 부여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절감한다. 지금까지 부여를 백제의 도성으로 한계를 정했던 그녀의 생각을 깨뜨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부여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있다. 부여학 강의가 끝 날 때쯤이면 그녀의 부여는 백제, 고려, 조선을 품은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새롭게 거듭날 것이다.
부여학 강의가 없는 날 저녁은 운동하기로 했다. 직장에서 온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낮에 붙들었던 글제를 모자이크하느라 분주하다. 밤이 늦도록 강의를 듣고 글을 쓰는 일상이다. 어느 순간에 건강을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근처에 사는 친구와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면서 씩씩하게 걷고 있다. 그녀는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는 짜릿한 순간의 감촉을 위하여 걷는다.
그녀는 작은 꽃을 시로 납치하는 시인이다. 삶의 여정과 사랑을 스케치하는 수필가다. 펜에 힘을 주는 칼럼니스트다. 한 편의 시로 관객을 사로잡는 시낭송가다. 가을 서리처럼 차가운 강사가 되었다가 봄바람처럼 따뜻한 수강생이 된다.
그녀가 창조하는 변신의 절정은 귀여운 연인이다. 사랑하는 남편 앞에서는 언제까지나 귀여운 연인이 되고자 한다. 그는 업무를 척척 해내는 능력 있는 그녀보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그녀보다 귀여운 연인인 그녀가 좋다고 했다. 하여 사랑하는 그 앞에서는 늘 철없는 귀여운 연인이 되고자 한다.
깊은 밤 12시 밤하늘 별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그녀가 일과를 마무리하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시간이다. 사방이 온통 고요한 가운데 그녀의 떨리는 기도가 한 편의 시가 되는 밤이다. 범사에 감사가 넘친다. 아프고 억울한 일, 그 하나도 그분께 고한다. 그녀로 하여 그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에 감사와 찬미를 드린 후 별을 껴안고 꿈나라로 떠난다.
함초롬한 가을 냄새가 나는 여인! 귀여운 그녀의 변신은 無罪.
첫댓글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문의가 있어서
재탑재 합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사방이 온통 고요한 가운데
그녀의 떨리는 기도가 한편의 시가 되는 밤이다
...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에 감사와 찬미를 드린 후 별을
껴안고 꿈나라로 떠난다
좋은수필로 수상함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꿈의 안테나를 올리고 지내겠습니다.
희망, 희열, 도전, 욕망, 힘 등 청춘의 조건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