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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건설의 재료들(1-9)
우리의 헌신과 예배는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과 헌신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성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곧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5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1-9)
성막 건설에는 총 일곱 가지 종류의 건축 자재와 물품들이 필요했습니다. 그 종류는 귀금속, 실, 가죽, 조각목, 기름(감람유), 향품들, 보석들로. 이들은 각각 가치의 순서에 따라 나열되었습니다. 금, 은, 동은 귀금속의 가치에 따라 배열되었으며, 이러한 금속 재료들은 성막의 삼중 구분에 따른 거룩의 등급에 맞게 사용되었습니다. 성막에서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는 순금이 사용되었고, 내성소에는 금과 은이, 마당과 번제단에는 놋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막의 각 부분은 그 거룩의 등급에 따라 각기 다른 재료로 세심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색실은 아마 양모로 만든 털실(wool)을 염색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가 염료의 가격 순서대로 청색, 자색, 홍색 실의 순서로 나열됩니다. 가늘게 꼰 베실은 비교적 싼 실이며 ‘아마’(亞)에서 뽑은 삼베 실이었을 것입니다. 그 외 염소 털실이 앙장 제작에 사용됩니다. 염료는 매우 비쌌는데 특히 청색 염료는 엄청난 고가였습니다. 그것은 힐라존(hilazon)이라 부르는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크기의 바다 소라에서 채취한 짙은 파란색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의 분비물로 만들었습니다. 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1.4그램의 청색 염료를 만들기 위해서 12,000마리의 소라가 필요했습니다. 그 색깔들은 다양한 무늬와 최고의 아름다운 색상의 조화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자주색 옷은 물론이고, 홍색 옷도 최고급 옷으로서 부잣집과 권세 있는 집안에서 즐겨 입었습니다(잠 31:21-22). 따라서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청색, 자색, 홍색 실의 어우러짐, 가장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표현을 위한 색상의 조합이 일차적 목적입니다. 이것은 금은동의 귀금속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물리적 방법으로 발현시키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 가지 색상의 조합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해야 하며, 이것은 장차 그분의 영광의 광채를 드러내며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내다보고 있습니다(요 1:14). 세 가지 색깔과 예수님은 이런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가죽은 숫양 가죽과 해달 가죽, 두 종류가 사용됩니다. 숫양 가죽은 가죽 자체는 흔한 것이었을지 모르나, 비싼 붉은 염료로 색을 입혔기에 해달 가죽보다 비쌌습니다. 참고로, 히브리어 타하쉬를 해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홍해 연안에 대량으로 서식한 듀공(dugong: 물개와 비슷한 바다짐승)일 가능성이 크며, 그 가죽은 샌들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편의상 우리는 그것을 해달로 간주합니다.
성막에 사용된 모든 나무는 조각목(싯딤나무)이었습니다. 싯딤나무는 결코 광야의 잡목이 아닌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 고급 목재였습니다. 이 나무는 이집트에서 영생과 불멸을 상징하는 거룩한 나무가 되어 파라오 가죽을 때 이 나무로 관을 짰습니다. 이어서 필요한 재료는 기름(감람유)과 향품들, 그리고 보석류입니다. 향품 제조법은 출애굽기 30:34-36에 설명되어 있는데 거기서 살피기로 합니다. 호마노 보석은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데, 다른 보석들과 함께 에봇과 흉패를 장식하였습니다(출 28:9-12; 39:6-7).
조각목 법궤 제작법(10-1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튼튼한 기초를 세우고, 실제적이며 견고한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준과 질서에 맞게 우리의 신앙이 정밀하게 다듬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의 중요성을 상징하며, 이를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입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며 그분의 임재를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10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10-11)
법궤는 조각목으로 짠 사각형 상자가 기본 틀이었습니다. 성막 비품 중에 사각형의 물건들은 법궤를 포함하여 모두 조각목을 기본 틀로 짜서 제작합니다. 거기에 금속판을 붙이거나 금물을 칠하는 방식으로 비품의 가치를 크게 높입니다. 법궤의 크기는 크지 않았습니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5규빗/1.5 규빗/1.5규빗, 미터로 환산하면, 약 1.2미터/75센티미터/75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조각목 상자 안쪽과 바깥쪽에 금을 입힙니다. 랍비 모세 레빈(Moshe Levine)을 비롯한 어떤 유대 랍비들은 조각목 상자에 금물을 칠하거나 단순히 금박지로 입힌 것이 아니라 순금의 얇은 판으로 안쪽과 바깥쪽 면을 둘러쌌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세 개의 상자가 차례로 포개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유대 전통은 법궤 상자 안팎을 두껍게 금물로 칠했을 것으로 보는데(참고. Sarna) 법궤의 중요성과 특수성을 고려해볼 때 전자의 제작 방식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고리들과 고리에 끼우는 채(12-15)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항상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이 안정적이고 신뢰성 있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맡은 사역을 함께 협력하여 수행해야 하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2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13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4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12-15)
금으로 덮힌 법궤의 바깥 면에 금 고리 네 개를 걸 수 있는 ‘발’을 만들었습니다. 이 ‘발’은 떡상의 네 ‘다리’와 다릅니다. 이것의 정확한 정체와 법궤 바깥 면의 어느 위치인지가 정확하지 않아 랍비들과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랍비 이반 에즈라는 그 발은 법궤가 바닥 부분이 닿지 않도록 만든 네 개의 받침대 혹은 지지대(supports)였다고 생각하며 일부 영역본들이 이것을 따릅니다(NJB; NASB). 그러나 파암(파암)은 ‘발걸음’, ‘발자국’ 등의 기본 뜻을 지니면서 일정한 간격의 패턴을 가리킵니다. 이로 인해 아람어 번역인 탈굼(Targums)은 이것을 단순히 일정한 간격의 네 모퉁이(corners)로 간주했으며 일부 학자들과 번역본들이 이것을 따릅니다(KJV;RSV). 필자 역시 이 견해를 따른 법궤의 재구성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채를 끼울 고리를 달아야 하기에(12) 바닥의 낮은 지지대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법궤에 조각목으로 만든 두 개의 긴 채를 끼웠습니다. 모두 금으로 입혔는데 아마 금물을 칠했을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채를 법궤 양쪽 고리들에 끼워 넣고 그대로 두고 빼지 말아야 합니다(15). 다른 비품들도 채를 끼워 넣고 사용하는데, 성막과 그 비품들은 계속 이동하며 움직이는 물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들채는 흔히 알려진 대로 직사각형의 긴 부분이 아닌 짧은 부분의 양쪽에 달았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그룹들 사이에 앉아 있고 좌우에 그들이 호위하고 서 있는 가운데 왕이 행차하실 때 옆이 아닌 정면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속죄소의 양식과 배치(16-20)
속죄소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속죄와 화해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소가 되어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켰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의 거룩함과 영광을 인정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속죄소는 우리의 신앙이 항상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속죄와 화해의 은혜를 경험하며, 우리의 신앙 생활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16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16-20)
조각목 상자 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십계명 돌판을 넣어두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증거의 돌판’이라 불립니다. 특별히 그 돌판을 법궤 안에 둔 이유는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증표, 즉 ‘증거’ 역할을 했으며, 더불어 그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분명한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속죄소(카포레트)를 제작하는데 법궤 위에 놓인 일종의 뚜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출애굽기 37장에서 논의될 것입니다. 이것은 법궤 위에 놓였는데, 그 규격이 정확히 법궤의 규격과 일치했습니다. 즉, 길이와 너비가 각각 2.5 규빗(약 1.2m), 1.5규빗(약 70cm)이며 다만 두께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양쪽에 배치된 두 그룸(케루빔)이 세워지는데 모든 재료는 순금 덩어리였으며 밑판과 더불어 처음부터 세밀한 제금술과 세공술이 사용된 일체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마무리 작업과 약속(21-22)
하나님과의 교제와 화해가 언약의 중심에 있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만나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와의 관계를 깊게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용서를 중심에 두어야 하며, 그분의 임재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깊이 경험할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21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1-22)
증거판을 법궤 속에 넣은 뒤, 속죄소가 뚜껑처럼 그 위에 놓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완성된 법궤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십니다. 그 법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명령을 내리시며, 또한 왕으로서 백성들을 통치하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출애굽기 25장 1-22절은 성막과 법궤 건설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자발적인 헌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법궤와 속죄소는 하나님의 임재와 속죄를 상징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유지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기준과 질서에 맞게 정돈되어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임재와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그분의 은혜를 삶 속에서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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