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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주일
모든 것 위에
룻기 1장 11-18절, 골로새서 3장 8-14절
한 문 덕 목사
[설 명절과 평창 동계올림픽]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설을 잘 쇠셨는지요? “쇠다”라는 말은 명절이나 생일, 기념일 같은 날을 맞이하여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에는 설날과 같은 명절에도 넉넉하지 못하여 차례상도 차리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녹아 있고, 또 한편으로 새해를 여는 첫날을 잘 보내야 일년 내내 평안하니 설을 잘 보내기를 소원하는 민간의 신앙이 스며있습니다.
설날이 되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조부모, 부모, 친지에게 세배(歲拜, New Year's bow)를 할 뿐만 아니라, 옛날 마을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세배를 다녔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세뱃돈에만 관심이 많지만, 옛 어른들은 덕담을 들려 주셨지요.
세배라는 것은 오랜 세월을 사신 어른의 그 세월을 존경하는 뜻이 있고, 또 새해를 맞이하여 올해도 건강하시고, 오래도록 장수하시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배하는 사람은 어른의 장수와 건강을 비는 말씀을 드리고, 어른들은 세배하는 사람들의 신상과 소망에 맞는 덕담을 해 주었습니다. 제가 어른은 아니지만 설 명절과 관련하여 많은 시인들이 좋은 말씀들을 해 주시기에 이번 설 주일에도 시 한편을 여러분에게 덕담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이채라는 시인의 “이 명절엔 모두 행복하여라”라는 시입니다.
이 명절엔 모두 행복하여라 - 이채
날마다 오는 아침이라도/ 오늘은 새로운 아침이어라
바람처럼 헤어졌다/ 햇살처럼 만나니/ 반가운 마음 웃음꽃이 한창이네
평화의 아버지/ 지혜의 어머니/ 옹기종기 앉은 풀꽃 같은 형제들/ 이 따스한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말씀은 산이 되고/ 뜻은 숲이 되니/ 어진 나무여! 섬기는 대로 자라거라
기도는 빛이 되고/ 가르침은 길이 되니/ 그 길 따라 바르게 걸어가리
가슴꾸러미 가득한 선물/ 핏줄의 향기로 나누는 기쁨/ 돌아와 다시 피는 꽃이여!/ 이 명절엔 모두 행복하여라.
날마다 오는 아침이어도 설날 아침은 새로운 아침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불모지와 같았던 스켈레톤 경기에서 윤성빈 선수가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리들에게 금메달을 안겨 주고, 국민들을 향하여 세배까지 해 주었으니 감격이었고, 여자 컬링 대표팀이 세계 1위 캐나다, 2위 스위스, 4위이자 컬링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하여 한국 스포츠의 저력을 보여 주고 있으니 이런 저런 모양으로 행복한 설명절이 되고 있습니다.
윤성빈 선수를 언급한 것은 사실 그 선수를 발탁하고 키워 냈던 강광배 한국체육대학교 교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이 분은 2008년 국제봅슬레이연맹(FIBT) 아메리카컵 2차 대회에서 한국 팀이 사상 첫 국제대회 동메달을 획득할 때의 주인공입니다. 당시 우리에게는 전용 봅슬레이가 없어 500달러를 주고 빌린 봅슬레이에 태극기를 붙이고 출전했던 강광배 선수 겸 감독은 훈련할 경기장 하나 없이 아스팔트 위에서 연습하며 팀을 이끌어온 장본인입니다.
강광배 교수는 대학시절, 알파인 스키선수로 활약하다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인한 부상으로 스키를 그만둔 후 썰매종목인 루지로 재기했는데,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뒤, 1999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스켈레톤에 입문해 2년 동안 오스트리아 선수로 뛰었고, 2002년에는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2회 연속 출전해 20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뒀습니다. 2003년부터 봅슬레이로 전향해 2008년 놀라운 성적을 내었던 것입니다. 2010년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뒤, 2012년 3월 한국체대 교수가 되어, 2018년 평창을 준비하며 썰매부를 창단했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0위권에도 들지 못한 당시 고 3학생 윤성빈을 그의 순발력을 보고는 상비군으로 선발하여, 집에서 먹이고 재워 가면서 훈련을 시켜서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여자 컬링 선수들은 후보 선수인 김초희 선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상북도 의성여고 출신입니다. 인구가 5만 3천여 명밖에 되지 않는 의성군에서 별로 놀거리가 없었던 여고생 김은정(스킵, 현 28세)은 친구 김영미(리드, 27세)와 함께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합니다. 때마침 의성에 컬링 전용경기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컬링장에 물건을 전해주러 간 김영미의 동생 김경애(서드, 24세)도 컬링에 발을 들였고, 학교 칠판에 적힌 ‘컬링할 사람 모집’이라는 글을 보고 김경애의 친구 김선영(세컨드, 25세)도 컬링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취미로 시작한 활동이 직업이 되었고, 이 넷은 경북체육회 실업팀 소속 컬링 선수가 되었으며, 2015년 고교 유망주 김초희(후보, 22세)가 합류하면서 “팀 킴(Team Kim)”이 완성되고 10년 뒤에 이번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선수들이 컬링 등록 선수만 150만에서 200만인 캐나다를 꺾었고, 유럽컬링 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딴 고든 뮤어헤드의 딸 이븐 뮤어헤드가 주장이 되어 지난 2014년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영국 컬링팀도 모두 격파하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 여성 컬링은 모두 8개국이 출전했는데, 우리는 랭킹 8위입니다. 즉 우리보다 더 못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성적을 거두는 것은 바로 이 네 명의 선수가 지난 10년간 함께 호흡을 맞춰왔고, 그런 협동과 조직력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올림픽 이야기를 한참 한 것은 바로 여기에 제가 2-3월 함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평신도 목회의 한 부분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윤성빈 선수나 여자 컬링 선수들은 모두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선수를 알아보는 훌륭한 지도자, 그 지도자를 따르면서 열심히 훈련하여 불모지의 영역을 개척해내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선수, 취미로 시작했지만 그것을 계기로 삼아 전문가가 되고, 10년 동안 호흡을 맞춘 조직력으로 세계의 강력한 상대자들을 이겨내는 모습들은 바로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작지만 건강하고 평신도 중심으로 선교적 사명을 충실히 해나가려고 할 때 필요한 덕목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룻과 나오미]
오늘 우리가 연이어 살펴보고 있는 롯과 나오미의 관계 또한 우리에게 비슷한 종류의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지지난 주에 룻기는 사사시대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왕정이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왕이 되어서도 이런 사실을 잊지 말고 하나님 한분만이 진정한 왕 되심을 깨닫고, 백성들과 더불어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정치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위대한 왕의 조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든 것은 무슨 이유에서 모압 출신 여성인 룻이 고향 이스라엘로 돌아가려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가겠다고 나서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생길이 훤한 데 말입니다.
모압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늘 긴장감이 감도는 관계였습니다. 큰 틀에서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들이기에 이스라엘과 친척관계이지만,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십볼의 아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사주하였고, 사사 시대에는 모압 왕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을 모아 이스라엘을 쳐서 여리고를 점령하고 18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괴롭히기도 했습니다(사사 3:12-20).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신명기 23장 3절에 의하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 자손들은 십대가 아니라, 영원히 주님의 총회에 회원이 되지 못한다고 못 박아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모압 여인 룻은 자기에게 적대적인 곳으로, 그것도 남편도 없이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그 험한 길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대에 남편 잃은 여성은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보호 장치도 없었고, 경제적 후원을 받을 만한 그 무엇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설득하는 중에 “재혼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다. 설령, 나에게 어떤 희망이 있다거나, 오늘 밤 내가 남편을 맞아들여 아들들을 낳게 된다거나 하더라도, 너희가, 그것들이 클 때까지 기다릴 셈이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구약시대의 시형제결혼제도와 관련된 것입니다. 신명기 24장 5절에서 6절에 보면 남편을 잃어 생존 수단과 안정적인 삶을 박탈당한 여인을 위해 죽은 남편의 동생이 과부가 된 형수와 결혼하게 하는 제도가 나옵니다. 룻의 경우는 시동생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형제결혼제도가 적용되기 어려웠고, 그래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입니다.
지역 간의 이동과 교류가 별로 없던 시대에 한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집안과 장소를 떠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혈연과 지연은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받으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치였습니다. 그 곳을 떠난다는 것은 모든 안전장치를 풀고 모든 위험에 자신을 내맡기는 어리석은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 최고의 형벌은 사형이었지만, 그 다음으로 가혹한 형벌은 살고 있던 지역과 혈연공동체로부터 추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룻은 이런 위험천만한 길로 나서는 것입니다. 룻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일까요?
[룻의 지혜와 사랑]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4절을 보면 나오미의 끈질긴 설득에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면서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룻은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달라붙습니다. 여기서 ‘달라붙었다’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다바크’(ךבד)입니다. 이 말은 뜨거운 사랑과 친밀함, 결속력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잠언 18장 24절에 보면 “친구를 많이 둔 사람은 해를 입기도 하지만, 동기간보다 더 가까운 친구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동기간보다도 더 가까운”을 뜻하는 그 단어가 바로 ‘다바크’(ךבד)입니다. 그러니까 룻은 지금 시어머니를 동기간보다도 더 애틋하고 더욱 긴밀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나오미는 한결같이 며느리들을 “내 딸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딸 같은 며느리에게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줄곧 애를 씁니다. 룻기 전체를 보면 나오미는 내내 룻의 삶을 돌보아주고, 그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을 따라 고향 이스라엘을 떠나 모압으로 왔습니다. 이방 땅에서도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라는 이름의 남편처럼 이 여성도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내린 불행에서 빠져 나오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생각하고 감내하는 믿음은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시련도 주님의 뜻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성숙한 믿음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성숙한 믿음으로 이방 땅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며느리들을 딸처럼 아끼고 사랑했고, 남편과 아들을 잃었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나오미의 모습에 룻은 매우 깊은 인생의 깨달음과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룻은 결단합니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이 말은 나오미가 이방 땅에서 고생하면서도 자신을 챙겨 주었듯이, 자신 또한 낯선 땅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지라도 나오미와 함께 그 어려운 삶을 나누겠다는 각오가 배어 있습니다. 룻은 이어서 말합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이 말을 통해서 우리는 나오미의 사랑을 통해 룻이 깨달은 또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것은 새로운 신앙의 길입니다. 지금 모압 여인은 자신이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어머님과 같은 신앙에 귀의하겠다고 말합니다. 모압의 주신은 그모스(Chemosh)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가 정의로운 신이고, 강한 신이기에 모든 전쟁에서 자신들을 승리로 이끌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모스는 아내도 있는데, 이쉬타르 그모스입니다. 또 동시에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 뿐만이 아니라, 바알도 숭배하고, 엘도 숭배했습니다. 즉 모압 사람들은 고대에 가장 일반적인 특징을 보이는 다신교적 종교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압 여인인 룻의 고백은 이런 모든 신들을 버리고 오직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다신교적 전통은 대체적으로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게 합니다. 즉 자기의 삶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지는 온갖 재앙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신들을 보험처럼 모시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 드러나는데, 다신을 섬기는 이방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닌 동일한 문제를 이 신 저 신에게 다니면서 계속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반면 고대의 유일신교는 다신교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게 됩니다. 즉 내 중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랑과 자유, 자유와 평등 같은 가치를 따르려고 했습니다. 당장의 내 문제만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즉 고대의 다신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종교이지만, 고대의 유일신교는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위해 헌신하게 하는 종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삶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삶의 태도와 가치를 배우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관점, 자신의 경험, 자신이 태어나 자라 온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이 만든 세계라는 한계에 갇히게 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더 넓은 세계, 더 크고 깊고 높은 세계에서도 통하는 뜻을 찾아내고, 그 진리의 바다에 자기를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자기의 생각만 주장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집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지혜롭게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룻은 바로 자기를 열어서 남의 고난을 함께 질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고, 그것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삶을 통해 배웠던 것이며,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라고 조언합니다.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고 용서해 주라고 합니다. 이런 고귀한 가치들은 그리스인이나 유대인, 할례 받은 자나 할례 받지 않은 자, 야만인으로 불리는 이들이나 스구디아인, 종이나 자유인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할 도덕적 행실들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런 모든 행실들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묶는 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연약하고 한계를 지닌 존재들이 완전이라는 말을 쓰기는 어렵지만 사랑이야말로 그 완전에 다다르게 하는 가장 올바른 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위대한 지도자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으로 남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진정 위대한 지도자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남을 자기처럼 아껴주는 사람, 자기 이익만을 구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사랑을 지닌 이들에게서 탄생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각 구성원들이 오늘 룻과 나오미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우리 교회에서 위대한 지도자들이 나올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그리고 교계가 혼탁한 것은 돈이 없어 가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힘이나 권세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참 지식이 없기 때문이며, 거룩한 사람이 지녀야 할 도덕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모든 행실에 남을 생각해 주는 사랑을 더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용서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설날은 낯 설은 날이어서 늘 삼가고 조심하며 새해를 열지만,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행복한 한해가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밤과 낮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들의 삶에 리듬을 주시고, 때로 쉬게 하시고, 때로 성장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민족의 명절 설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주님의 은총을 생각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가 맑은 눈을 지니게 하셔서 주님을 밝히 알아보게 하시고, 올 한해도 온전히 주님의 뜻 가운데 모든 것 위에 주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더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새해를 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 한해 우리가 모든 편견과 두려움에서 자유케 하시고, 우리의 이해와 사랑이 깊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권세와 능력을 가진 이들이 나라와 세계에 정의와 자유를 세우기 위해 일하기를 기도합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자들, 사랑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당신의 긍휼을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나이의 장벽을 넘어서 젊은이와 늙은이의 친구가 되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슬픔 속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는 손길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으니, 우리가 감사함으로 다시 당신께 드리며, 이 세상에 나아가 당신의 손과 발이 되길 다짐합니다. 우리의 예물을 받으시고, 이 예물의 당신의 뜻과 섭리 가운데 쓰이게 하소서. 물질 때문에 고난당하지 않게 하시고, 물질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물질로 생명을 살리게 하시고 친구를 사귀는 지혜를 얻게 하소서. 모든 것이 당신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세상으로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위험이 따르지 않는 희망은 참된 희망이 아닙니다. 희망이란 잃을 지도 모를 사랑을 믿는 것, 의심 중에서도 사람을 신뢰하는 것,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과감하게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 축도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 앞에서 이끌어 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화가 넘쳐나기를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기를
그분의 사랑이 여러분을 감싸시기를
그분의 복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기를
그리고 여러분은 거룩한 땅위를 걸어가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y the blessing of God go before you.
May her grace and peace around you.
May her spirit live within you.
May her love wrap you around.
May her blessing remain with you always.
May you walk on holy g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