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전원시의 백미이자 자연철학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산수가 좋으면 어진 사람이 살고, 산수가 나쁘면 포악한 사람이 산다. 자연을 벗 삼아 모든 욕심을 버리면 어린아이처럼 되고, 이 어린아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 어른이 어린아이가 되고, 어린아이는 황제가 된다. 산과 강은 그의 정원이 되고, 논과 밭은 그의 황금평야가 된다. 새들은 그의 합창단이 되고, 다람쥐와 노루와 멧돼지와 소 등은 그의 호위무사가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신전과 정원과 호위무사를 거느린 황제이며, 그는 그의 절대권력으로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연주하게 된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대관식의 선언문이며, 그만큼 도발적이고, 하늘을 찌를듯한 환희에의 기쁨에 가득차 있는 목소리라고 할 수가 있다.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맨다는 기쁨도 있고, 새 노래는 공짜로 듣는다는 기쁨도 있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라는 기쁨도 있고, 왜 사냐고 물으면 웃는다는 기쁨도 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은 뜬구름과도 같은 것이고, 이제는 두 번 다시 ‘뜬구름 속의 불행’을 되풀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 어디에다가 집을 지어야 하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 자신이 황제가 되고, 전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는 곳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산 좋고, 물 좋고, 대자연과 하나가 된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그의 행복론이며, 이 행복론의 상징이 ‘웃음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왜 사냐건/ 웃지요.”
다산 정약용과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최악의 생존조건인 그들의 유배지에서도 가장 행복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글을 쓰고 학문연구를 한다는 것은 혼자 있을 때가 최적의 조건이라고 할 수가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외롭고 고독할 시간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이명 소리마저도 무서울 정도로 짜릿한 전율감을 안겨주며, 또한, 그 무서운 집중력으로 글쓰기의 생산성을 자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슬픔도 모르고, 외로움도 모르며, 불행도 모른다. 오직 명품생산의 위대함의 시간을 살며, 전인류의 스승으로서 그 황금왕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단순해지고, 모든 것이 간결해진다. 언어도 절제되고, 시간도 절제된다. 돈도 필요가 없고, 그 어떤 잔소리와 싸울 일도 없어진다. 혼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을 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을 한다는 것은 행복의 전제조건이기도 한 것이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시를 쓰고 산책을 한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왜 사냐건 웃지요.”
나는 나의 행복의 연주자이고, 나는 첩첩산골에서도, 무인도에서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