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요연을 만나다.
원수가 장막 가운데 앉아 촛불을 밝히고 병서(兵書)를 보는데 순라꾼이 이미 삼경을 알리는데, 홀연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 촛불을 끄고, 한 여인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몸을 숨기듯 장막 가운데 섰더라. 손에는 서릿발 같은 비수를 들었으니, 원수가 자객인줄 알되, 낯빛을 변치 아니하고, 위의를 더욱 늠름히 하면서 서서히 묻되,
“네 어떠한 여자이기로, 밤에 군중에 들어오느뇨?”
여인이 대답하되ㅡ
“첩이 토번국 찬보(토번의 군장)의 명을 받고 원수의 머리를 얻고자 하여 왔나이다.”
양원수가 웃으며 말하기를,
“대장부가 어찌 죽기를 두려워 하리오? 속히 하수하라.”
여인이 칼을 던지고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기를,
“귀인은 염려 마옵소서. 첩이 어찌 감히 경거망동할 수 있겠나이까?”
원수가 잡아 일으키면서 이르되,
“그대는 비수를 끼고 군중에 들어와서 나를 해치지 않음이 어찌된 일인고?”
여인이 대답하기를,
“첩이 전후 내력을 말씀드리고자 하오나, 이렇듯이 서서는 이루 말할 수 없나이다.”
원수가 자리를 주어 앉기를 권하며 묻기를,
“낭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찾아왔으니 장차 무슨 가르침이 있겠는고?”
여인이 대답하기를,
“첩이 비록 자객이란 이름을 가졌사오나 사람을 해칠 마음은 없었으므로, 속 마음을 떳떳이 귀인께 토설하겠나이다.”
여인이 일어나 다시 촛불을 켜고 원수 앞에 나아와 앉더라. 원수가 자세히 보니 구름같은 머리는 금비녀를높이 꽂고 소매가 좁은 갑옷을 두르고, 그 곁에 석죽화(石竹花)를 그렸으며, 봉미목화(鳳尾木靴)를 신었고, 허리에 용천검을 비껴 찾는데, 얼굴빛은 천연히 이슬에 젖은 해당화 같더라. 앵두같은 입술을 천천히 열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말하기를,
“첩은 본디 양주고을 사람으로 여러 대에 걸쳐 당나라 백성 이었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한 계집 스승을 따라 제자가 되었나이다. 그 스승은 검술에 신묘하여 제자 세 사람을 가르쳤는데, 삼인 성명인즉 진해월 김채홍 심요연이며, 첩이 곧 심요연이옵니다. 검술을 배운지 삼 년만에 볂화ㅣ하는 법을 터득하고 바람을 타며 번개를 따라 순식간에 천여 리를 달리어, 세 사람의 검술로는 별로 우열이 없사옵데, 스승이 원수를 갚으라 하거나 혹은 악한 사람을을 없애버릴 때면 반드시 채홍과 해월이 두 제자만 보내며 첩은 한번ㅂ도 보내지 아니하기로 첩이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스승께 묻자온되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첩만이 홀로 스승의 은혜를 갚지 못하였사오니, 모르기는 하오나 첩이 재주가 용렬하여 한 번도 부리지 아니하시나이까? 하온즉, 스승이 이르기를 너는 우리들과 다르니라, 후일에 마땅히 바른 가도를 얻어 마침내 뜻을 펴게 되겠거늘, 너도 저 두 사람과 같이 인명을 살해하면 해로울 터이매, 그러므로 너를 부리지 아니하노라 하기에 첩이 되묻자오되 만일 그러하오면 첩의 검술은 장차 어디에 쓰게 되오리까? 한즉 스승이 타이르기를 네 전생의 연분이 당나라에 있고, 그는 큰 귀인인데, 너는 타국에 있는지라 만날 도리가 없으니, 네 너를 위하여 검술을 가르침은 너로 하여금 재주를 인연으로 귀인을 만나려 함이니, 네 후일에 마땅히 백만 군중에 들어가 검극 사이에서 좋은 인연을 이루리라, 하고 다시 금년 봄에 첩더러 이르기를, 천자가 대장군으로 하여금 토번을 치시매, 찬보가 방을 붙여 자객을 불러 당나라 장군을 해치려 할 터이니, 네 이 기회를 잃치 말고 산에서 내려가 토번국에 가서 모든 자객들과 더불어 검술을 겨루어 일변 당장의 급한 화를 면하고, 일변 전생의 좋은 연분을 맺으라 하기로, 토번국에 가서 몸소 성문에 붙인 방을 떼어 가지고 들어간본즉 찬보가 첩을 불러 먼저 여러 자객들과 더불어 재주를 견주케 하니, 첩이 으뜸이 되매, 찬보가 크게 기꺼워하여 첩을 보내면서 말하되 네 당나라 장수의 머리를 베어 온 후 내 너를 귀비로 삼겠노라 하더이다. 이제 장군을 뵈오니 과연 스승의 말씀과 같은지라, 바라옵건데 첩이 시비의 반열에 참여하여 장군을 좌우에 모시려 하옵는데 장군께옵서는 과연 허락하시겠나이까?”
원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낭자가 이미 죽게 된 목숨을 구하고 또 몸으로써 섬기고자 하니 이 은혜 어찌 다 갚으리오? 백년해로 하는 것이 실로 내뜻이라.”
하고 이어서 동침하니 창검의 빛으로 화촉을 대신하고, 칼소리로 거문고를 대신하니 비록 군막 속일지언정 호탕한 정이 산과 같고, 또한 바다와 같더라.
이로부터 원수는 심요연에게 빠져들어 장졸을 보지 아니함이 연사흘이 되니, 심요연이 말하되,
“군중은 부녀자가 거처할 곳이 아닐뿐더러, 군병의 사기가 발양치 못할까 두렵나이다.”
하고 이어서 돌아갈새 원수가 이르기를,
“낭자는 범상한 여자에 견줄 바 아니기로, 나에게 기모(奇謀)와 비계(祕計)를 가르쳐 도적에게 도적에게 써보도록 해주오.”
삼랑이 이에 대답하기를,
“첩의 이 일은 스승의 명으로 말미암아 나왔사오나, 스승께 길이 하직은 아니하온즉 돌아가 스승을 모시고 있다가, 장군께서 군비를 돌이킴을 기다려 서서히 환성으로 나아가 뵈옵겠나이다. 또 토번의 자객이 많으나 첩의 적수가 없으니 첩이 귀순한 줄 알면 생심을 돋을 자 없을 터이오니 아무 염려 마시옵소서.”
하더니 손으로 허리를 만져 구슬 한 개를 꺼내어 주면서 이르기를,
“구슬의 이름은 묘아완으로 찬보의 머리에 꽂았던 것이옵니다. 장군은 사자를 보내어 이 구슬로 하여금 첩이 다시 돌아갈 뜻이 없는 줄 알게 하소서, 앞길에 반사곡(긴 뱀 같이 생긴 골짜기)이 있으며, 장군께서 반드시 그 길로 지날 것이온대 먹을 물이 없사오니 장군께서는 안심하시고 우물을 파서 군사를 먹이심이 좋을 듯 하나이다.”
하고 이어서 구슬을 던지자, 원수가 또 계교를 묻고자 했더니, 심랑이 한 번 공중으로 뛰어 오르매 그 거처를 알 수 없더라. 원수가 모든 장졸들을 모아놓고 심랑의 일을 말하니, 제 장졸이 대원수의 행복과 위엄이 도적으로 하여금 두렵게 함이니, 필연 신이 와서 도운 것이라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