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복음선교회의 '예수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에 대한 반론
2015. 10. .
십자가 복음선교회 8월호의 이달의 말씀 김 주 환 목사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를 읽고 바른복음 관점에서 살펴본다.
설교자는 바울의 가르침을 빗 대여 두 가지의 믿음을 설교하고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세례에 이르게 할 믿음” 다른 하나는 “모리아의 믿음”이다.
위 설교의 서두에서 믿음이란 기복신앙과 이를 가능케 해 주는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일부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바로 잡고 있다. 한국 교회의 사람의 전통이 복음처럼 된 것에 대한 옳은 견책이라고 생각 된다.
첫째 대지에서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한분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전, 후로 각각 자신을 “예수”와 “그리스도”로 보이신 것이다.』
a. “예수”와 “그리스도”는 같은 뜻의 다른 말이거나 그리스도가 단순한 예수님의 별칭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 ” 절대로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증이다.
☞(반론) 우선 정상적인 성도라면 그리스도를 예수님의 별칭이나 같은 뜻의 다른 말로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왕이나 제사장과 같이 기름부음 받은 자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함은 예수님이 곧 메시야 되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b. 마가가 “예수 그리스도”, 바울이 “그리스도”라고 쓴 것은 모두 ”복음“의 과정과 결과를 쓴 것이다. 즉 “예수”의 단계에서 “그리스도”로, 나가 “그리스도”로 완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논증 한다.
근거로 보는 대표적인 구절은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이다. 곧 예수라는 사람이 십자가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이다.
☞(반론) 먼저 위 말씀을 엄밀히 살펴보면 십자가를 지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희가 십자가에 죽였던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결코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원래 그리스도(헬)이시다. 곧 메시야(히)로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그리스도이셨음을 베드로의 고백에서도 알 수가 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더구나 이는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이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사도 바울도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증거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증언한 것이다.
(행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주가 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주’가 되셨다고 증거 하고 있다.
(고후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만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되셨다면 죽으시기 전에는 그리스도가 아닌 한 사람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남자의 유전자도 없는 또 메시야도 아닌 어정쩡한 한 남자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한 사람 이였을 뿐이라고 격하시키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만다. 여기에 십자가 복음의 문제점과 위험성이 있다.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영으로 부어짐을 받는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사명을 이루신 것이지 결코 죽으심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성육신 하셨고 그분이 예수님이시며 그리스도, 메시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예수의 별칭이 아니다’는 논지를 이끌어낸 것 자체가 이상하다. 세종대왕도 대왕은 큰 왕임을 나타내는 것이지 별칭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과 차이점이 있다면 세종은 왕이 못 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원래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점이다. 그래서 헤롯도 에수님께서 태어 나셨을 때에 죽이려고 한 것이다. 만약 십자가에 죽으셔야 그리스도가 되신다면 사탄은 결코 그리스도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 『성경은 “예수” 는 구원할 자(마태복음 1:21), 여자에게서, 율법아래 나신 분, 죄는 없지만 그 몸에 죄를 짊어지신 분(로마서 8:3, 히브리서 2:14, 요한일서 3:4)으로,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이스마엘”과 같다고 말합니다.』
☞(반론) 위 글이 죄인과 같은 육신을 입으셨음을 나타내는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이스마엘과 같다고 비유하는 것은 적당해 보이지 않는다. 이스마엘은 사람의 뜻을 따라 났으며 약속의 자손도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났으며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약속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 『예수님은 첫 사람 아담으로 땅에서 나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흙에 속한 자였으나, 십자가를 지나 마지막 아담 하늘에서 나신 자, 신령한 분,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반론) 이 말은 좀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아담이 아니라 아담을 지으신 조물주이시다(잠 8장). 또한 흙에 속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첫 사람 아담이 죄로 하나님의 왕국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것을 회복시키시려고 오신 하늘에 속한 분이시다. 더 이상 예수님을 격하 시키지 않길 바란다.
※ 『세례요한과 같은 종을 통해 예수를 알아 물세례를 받은 후,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령의 세례로 본질의 죄를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후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초보에 들어가게 됩니다.』
☞(반론) 위와 같이 그리스도의 초보에 들어가는 단계를 설명하지만 엉성하게 합성해 놓은 그림과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 성령세례를 받은 부분(행 8:16)도 나오지만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후에 물세례를 베푸는 장면도 나온다. 즉 위 순서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행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행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 10: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행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또한 히 6장을 보면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그 후에 더욱 완전해 질 것 중에 세례들도 포함하고 있다. 즉 물세례 후에 성령 세례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후에 그리스도도의 초보에 들어간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기 짝이 없다. 또 그리스도의 세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님은 승천 하시고 얼마 후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맞지만 그리스도의 세례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둘째 대지 모리아의 믿음에 관한 부분에서는 한 가지만 짚어 본다.
설교자는 설교 마지막에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을 성령께서 도우사 큰 소리의 울림으로 들려 지시기를 주가 되신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론) 문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린다면 그리스도는 적그리스도가 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이름이 아니라 직분이기 때문이다.
심히 염려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라는 이름을 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 외에는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행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또한 이런 논리대로라면 예수라는 이름을 부인하려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적어도 적그리스도의 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래 말씀만을 보면 육체로 오신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고 증거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예수”를 부인하는 자라고 증거 하기 때문이다.
(요일 4: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 보다 “예수”라는 이름만을 사용하여 말씀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대 환난 때에 마귀가 대적하는 성도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또 인내하는 신실한 성도들에 대하여서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런 “예수”를 증언 하는 자들이 또한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뿐만 아니라 요한에게 말하는 천사도 자기는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라고 말하고 있다.
(계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결정적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결코 나 그리스도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사도 요한도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닌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기를 축복하였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위와 같이 계시록 말씀을 상고해 볼 때도 “그리스도”와 “예수”라는 이름을 구분하여 사용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복음 선교회의 김 주환 목사의 예수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가르침은 성경적이라고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