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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둔토(驛屯土)의 부당한 세금과 부당한 도세(賭稅) 면제 청원서(請願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는 1905년 거제군 양민 10명이 역둔토(驛屯土)의 부당한 세금 금지를 요청하는 청원서와 거제군 창선목 주민들이 부당하게 추가된 도세(賭稅) 면제와 세금 직접 납부 요청 청원서 2건을 소개하겠다.
먼저 「1905년 역둔토(驛屯土)의 부당한 세금 금지 청원서(請願書)」는 경상남도 거제군 양민 장종원(張鍾遠) 등 10명의 민인(民人)이 도상가도(賭上加賭)와 두상가두(斗上加斗)의 폐단을 청원하고자 궁내부 내장원(內藏院)에 제출한 청원서와 그에 대한 지령(답변)이다.
또 「1907년 부당한 도세(賭稅) 면제 청원서(請願書)」는 거제군 창선목 주민(목장지 소속 주민)들이 도세 감면과 자납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부당하게 추가된 '도세'를 특별히 면제(頉減)해 줄 것을 요청했고 또 중간 수탈 없이 백성들이 직접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공식 문서(완문)를 써달라고 요청한 문서다. 이 청원서 2건의 출전은 『각사등록(各司謄錄)』과 『경상남북도 각군 소장(慶尙南北道各郡訴狀)』이다.
참고로 위 2건의 문서에 나오는 대한제국기 내장원(內藏院, 1895~1905)과 경리원(經理院, 1905~1907)은 황제 직속 기구인 궁내부(宮內府) 산하에서 황실의 재정과 재산을 관리하던 핵심 기관이다. 특히 고종의 황제권 강화 정책(광무개혁)과 맞물려 국가 재정보다 더 방대한 규모의 돈을 움직였던 사실상의 황제 개인 금고 역할을 했다. 요약하자면, 내장원은 갑오개혁 때부터 대한제국의 황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재정을 확충했던 기관이었고, 그 내장원을 일제가 대한제국을 무력화하기 위해 그 기능을 쪼개고 통제한 결과물이 경리원이었다.
1) 「1905년 역둔토(驛屯土)의 부당한 세금 금지 청원서(請願書)」 도상가도(賭上加賭)와 두상가두(斗上加斗)의 폐단을 청원하다.
이 청원서(請願書)는 당시 농민들이 관청의 원론적인 답변(이미 판결 내렸으니 가서 보여줘라)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지 관리들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추가 훈령'을 요구하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제시한 문서는 1904년(광무 8년) 8월, 경상남도 거제군 양민 장종원(張鍾遠) 등 10명의 민인이 궁내부 내장원(內藏院)에 제출한 청원서와 그에 대한 지령(답변)이다. 핵심 내용은 당시 역둔토(국가 소유지)를 경작하던 농민들이 관리들의 부당한 세금 징수에 맞서 싸운 민원과 저항에 관한 것이다. 즉, 원래(元來)의 도지(賭地, 남의 땅을 빌러 부친 논밭) 위에 도지(賭地)를 더 매겨 세금을 부당하게 징수한 것이다.
(1) 청원서 내용을 보면, 거제 지역의 역둔토를 부치며 사는 농민들은 정해진 도지(임대료) 외에 추가로 더 걷는 가도(賭上加賭)와, 표준 도량형보다 큰 그릇으로 양을 속여 걷는 두상가두(斗上加斗)의 폐단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이전에도 이 문제를 호소하여 "표준 되(시두)를 사용하고 과도한 징수를 금지한다"는 판결(제지)을 받았으나, 현지 관리(捧官)들이 이를 무시하고 순교(巡校, 하급 경찰)를 동원해 위력으로 강제 징수했다. 올해도 같은 관리들이 세금을 걷을 예정이라 똑같은 피해가 불 보듯 뻔하니, 내장원(당시 왕실 재산 관리 기관)에서 거제군과 봉관에게 직접 엄격한 훈령을 내려 "원래 정해진 액수 외에는 1두도 더 걷지 말고, 군청의 표준 되(시두)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후 9월 8일 내장원경은 "이미 이전에 판결을 내린 바 있으니, 세금을 걷는 관리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여 조치를 기다리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린다.
(2) 이 문서는 대한제국기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내장원의 역둔토 운영 실태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지방관 및 봉세관들의 수탈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료다. 특히 섬 지역(거제도) 주민들이 먼 서울까지 직접 올라와 억울함을 호소할 정도로 수탈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당시 농민들이 법적 절차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 노력했음을 증명한다.
이 「역둔토(驛屯土) 부당 세금 청원서(請願書)」는 발신자가 거제의 장종원(張鍾遠)이고 수신자는 내장원경(內藏院卿)이며, 출전은 『각사등록(各司謄錄)』과 『경상남북도 각군 소장(慶尙南北道各郡訴狀)』이다.
**「1905년 역둔토(驛屯土)의 부당한 세금 금지 청원서(請願書)」** 原文
광무 8년(1904년) 8월 일. 청원서 : 경상남도 거제군 양민 청원인 장종원(張鍾遠) 등.
청원인들이 역둔토(驛屯土)의 도지(임대료) 외에 추가로 징수하는 가도(加賭)와, 되의 크기를 속여 더 걷는 두상가두(斗上加斗)의 사정으로 일전에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다행히 "실제 사용하는 되(행용두)로 납부받고, 과도하게 걷는 일은 일절 금지한다"는 판결을 받아 황송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작년 가을에 겪은 일을 생각해보면, 세금을 걷는 관리(捧官)가 이를 시행하지 않으려 함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먼 곳의 어리석고 힘없는 백성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순교(巡校)들을 많이 풀어 위력으로 억지로 빼앗는 것이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올해의 세금 관리도 작년과 같은 사람인즉, 분명히 전처럼 판결을 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토록 엄명하신 판결은 아무런 이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될 것입니다.
가련한 이 백성들이 천 리 길을 멀다 않고 버선발로 달려와 호소하였으나, 구체적인 훈령을 받지 못하고 단지 판결문만 받아서 돌아간다면, 올해 농사도 또 헛수고가 되어 역둔토를 경작하는 농민들은 끝내 버티기 어렵고 생업에 힘쓸 마음도 영영 사라질 것입니다. 그 억울함과 답답함을 견딜 수 없어 이에 감히 다시 호소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낱낱이 살피신 뒤에 외딴 섬 백성들의 하소연할 곳 없는 사정을 특별히 생각하시어, 과도한 징수와 큰 되를 쓰는 폐단을 별도로 엄격히 금지한다는 뜻으로 부·군 및 봉관(세금 관리)에게 엄히 훈령을 내려주소서.
그리하여 도지는 원래 정해진 액수 외에 단 한 되도 더 걷지 못하게 하고, 되(斗)는 본 군의 표준 되(시두)를 사용하여 양을 재게 하시어, 이 바다 저편의 백성들이 원통함 없이 생업에 안종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광무 8년 8월 일.
청원인 : 장종원, 윤도인, 원도형, 옥백여, 김계조, 정원응, 이인오, 송이견, 윤경숙, 이성언. 내장원경(內藏院卿) 각하
[청원 요지] 거제군민 장종원이 본 군의 둔역토 도지를 함부로 걷는 폐단을 금지해달라는 뜻으로 해당 군에 훈령을 내려달라는 일.
[지령(指令)] 이미 이전의 판결이 있으니, 세금을 걷는 관리(봉세관)에게 (그 판결문을) 제시하여 처분을 기다릴 일이다. 광무 8년 9월 8일.
[光武八年八月 日. 請願書 慶尙南道巨濟郡下居 請願人張鍾遠年等.
請願人等이 以驛屯土賭外加賭와 斗上加斗之情事로 日前鳴冤의 幸蒙以行用斗로 捧納고 濫賭一款도 一切禁斷之題旨오니 不勝惶感이오나 推想昨秋所經事온즉 捧官之又不施行을 明若觀火라 遐土愚殘生靈을 視若無人고 多發巡校야 威力勒捧의 有加無減엿쓰니 今年捧官도 亦非別人 則必也如前不爲施行矣리니 然則如是嚴明之題音이 非徒無益이라 返爲害之矣리니 哀此殘民이 不遠千里고 裹足來訴타가 未蒙訓令고 只承題敎而歸온즉 今年所農이 又歸於虛地야 驛土作人이 終難支保의 永無務本之心와 不勝冤抑故로 玆敢更爲呼訴오니 伏乞洞燭신 後에 特念遠海島民無告之情私오셔 濫賭厚斗之弊를 別般禁斷之意로 嚴訓於府郡及捧官오셔 賭則元賭外無一斗加捧고 斗則以本郡市斗로 量捧케오셔 使此海隅蒼生으로 安業無冤之地를 伏望홈. 光武八年八月 日. 請願人 張鍾遠 尹道仁 元道亨 玉伯汝 金桂祚 鄭元應 李仁吾 宋而見 尹敬叔 李性彦. 內藏院卿閣下. 巨濟郡民張鍾遠 本郡屯驛賭濫捧之弊禁斷之意 訓飭該郡事. 指令. 已有前題니 往付捧稅官야 以待措處 事 光武八年九月八日]
[주1] 역둔토(驛屯土) : 역토(驛土, 역에 속한 전답)와 둔토(屯土, 군 관청의 토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주2] 도상가도(賭上加賭) : 원래(元來)의 도지(賭地) 위에 도지(賭地)를 더 매김. 부담이 더욱 가중됨.
[주3] 두상가두(斗上加斗) : 표준 도량형보다 큰 그릇으로 양을 속여 걷어가는 폐단
2) 「1907년 목장지 주민의 부당한 도세(賭稅) 면제 청원서(請願書)」
이번 거제군 창선목 주민들의 「부당한 도세(賭稅) 감면 청원서(請願書)」는 1907년(융희 원년) 11월, 경상남도 거제군 창선목(昌善牧)에 거주하는 주민 장사원(張士遠), 하응락(河應樂) 등이 경리원(經理院, 왕실 재산 관리 관청)에 제출한 청원서와 그에 대한 지령(답변)이다. 당시 거제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이 왕실 소유가 아닌 민유지임을 강조하며 일본군 주둔과 재해로 인한 땅을 뺏긴 고통을 호소했으나, 당국은 이를 기각한 상황이다. 즉, 이 문서는 대한제국기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경리원이 전국의 목장지를 황실 소유(내장원)로 편입해 수탈을 강화하자, 이에 저항했던 거제 지역민들의 생존권 투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이 「1907년 목장지 주민의 부당한 도세(賭稅) 면제 청원서(請願書)」는 발신자가 거제의 장종원(張鍾遠), 하응락(河應樂) 등이고 수신자는 경리원경(經理院卿)이며, 출전은 『각사등록(各司謄錄)』과 『경상남북도 각군 소장(慶尙南北道各郡訴狀)』이다.
(1) 「부당한 도세(賭稅) 감면 청원서(請願書)」의 배경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경작하는 땅이 국가에서 내려준 '사패지'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스스로 개간하여 세금을 내며 매매해 온 '민유지(私墾執結)'라고 주장한다. 갑오개혁 이후 결당 80냥의 정해진 세금을 내왔으나, 1899년(기해년)부터 갑자기 '도세(賭稅)'라는 명목으로 논밭에 추가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게다가 일본군 방비대가 목장지를 점령하여 농사를 지을 땅이 줄어든 데다, 남은 땅도 척박하고 자연재해(풍해, 염해)가 심해 원래의 세금조차 내기 힘든 처지임을 호소한다.
(2) 청원의 목적은 도세 감면과 자납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부당하게 추가된 '도세'를 특별히 면제(頉減)해 줄 것을 요청했고 또 중간 수탈 없이 백성들이 직접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공식 문서(완문)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3) 결과(지령)에 의하면, "이미 여러 번 답했으니 다시 번거롭게 호소하지 말라." (指令 已悉於屢題 不必煩訴) 결국 안타깝게도 당시 당국은 주민들의 반복된 청원을 거절하며 기존 결정을 유지하겠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1907년 목장지 주민의 부당한 도세(賭稅) 면제 청원서(請願書)」** 원문
거제군 창선목 주민들의 도세 감면 청원서. 융희 원년(1907년) 11월 일. 청원인 : 경상남도 거제군 목장 주민 장사원(張士遠), 하응락(河應樂) 등.
엎드려 아룁니다. 무릇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으니, 백성은 나라의 근본입니다.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함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본인들이 사는 곳은 거제군의 한 모퉁이에 치우친 작은 외목(外牧, 변두리 목장)입니다. 전에는 창선목관(昌善牧官)이 매년 농사 형편에 따라 세금을 거두어 납부했고, 백성들끼리 사사로이 땅을 사고팔아 온 지가 수백 년이 되었습니다.
갑오경장(1894) 이후로는 온 나라의 세금을 균일하게 하여, 결(結)당 엽전 80냥씩을 도지부(度支部)에 상납해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해년(1899)부터 ‘도세(賭稅)’라 부르며, 밭 1부당 엽전 5전, 논 1부당 엽전 1냥씩을 원래 세금 외에 매년 억울하게 징수하고 있으니, 외딴 섬의 쇠락한 백성들이 어떻게 견디며 살겠습니까?
이 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본래 임금이 하사한 ‘내목(內牧, 왕실 직할 목장)’이 아니라, 백성들이 스스로 개간하여 세금을 바쳐온 ‘외목’입니다. 어찌 내목과 외목의 구분을 두지 않고 똑같이 취급하여 세금을 물리니 그 억울함이 끝이 없습니다.
또한, 일본 방비대가 목장지를 점령하여 주둔하는 바람에 백성들은 흩어지고 농사를 포기했으며, 남은 땅마저 척박하고 농사가 잘 안되는 데다 풍해와 바닷물 침수 피해가 해마다 끊이지 않습니다. 원래의 세금을 내기도 벅찬데 하물며 억울한 도세까지 내야 하겠습니까?
백성 절반은 굶어 죽어 구렁텅이에 굴러다니고 토지는 장차 거칠고 폐허가 될 판인데, 이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습니다. 외딴 섬의 백성들이 성스러운 덕화를 입고자 먼 길을 걸어 올라와 실상을 아뢰며 청원합니다.
살펴보신 후, 본 군 목장에 부과된 과도한 도세를 특별히 면제해주시고, 백성들이 스스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완문(完文, 공식 확인서)을 써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융희 원년 11월 일. 경리원경(經理院卿) 각하 앞.
[지령(처분 결과)] "이미 여러 차례 내린 지시에서 충분히 설명하였으니, 다시 번거롭게 호소하지 말라." 융희 원년 11월 8일.
[隆熙元年十一月 日. 請願書, 慶尙南道巨濟郡牧場居民 張士遠 河應樂 等.
伏以, 夫王者은 以民爲天이요 民은 以食爲天也, 則民惟邦本이라 本固邦寧은 理則自然이거늘, 本人等所居之地는 卽本郡一隅偏小之外牧으로 前昌善牧官이 每年隨耕收稅上納고 民自私相買賣者, 數百年之久矣러니, 甲午更張以後, 四海均稅 每結代鄕葉錢八十兩式, 度支部에 上納이옵더니 忽自己亥에 稱云賭稅라고 田結每負에 葉錢五戔, 畓結每負에 葉錢一兩式, 元稅外에 每年冤徵오니 遐島殘氓이 何以支保乎잇가? 以本土로 言之라도 本非賜牌折授之內牧이요 民自私墾執結之外牧也어늘 胡無內外牧之分揀고 同歸一轍이 冤莫及矣오며 又況日本防備隊占駐牧地는 民散廢耕고 所耕餘地는 以薄土劣結노 風損海浸이 無年無之와 元稅上納도 猶難辦出이거늘 況冤徵賭稅乎잇가? 民半塡壑이요 土將陳廢라 冤結無告오니 如此冤枉이 胡至此極가 絶島殘氓이 德化被見을 如披雲睹天와 裹足上來에 擧實請願오니, 參燭신 後, 本郡偏牧에 夥多賭稅을 特爲頉減시와 使民自納之意로 完文成給之地, 千萬伏望. 隆熙元年十一月 日. 經理院卿閣下. 巨濟昌善牧民等, 本牧賭稅特減, 使民自納事. 指令, 已悉於屢題니 不必煩訴 事. 隆熙元年十一月八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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