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시평 제202호 (2009년 10월 16일)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한반도 공습
최영호 (영산대학교)
www.freechal.com/choiygho
최근 필자는 일제강점기 피징용 희생자의 유족으로부터 우송되어 온 장문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에는 그의 부친이 1945년 6월 남해군에서 보국대 요원으로 징집되어 배로 부산으로 이동하던 차에 미군 비행기의 폭격을 맞아 선박이 침몰되면서 희생을 당했다고 쓰여 있었다. 태평양전쟁전후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위원회는 피해자의 증언에 따라 강제동원에 의한 희생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현재 한국정부가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국외’ 강제동원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는 분명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지원 결정을 내리기 곤란하다고 하여 ‘지급 기각’을 결정했다고 한다. 필자는 희생자 유족의 억울한 사정 호소에 대해 안타까움을 공감하면서도, 현행 지원법이 ‘국내’ 강제동원 희생자를 지원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음을 들어, 부득이 위원회가 ‘기각’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시키는 한편, 일본이나 해외로 동원되어 가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하는 것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발견 되는대로 위원회에 ‘재심의’를 신청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필자는 희생자 유족의 편지 내용 가운데 특히 “부산 앞바다에서 밤중에 비행기에서 요강 덩이 같은 불덩어리를 쏟아대니 배가 침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미군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 본토뿐만 아니라 비록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한반도에서도 폭격을 감행했다고 하는 사실을 자료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미군 폭격으로 인한 희생을 직접 호소하는 한국인 피해자가 나올 것으로는 쉽사리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리타요시오(森田芳夫)가 저술한 『朝鮮終戰の記錄』을 중심으로 미군의 한반도 공습 관련 기록을 살펴보자. 1945년 6월 25일에 오키나와 본섬이 미군의 손에 넘어가면서 미군 비행기에 의한 일본 본토 공습이 격심해졌고 이와 함께 한반도 전역도 미군의 제공권 안에 들어감으로써 미군 B29기와 탑재기가 한반도 남해 연안에 출격했다. 7월 4일에는 대전 지구 철도 시설이 미군의 폭격을 맞았고, 7월 31일에는 청천강 철교가 폭격을 맞아 파괴되었다. 또한 7월 중순부터 8월 6일 사이에 청진, 나진, 웅기에 B29기가 날라와서 항구 안에 수많은 기뢰(機雷)를 투하했다. 해방 당시 부산지방교통국 국장(田邊多聞)의 일지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미군 공습 관련 기록이 있다.
7. 4. 대전 관내 공습. 경부선 철도 교량과 김천역 피해를 입음.
7.12. 부산항, 투하 기뢰로 인하여 사용 불능. 연락선 天山丸 마산에 입항.
7.14. 밤중에 부산에 적기(미군기) 5,6대 내습하여 기뢰 투하.
7.28. 오늘까지 연일 부산에 적기가 내습하여 주로 기뢰를 투하함.
7.29. 구포-물금 사이 702열차에 대한 적기의 총격으로 승무원 부상함.
8.10. 동틀 무렵 공습. 부산 수정동 철도관사 부근에 폭탄 7발 낙하.
사상자 상당수 발생.
이 외에도 일지는 8월 10일 이후 패전 때까지 연일 미군기가 내습하여 부산시가지를 공격하여 가옥을 파손하고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료에 비추어 볼 때, 미군기의 기뢰 투하와 함께 한반도 공습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비록 그것이 일본 본토에 대한 대규모 공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규모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해도 일본제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하여 한반도 일부도 미군의 공습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사이버 외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반크(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는 '요코이야기‘를 반박하기 위해 제작한 USB 역사채널에서 “1945년 7월 한반도에서 미군의 폭격이 전혀 없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참고로 현재 일본에서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일본정부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 2007년 3월 도쿄 공습으로 인한 희생자 유족 112명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하여 사죄와 함께 총액 12억 3,200만엔 (약 150억원)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진행 중이다. 공습으로 인한 민간 피해자가 집단적으로 일본정부에 대해 국가 책임을 추궁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도쿄공습유족회는 제소 의의로 현재까지 구제받지 못한 공습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 미군에 의한 무차별 도시 공습이 비인도적인 행위로 국제법 위반 행위였음을 밝히는 것, 일본정부로부터 옛 군인이나 군속이 보상을 받고 있는데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동원된 민간인에게는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행 전쟁보상 제도의 문제점을 추궁하는 것, 등을 들고 있다. (http://www.geocities.jp/jisedainitakusu) 물론 무차별 공습으로 인한 피해자 가운데는 식민지에서 동원되거나 이주한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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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시평] 지난 호 자료는 한일민족문제학회 홈페이지 www.kjnation.org<한일관계시평> 또는 최영호 홈페이지 www.freechal.com/choiygho<한일시평>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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