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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산상수훈을 개략적으로 이해하기
코람데오 추천 4 조회 310 25.12.22 08:36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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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12.22 09:03

    첫댓글 좋은 내용입니다.

    혹시 초신자가 어려워 할만한 단어는 국어사전적인 것도 설명해 올립니다.
    ---------------------------------------

    강화(discourse)는 특정 주제나 논점에 대해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말, 즉 강연·설교·토론·담화 등 다양한 형식의 언어적 표현을 의미합니다.

  • 25.12.22 10:09

    네, 알겠습니다.

  • 25.12.22 09:07

    산상수훈 (<영> Sermon on the Mount)

    마 5-7장에 걸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복음서 가운데서 기록자의 개인적인 언급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으로 기록된 것 중에서 가장 긴 부분이다. 이 내용들은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서 가르치시는(5:1) 장면에서 묘사된 ´산상수훈´ (the Sermon on the Mount)이라는 제목으로 불리워진다. 예수께서 가르치시기 위하여 올라가 앉으신 산은 전통적으로 디베랴의 서쪽에 위치하고, 막달라의 남쪽(south of Magdala)에 위치한 하틴의 호른산(Horns of Hattin)과 동일한 곳으로 여겨진다.

    I. 마태복음 : 가르치시기 위해 않으심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다섯 번의 설교 가운데서 첫 번째 부분인 산상수훈에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 대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영적이며 윤리적인 본성(the spiritual and ethical nature)을 가르치신다는 점에서 마태복음의 다른 설교들과 구별된 주제와 기원을 갖고 있다.

    이 산상수훈의 주제는4:17-25에 기록된 예수님 사역의 출발과 함께 드러난다.

  • 25.12.22 09:07

    예수께서 하신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e kingdom)이다 (17,23절).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에게 자신을 따를 것을 명하셨고(18-22절), 그 뒤 많은 무리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를 받기 위해 모여 들었다(22-25절, 참조. 8-9장).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자료들에서 전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마가복음, 마태복음-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들(´Q ´자료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마태복음에만 독특하게 실려 있는 말씀들(´M´자료라고 불리운다).

    마태복음과 산상수훈에서 볼 수 있는 구조적 연관성이 뛰어나고, 각 복음서들이 각각 다른 관점과 구조로 산상수훈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산상수훈은 단 한번 행해진 선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번만 행해진 설교라면 그 설교가 갖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이 하나로만 정리 되었을 것이다. 산상수훈의 경우는 여러 차례 행해진 설교 가운데서 마태복음의 기록자가 독특한 자신의 관점과 의도로 구성했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 25.12.22 09:08

    Ⅱ. 내용과 신학

    산상수훈의 내용이 너무 높은 수준의 윤리적인 삶을 요구하기 때문에(어떤 사람은 불가능하다고까지 한다) 이에 대한 해석도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제시된다.

    (1) 산상 수훈은 종교 지도자들이나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수도사들을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지 일반 평신도들에게 제시된 것은 아니다.
    (2) 개신교도들 가운데는 산상 수훈이 갈 3:23-24에 언급된 율법과 마찬가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써, 이 수훈의 내용을 사람으로서는 결코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노력에 의지하지 말고 그리스도께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3) 산상수훈이 얘기하고 있는 ´궁극적인 섭리론´ (EXtreme DIspensationalis-m)은 이 세대(this age)에 해당되는 언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천년 동안 계속될 ´천국의 시대´(kingdom age)에 관한 언급이다.
    (4) 산상수훈은 예수께서 현 세대의 종말이 오기 전의 짧은 시간에 관해서만 언급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의도는 다가올 공동체(a continuing community)의 윤리관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 25.12.22 09:08

    일시적인 관점의 윤리관(interim ethic)을 말씀하신 것이다.
    (5) 산상수훈은 이 세대를 살아가는 모든 기독교인들의 삶의 기준을 설정해주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이 마지막 견해에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종종 첨가된다. 즉 "산상수훈이 요구하고 있는 것(예. 마5:42)은 모든 인간관계의 형성과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 또는 "예수께서 의도하신 것은 어떤 특별한 행동의 규례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삶의 원리를 말했을 뿐이다 "라는 견해들이다.

    산상수훈의 여러 내용 중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다른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산상 수훈의 의도가 이 세대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기준이 되는 삶을 제시해 주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산상수훈의 내용 중에는 과장되게 여겨지는 부분도 있다(예.마 5:29-30). 그러나 산상수훈이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서 지나치게 그 의도를 찾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그 본래의 의도를 간과할 우려가 있다. 어쨌든 산상수훈은 단순히 윤리적인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 제시된 것은 아니다.

  • 25.12.22 09:09

    천국의 현재성으로 인한 복(마5:3)은 산상수훈의 전반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명령형 앞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산상수훈을 파악함에 있어서 명령형이 있는 문맥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즉 이 산장수훈은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응답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영적이며 윤리적인 본성에 그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

    결국 산상수훈은 일반적인 집단을 대상으로 하여 윤리적인 삶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속적인 삶을 포기한 자들에게 선포하신 것이다. 맨 처음에 언급된 두 가지의 복(福,beatitude)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감을 맛보는 자들이 아닌, 역설적으로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들에게 임한다(5:3-4). 이러한 자들은 교만하지도 않고, 쉽게 만족하지도 않으며, 일상적인 기준에 의해서 승리의 삶을 살았다고 얘기하는 자들이 아니라, 겸손하고 핍박받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공의가 성취되기를 간구하는 자들을 말한다(마 5:5-12) .복(福)개념에서 언급된 겸손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의(義)는 서기관들이나 바라새인들의 의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 25.12.22 09:09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삶이란 예수님 당시의 시대에 모세의 율법을 따라 살아가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로서, 일반 유대인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삶이었다(마5:20).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들보다 더 큰 의(義)를 가졌는데 그 이유는 율법의 외적인 명령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그 내용이 갖는 깊은 의도에 따라 살며, 율법의 외적인 형식에 만족하지 않고, 그 내용이 의미하는 바에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한다(마 5:21-48).이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 사역의 증거를 삶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마5: 13-16). 무리에게 말씀을 강론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모세의 율법과 자신의 말씀과의 관계와,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셨다(마 5:17-19).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율법에 대한 랍비적 설명들과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위의 기준을 찾기 위해 율법의 문구에 대한 정확한 해석에 집착하는 것이 랍비적인 해석이라면, 예수께서는 단순히 율법의 해석자로서가 아니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5:22, 28, 32, 34, 39, 44)라는 말을 사용하여

  • 25.12.22 09:09

    선포하는 자로서의 권세있는 선생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참조. 7:29). 예수께서는 삶에 적용하는데 있어 많은 제한성을 갖고 있는 율법의 가르침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가질 것을 언급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태도와 관념 속에서 행해지는 삶에 대한 전반적인 자세를 가르치려고 하셨다.

    이와 같이 랍비적인 입장과 다른 예수님의 해석은 적대자들에게는 반드시 되갚음을 하였던(마 5:38-39) 당시의 법 개념을 뛰어넘는 것이었다(43절에 언급된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두 번째 인용 구절은 구약에서 인용하신 것이 아니라, 당시 행해지던 유대적인 해석의 한 의도를 인용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영적으로 신실하며 소박한 자들이다(6: 1-18). 그들은 물질을 땅에 쌓아두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쌓아두는 자들이 다(6:19-34). 또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데 마음을 쏟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향하여 스스로를 판단하는데 온 마음을 쏟는 자들이 다(7:1-5,13-14,21-26). (一>복, 주기도문)

    Ⅲ. 누가복음 : 평지에서 행하신 설교

    눅 6: 20-49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설교는 그 대부분이

  • 25.12.22 09:10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산상수훈의 내용들과 병행구를 이룬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설교의 서두 부분은 마태복음의 서두 부분과 꽤 다른 점을 보여 주는데, 예수께서 산이 아니라 ‘평지에 서셨다´는 점, 병고침을 받은 기사,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에 대한 언급, 심지어 이방 지역(눅 6:17-19)이라 할 수 있는 두로와 시돈의 해안지역에서 온 자들에 대한 언급 등이 그러한 점들이다.

    두 복음서는 대체로 거의 같은 윤곽을 가지고 있는데, 복들에 대한 비슷한 설명들(마 5:3-12,눅 6:20-23), 관계에 대한 가르침, 원수를 사랑함, 판단에 대한 언급(마 5:38-48, 7:1-5, 눅 6:27-38, 41-42), 열매를 통해 나타나는 선악의 증거들에 대한 교훈(마 7:15-20, 눅 6:43-45),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여, 주여라고 부르느냐”와 같은 물으심(눅 6:46, 마 7:21-23에서는 길게 제시되어 있다), 집 짓는 두 사람에 대한 비유(마 7:24-27 눅 6:47-49)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나 누가복음에서만 유일하게 나타나는 부분이 세상적인 복을 받은 자들에 대해 화가 임하리라는 내용(눅 6:24-26)과

  • 25.12.22 09:10

    눅 6:39-40절에 해당되는 부분들이다(병행구. 마 15:14, 10:24-25).

    두 개의 설교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복에 대해서는 두 복음서가 약간씩 다른 입장을 보인다. 누가복음이 현재 이 땅 위에의 가난함, 굶주림, 울고 웃는 사람의 외적인 모습을 하늘나라의 복된 삶에 참여하는 모습과 강하게 대조하고 있는 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윤리적이며 영적인 본질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모세의 율법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특별한 관계성이 마태복음에는 나타나고 있지만 누가복음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 참고 문헌
    D.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New York: 1963) , W.D Davies, The setting of the sermon on the Mouut(Cambidge 1964) , R.A. Cuelich. The Sermon on the Mount (Waco, 1982) , H.K. McArthur. Understanding the Sermon on the Mount (1960, repr. Greenwood. Conn, 1978).

  • 25.12.22 09:11

    출처: <GODpia성경사전: 아가페출판사>.

  • 25.12.22 09:38

    포스팅 본문을 읽고 이 아가페 글도 읽으니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습니다.

  • 25.12.22 11:47

    @노베 공감합니다^^

  • 25.12.22 09:21

    *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복음.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는 유대 지도자들이 강조하는바 문자적 율법 수행을 종종 거부하심으로써 율법 파괴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친히 율법의 완성자이심을 선포하셨고, 또 율법과 복음의 긴밀한 연결성과 그 발전적 관계성을 강조하기도 하셧다. 한편 이 같은 율법과 복음, 또는 율법의행위로 인한 의(義)와 복음의 은혜로 인한 의(義) 사이의 관계는 매우 심오한 것으로 깊은 통찰이 요구되는 성경 주제 중 하나이다.

    우선 구속사 전개의 방법론적 측면에서 이 양자의 관계를 살펴보면, (1) 율법 수여의 동기와 정신은 모두 다 그리스도의 등장과 사역을 예표하고 있다는 점에서(히8:5), (2) 예수께서는 구약 율법에 포함된 죄인을 향한 공의와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셨다는 점에서(요 19:30), (3) 예께서는 율법의 정신을 더욱 승화시키고 그 참 뜻을 나타내심으로써 완전한 천국 시민의 도덕률을 제시하셨다는 점에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따라서 율법과 복음은 부정과 폐지와 대치의 관계가 아니라, 긍정과 완성과 발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양자의 관계를 비유하여 성경은 '그림자와 실체','몽학선생과 참 선생'의 관계로

  • 25.12.22 09:21

    묘사하고 있다(갈 3:24; 히 8:5).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율법과 복음을 구원의 유효성이라는 관점에서, 또는 그 목적 및 기능론적 측면에서 고찰할 때에는 양자는 첨예하게 대조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갈 3장 주제 강해 '율법과 복음의 비교', '율법과 복음의 관계 및 단절성'을 참조하라).

    한편 예수께서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자신(복음)을 역설하신 이유는 (1) 당신의 율법에 대한 신앙 개혁적 가르침을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 기득권(旣得權)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는 자들의 오해를 불식(拂拭)시키기 위해서이고 (2) 율법 정신의 승화를 가르치는 당신의 교훈을 빌미로 율법 폐기론까지 주장할지도 모르는 방종한 자들을 동시에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출처: “마태복음 5장”, <호크마 주석>.

  • 25.12.22 09:41

    호크마 답지 않은 뭔가 합리화의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공감은 됩니다.

  • 25.12.22 12:05

    @노베 읽고 보니 공감이 됩니다.

  • 25.12.22 10:12

    이 글을 읽고 산상수훈에 대해서 더 잘 앍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관련 성경구절을읽고 은혜를 받게 되어 감사합니다.

  • 25.12.22 12:07

    네, 공감합니다.

  • 25.12.22 12:09

    산상수훈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조금 다르게 기록된 것은 솔직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코람데오님의 글과 댓글을 통해서 성경을 더 공부하게 됩니다.

  • 25.12.22 16:15

    네, 저도 그래요. 공감합니다^^

  • 25.12.22 16:17

    산상수훈을 여러 양질의 주석 내용으로 파악하니 참으로 좋습니다. 성경을 더 열심히 읽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 25.12.22 19:16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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