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뻔 했다는 책 제목처럼 조금씩 일의 무게에서 벗어나려해도 오늘도 습관처럼 출근길에 오른다. 소크라테스는 한가로운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라고 말했지만, 이 간단한 이야기를 알면서도 평범한 미생들이 삶에서 여유를 찾기란 맘처럼 쉽지많은 않다.
잠시 쉬고 싶은 하루였다. 더욱이 오랜만에 아침부터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았나. 하루 휴가를 내고 완주로 향했다. 직장인의 작은 일탈이 시작됐다.
전라북도 완주를 일탈지로 선택한 데에는 완주가 요즘 말그대로 '핫'한 여행지기 때문이다. 즉흥 여행인 만큼 기왕이면 뜨거운 여행지로 가면 좋을 듯 싶었다. 완주는 세계적인 그룹 BTS가 최근 뮤직비디오를 찍어 유명해진 곳이다. 완주 어딜 가나 BTS가 홍보 문구에 등장할 정도다. 연예인을 좋아할 나이는 한참이나 지났지만, 그래도 화제가 되는 여행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잠시 쉬자
완주의 역사는 마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마한의 영토였다가 백제가 마한을 점령하면서 백제영역으로 편입됐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신라에 병합되었다가 757년 전주라 바뀌고 완산정이 설치됐다. 900년 견훤이 완산에 후백제를 건국하였고 936년 후백제 멸망 이후 다시 고려의 영역으로 편입됐다. 이후 행정구역상 전주로 불리우다가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면서 전주군이 전주와 완주로 분리되었다.
완주는 전라북도 북부 중앙에 위치해있다. 조선시대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를 보면 '가거지' 즉, 선비가 살만한 땅으로 지리, 생리, 인심, 산수 등 4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고 설명되어있다. 전주 완주를 둘러싼 지역은 가거지에 해당하는 청정지역이다. 그래서 완주, 전주는 전통 선비문화가 남아있는 일명 양반마을로 불리운다.
고택에서 마시는 커피
소양면 종남산 산골에 한옥들이 모여있는데 이곳이 오성 한옥마을이다. 산중턱에 모여있는 한옥은 지금은 여행자들을 위한 까페와 책방, 속소로 운영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아원고택이다.
고택에 도착하니 하늘이 조금 더 짙은 파란색이다. 푸릇한 녹음과 정겨운 한옥지붕들을 보니 어느새 마음이 여유롭고 포근해진다. 주말에는 인파가 북적대지만 평일이라 다소 한산한 느낌이다. '역시 연차를 내고 평일에 오길 잘했구나'
아원고택 입구
아원고택은 사실 원조 완주고택은 아니다. 경신년에 지어진 경남진주의 250년된 한옥을 경치좋은 오성마을로 옮겨 이축한 것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한옥에 현대적인 미술관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어 신선하고 새롭다.
한옥은 총 4개의 숙소가 있다. 만사를 제쳐놓고 쉼을 얻는곳인 만휴당, 안개와 노을이 있는 곳인 연하당, 이야기가 있는 설화당과 천목다실이 그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묵어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갑자기 온 여행에 빈방이 있을리 없었다.
아원고택은 아원갤러리와 연결되어있다. 1인당 만원이라는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고즈넉한 고택의 분위기와 탁 트인 종남산 자락 풍경을 볼 수 있으니 그것으로 된 셈이다.
아원고택에서 바라보는 풍경
이외에도 오성한옥마을에는 소양고택, 소담원, 녹은재 등 고택이 많다. 소양고택은 고창과 무안의 철거 위기에 놓인 130여년된 고택 3채를 이곳으로 옮겨 3년동안 장인들의 손을 거쳐 전통 방식 그대로 복원된 것이다. 한옥마을에는 한옥 투숙객 외에는 출입제한이 되어있지만 꼭 한옥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한옥 지붕이 보이는 낮은 담장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시름이 잊혀진다.
이곳에서는 걸음도 저절로 느려진다. 천천히 걷다보니 풍경은 더욱 정겨워지고, 흙길에 피어난 꽃한송이에도 기분이 행복해진다.
소양고택 플리커 책방
소양고택과 잘 어울리는 모던한 카페 두베
위봉산성, 위봉사, 위봉폭포
오성한옥마을에서 2km 내외에 위봉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마을이름이 붙은 사찰, 산성, 폭포가 있다. 특히 위봉산성은 BTS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라 최근 방문자들이 늘었지만, 사실 산성은 전쟁이나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한 정책사업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위봉산성은 1675년 숙종 1년에 축조됐다. 유사시에는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이성계)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함인데, 실제로 동학농민운동때 이곳 위봉산성으로 피신했던 적이 있다.
전체 길이는 16km 인데 지금은 성벽 일부와 서문만이 남아있다. 아치형 성문위로 돌담길을 걸어보는데 이게 끝인가 싶을 정도로 남은 산성이 별로 없다고 느낄 때쯤 길 건너에 성벽이 이어져있는 것이 보였다. 안타깝게도 도로 공사를 하면서 성벽을 둘로 나눈듯 싶다.
큰 돌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산성길을 걷다보니 조선시대 여기까지 무거운 돌을 들고 왔을 이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까.
위봉산성
위봉산성에서 자가용으로 5분정도 가면 위봉사가 나온다. 위봉사는 백제 무왕 시대 사찰로 창건연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신라말기 최용각이라는 인물이 이곳에 와서 보니 세마리의 봉황새가 절터를 에워싸고 싸움을 해서 위봉사라 불렸다.
특히 우리나라 사찰에는 설화나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많다. 불심이 가득했던 당시 사회에서는 아마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려운 현실일 수록 기대고 의지할 곳이 필요한 법이고 사찰은 민초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곳이었다.
위봉폭포까지 보고 나니 어느 덧 오후 햇살이 뉘엿뉘엿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때다.
봉황새가 내려앉았다는 위봉사
위봉폭포 전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