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사랑 (9월 16일에 받은 카톡 편지)
서울에서 목회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나의 주요 고객들은 대부분 우울증 환자들이다.
여기 개봉동에서 교회를 시작한 첫 해부터 몇 년 동안 여름마다 비가 많이 오는 긴 장마를 겪었다. 어느 주일 낮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교인들을 배웅하기 위해 교회 출입문으로 나간 아내가 어떤 사람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끝에 그 방문객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 노숙자예요.”
그런 후에 한쪽 팔에 기브스를 한 60대 남자가 아내의 안내를 받고 들어와 식탁에 차려준 음식을 깨끗이 비우며 식사를 마쳤다.
오후 2시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그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서성거렸다. 그는 몇 마디 이야기를 건네며 ‘다음 날 오전 10시 기도회에 오겠다’는 말을 던지면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약속 시간에 나타났다. 기도회가 끝나고 각자 개인 기도를 하는 시간에 그가 갑자기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더니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자기는 전주에 있는 어느 교회의 장로인데 동생 빚보증을 섰다가 강남 반포에 있는 아파트 세 채를 날리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맨 몸으로 쫓겨나 어느 개척교회 건물에서 더부살이를 하다가 최근에 우리 교회 근처로 이사를 왔다고 하였다. 그는 대학생 시절에 서울 경동교회에 출석하여 강원용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으며 기장교단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점심식사시간이 되어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후식도 함께 나누었다. 후식 후에도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그는 외국어대학교 일어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은행에 입사해서 지점장이 되었으며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이 살았는데 빚보증으로 졸지에 재산을 다 날리고 충격을 받아 우울증에 걸려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했으나 실패를 하였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아내와 아들이 항상 자기를 감시하여 출입도 부자유하다고 하였다.
그는 그날 저녁 식사까지 마친 후에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 날에도 아침기도회 시간에 나타났다.
그의 금융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고 흥미가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들었지만 매일 찾아와 하루 종일 두서없이 늘어놓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야기가 곁길로 새면 본 줄거리로 데려오는 것 밖에 없었다.
그는 한동안 열심히 교회에 출입하면서 가족들이 짜증 낼 수밖에 없는 자기 이야기를 한없이 반복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가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에 아침 기도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후 그가 찾아와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중고차를 사서 택배 일을 시작하였다는 것이었다. 평생에 한 번도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막 노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가 우리에게 자기 히스토리를 쏟아 놓으면서 자기 자신을 현실적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고 그로 말미암아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 택배 일을 하였는데 당시 그의 나이가 73세였다.
그의 마음의 병이 치유되어 그가 경제활동을 시작하자 그의 가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모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00전자 연구원으로 취직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가정은 비참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를 며느리로 얻었다. 둘째 아들도 은혜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결혼하여 건강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의 간증에 의하면 이런 모든 일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와 이야기를 쏟아놓으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시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경제적으로 망한 사람들과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이 우울증 치료 전문가가 되었다. 내 경험의 결론은 우울증 치료의 최고 약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상대방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털어 놓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설교자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지금도 예배가 끝나면 똑같은 이야기를 거듭거듭 반복하는 사람이 있고 전화를 통해서 엉뚱한 울분을 나에게 쏟아내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사랑에 굶주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랑에 굶주린 세상을 향해 주시는 사랑의 도구들이다.
2021.9,16. 목요일에
카리스마 진목사님께 받은 카톡 편지.
보내주신 분께 허락을 받아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