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장 1-7절. 이고니온 전도. 요약설교
1절.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1. 이고니온은 현재 코니에(Konieh)라고 불리며, 비시디아 안디옥의 동남쪽 140km에 있고, 루스드라에서는 북서쪽으로 60k 떨어져 있습니다.
처녀 순교자인 데클라(Thecla)가 여기서 바울에게 전도받아 믿었다고 합니다.
2. 바울과 바나바는 비디시아 안디옥의 신생 교회를 두고, 이고니온으로 왔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은 약 140킬로 되는 거리로서 걸어서 일주일쯤 소요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가라는 말씀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안 안디옥에서처럼 이고니온에서도 먼저 동족인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핍박과 푸대접을 받았어도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허다한 유대인과 헬라인이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바울과 바나바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2절.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바울의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불순종하는 유대교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질해서 바울과 바나바에 대해서 악감을 품게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서는 마귀의 저항 세력이 역사합니다.
<예수 믿기만 한다고 천국 가냐? 율법을 열심히 지켜야 천국 가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메시지를 주었지만 믿는 사람이 있고 안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 강도는 믿고 구원을 받았고, 좌편의 강도는 ‘예수 너나 구원하라’고 비난했습니다.
메시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2. 마음이 불순종하는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복음과 예수님을 거역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먼저 마귀를 사로잡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와서 말해도 거부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입니다.
3절.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1. ‘두 사도가 오래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곧바로 도피하거나 떠나지 않았고, 오래 있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순종하는 자녀, 거역하는 자녀를 포기하지 않고 오래 기다려주었습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2.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힘입어서 담대하게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영적으로 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기도하고 주님을 힘입어서 담대하게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3.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핍박이 있었지만, 주님을 힘입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자, 기적과 표적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말씀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율법주의와 마귀의 역사는 죄인인 사람이 부지런히 율법을 지켜서 종노릇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믿고 은혜받는 일은 너무나 쉽기 때문에, 율법주의 마귀가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복음 증거에 대해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나게 해주셨습니다.
이 표적과 기사는 잘 믿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핍박과 반대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핍박이 심할 때 주님께서 기사와 이적으로 복음 증거를 입증해주셨습니다.
4절.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1. 바울과 바나바가 열두 사도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넓은 의미로 ‘사도’라고 칭했습니다.
2.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두 그룹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유대교인 편에 서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는 바울 사도 편에 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쪽 편인가 저쪽 편인가가 아니라, 패가 안 갈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음이 오면 사탄의 세력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했습니다(마 10:34)
우리는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여,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불을 가지고 세상에 불을 질러야 하겠습니다.
5절.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1. 이고니온에서 불순종하는 이방인과 유대교인과 관리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심한 말로 모독하고, 심지어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면, 구원받는 모습을 보는 기쁨도 있고, 심한 모독과 핍박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핍박을 당하거든 하늘에 상급이 큼으로 기뻐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2. 우리가 예수 믿다가 혹시 감옥에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6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1. ‘루가오니아’는 비시디아 지방의 동쪽 지역인데, 타우루스 산맥의 북쪽에 있습니다.
루스드라 성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디모데의 고향이었습니다.
루스드라는 이고니온에서 약 30킬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더베는 루스드라에서 약 100킬로 떨어져 있고, 가이오의 고향이었습니다(20:4).
2. 핍박을 당할 때 무조건 그냥 앉아서 개죽음을 당하면 잘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 사도 바울과 바나바도 도망했다고 했습니다.
일제 강점 시대 신사 참배 때도 그냥 가만 앉아서 감옥 가는 것이 제일 잘하 는 것이 아닙니다.
박윤선 목사님처럼 만주로 도망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후학들을 양성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마귀의 종들이 돌로 쳐 죽이려고 하니까, 도망하여 루스드라와 더베로 가서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태복음 10장 23절에서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도 한 교회에서만 붙어 있으려고 하지 말고, 핍박을 받거든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7절.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1.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 살려고만 이고니온에서 도망을 한 것이 아니라, 루스드라에서도 다시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전도하다가 도망했으므로, 무서워서 루스드라에서 전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도망한 목적이 복음 전도가 아니라 자기 살려고만 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도망간 것은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 그러므로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복음과 예수님을 전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번 예수님을 위해서 헌신했으면, 은퇴한 후에도, 계속 복음을 전하고 주의 일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장사를 해도 교회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하고, 재혼을 했어도 다시 신앙생활 잘해야 하고, 처녀가 시집가서 아이를 낳았더라도 신앙생활 더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 잘 섬기고, 전도 잘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고, 말씀 공부하여 힘을 얻어서,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귀한 열매들을 많이 맺으시고,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