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마다 지진 이야기다. 울산 주변에 석유화학단지와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해 있다보니 지진에 이어 2차 폭발 및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 등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까지 외국에서 발생하는 지진 피해 소식만 듣다가 직접 경험 하니 불안감이 더 가중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4월에 발생한 일본 구마모토 연쇄 강진 피해상황을 보면 1차 지진 이후 대부분 집으로 귀가했다가 2차 강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지진에 철저히 대비한다는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 일본이 “끝난줄 알아는데 또... 이런 지진은 평생 처음” 이라는 넋두리 속에서
더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처음 경험하는 지진에 놀란 국민들을 두고 허둥대는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모습이 크게 실망스럽다.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정말 큰 재앙이 오고 난 뒤에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인줄 알았는데” 라는 넋두리를 늘어 놓을려는 건지 답답하다.
사태가 급박해지고 민심이 들끓자 이제야 너나 할 것없이 모두 나서는 모양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더민주는 최고위 소집, 원전 긴급
방문에 이어 문재인 전 대표가 지역 국회의원들을 앞세우고 경주 월성원전과 부산 기장 고리원전을 차례로 방문했다. 최고위 회의에서는 정부를 향해
“이번에도 국민 안전에 가장 중요한 골든 타임을 놓쳤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규모 5가 넘는 강진에도 국민 안전처 홈페이지가 지진 발생 후
3시간 동안 먹통이였다”고 꼬집었다. 국민의당 역시 긴급 비대위원 연석회의에서 “지난 7월 울산 지진 때도 늑장대응 하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 라며 성토했다. 새누리당 역시 긴급 당정 간담회을 열고 “폭염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왔던 안전처 문자가 정작 큰 재해, 재앙을
접했을 때는 제대로 오지 않았다”며 국민안전처를 향해 호통을 쳐 댔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경주를 방문한지 하루 만에 정부 부처 장관들이
총리공관에서 지진대책을 두고 머리를 맞대더니 순식간에 경주를 ‘재난특별지구’로 지정했다. 한 눈에 봐도 이렇게 민첩할 수가 없다.
정말 걱정이다. 꼭 일이 터지고 민심이 들끓어야 이렇게 움직일 건가. 하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민첩함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이냐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 대개조를 외치면서 국민안전처가 신설됐고 지방자치단체에도 안전관련 부서가 설치됐다. 그런데 이번 지진 발생 후
이들 기관들이 움직인 과정을 보면 ‘역시’란 말이 절로 나온다. 안전처는 ‘문자 먹통’이고 지자체는 대피하라는 방송만 줄기차게 거듭할 뿐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할지는 전혀 알리지 않았다. 지난 7월 울산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지진피해를 경고하며 대비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당시는 모두들 강건너 불 보듯 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대통령에게 사과하라 공무원을 문책하라며 호통을 치고 있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깡그리 잊어버리고 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정말 큰 재앙이 와야 정신들을 차릴 것인지. “내일 지구가 멸망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기사입력: 2016/09/22 [14:42] 최종편집: ⓒ 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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