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이파리를 버림으로써 성장하는 것이다. 봄이면 새순을 틔우고 가을이면 그것을 버리는 순환을 거치면서 나무는 우람해지고 깊어진다. 자연의 섭리는 어김없고 가차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슬픔이 가득하다. 떨어지는 이파리에 투영된 화자의 시선은 천천히 자기의 내면을 향해서 걸어 들어간다. 낙하의 운명에 갇힌 우리 생의 쇠락을 그 속에서 읽고 있는 것이다.
‘떨어지는 이파리는 나무의 편지’라고 첫 연은 시작된다. 나무에서 이탈되는 이파리는 나무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떨어짐으로써 나무의 생애를 더 풍성하게 해 주는 이파리들은 거대한 순환 안에서 또 다른 나무에게로 전해지는 편지인 것이다. 그 편지가 화자의 가슴에 먼저 닿은 것은 어쩌면 화자 자신이 나무와 우리를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태생부터 눈시울 붉히고 숱한 고뇌의 시간을 보내는/ 젖은 잎사귀들.’을 바라보면서 화자는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그분이 주신 현의 울림에 따라’ 푸르러 지고 붉어지고 마침내 낙하하고 있다고. 이 시에서 ‘그분’은 절대자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고, 나무일 수도 있다. ‘그분’의 섭리에 따라 이파리도 화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도 푸르러지고 붉어지고 마침내 퇴락하게 되는 것이다. 화자는 배롱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꽃잎이 떨어진다/ 천 년 만 년 붉을 것만 같았던 꽃잎이/ 쇠락하는 왕조의 호외처럼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덕천골 골짜기에 서서 자신을 통과하는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한 그루 나무에 걸린 우리 생의 퇴락을 아프게 곱씹고 있는 화자를 통해서 우리는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천 년 만 년 붉을 것만 같’은 이 생, 이 순간은 흘러가고 있으며,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난 오늘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눈물 없이 읽기 힘든 떨리는 손편지’라고 화자는 우리의 손에 이파리 한 장을 건네준다. 그것은 ‘떨리는 손편지’일 수밖에 없는 화자의 마음을 따라 가게 하는 이정표다. 화자에게서 전해진 젖은 이파리 하나가 우리를 끌고 가는 곳은 화자의 시간 속이다. 흘러가는 화자의 시간 속으로 이파리 한 장을 타고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낮과 밤이 짧아졌다 길어졌다하는 내 손바닥에도 몇 백겁의 길 따라 온 눈물의 홈통이 있다.’ 화자의 손바닥은 한 장의 이파리다. 수많은 잎맥으로 초록을 져 나르던 이파리처럼 화자의 손바닥에도 ‘눈물의 홈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축축하게 젖은 ‘등줄기에서 발끝까지’가 화자가 감당해야 할 낙하의 높이다. 겨우 한 질을 넘는 그 높이에서 화자도 우리도 ‘천 년 만 년 붉을 것’처럼 웃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레 덕천골에 비가 내’리는 것처럼 우리의 생에도 비가 내릴 것이다. 화자가 바라보고 있는 비와 이파리와 배롱나무 꽃잎은 우리 생 어디쯤을 적시고 있을까.
창밖으로 나뭇잎이 떨어진다. 한 잎씩 떨어지던 것이 가을이 깊어지자 우수수 떨어진다. 나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전히 늠름하고 우리는 쓸쓸하게 창밖을 내다본다. 오소소 소름이 돋기 시작하는 서늘한 날씨를 외투처럼 걸치고 우리는 또 이 가을을 떨어져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