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설교
로마서 11장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구원하실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11장 1절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겠느냐,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버리신 것인가? 답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11절 뒷부분에 보시면,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지 않고 넘어짐으로, 이방인에게 구원이 향했다고 설명합니다. 사도행전에 보시면, 바울 사도가 어떤 지역에 전도 여행을 가면,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이죠. 유대인들 중 몇 사람은 복음을 믿고 따랐지만, 대부분은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과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결국 사도는 그 도시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방인들은 많은 사람이 믿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받은 로마 교회도 마찬가지지만, 서신서를 보시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교회에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정말로, 12절 말씀처럼, 유대인들의 거부, 유대인들의 넘어짐이 세상에 풍성함을 가져온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이끈 것이죠.
바울 사도는 이런 자신의 사역이 “유대인들을 시기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4절 보시면,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고 했다고 하죠. 복음이 얼마나 좋은지를 이방인들에게 잘 전해서, 유대인들이 그것을 보고는 자기들도 복음을 따르고 싶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도의 마음이 여기서 잘 느껴지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졌지만, 바울의 마음에는 항상 유대인들이 있었던 겁니다.
사도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5절 보시면,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하고 말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지 않아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는데, 만약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는다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감람나무, 올리브 나무죠. 감람나무에 빗대어 이 사실을 설명합니다. 1905년에 발견된 팔레스타인 농사법에 관한 문서에 보면, 당시에는 더 이상 열매 맺지 못하는 참 감람나무 줄기에다가 어린 야생 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열매 맺지 못하던 참 감람나무에서 야생 감람나무로 영양분이 흘러가고, 열매가 맺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는 유대인들은 감람나무, 참 감람나무로, 이방인들을 돌 감람나무라고 부릅니다. 돌 감람나무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였던 야생 감람나무를 말합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당시에 열매 맺지 못하는 참 감람나무의 가지를 자르고, 야생 감람나무를 접붙여서 열매를 맺었듯이,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자르고, 거기에 이방인들을 접붙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농사에서, 야생 감람나무를 붙이는 이유는, 참 감람나무를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 바울 사도가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유대인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대단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자랑해서도 안 되고, 유대인들을 무시하고 멸시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기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접붙이셨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죠. 가지는 스스로 떨어져 나와서, 다른 나무에 붙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접붙여 주신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이 사실에 감사하지 않고, 교만하여지고, 우쭐하면, 그들도 잘려나가게 될지 모른다고 사도는 경고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먼저 택하셨지만,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시고 하나님께 붙여 놓은 백성이었습니다. 이방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해서, 이방인에게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 역시 이방인이 잘해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누구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우리도 그 누구도 우쭐해 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가 다른 성도를 대하는 자세와 마음이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 사도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낫게 더 나은 사람으로, 하나님과 교회에게 더 가치있는 사람으로 여기라는 겁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 사람의 단점과 안 좋은 점을 보며 지적하고 험담하고 꼬집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보고 그 사람을 세워가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아무 자격 없이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기억하면서, 서로를 향해 더욱 겸손히 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은혜로 세워진 공동체이기 때문에, 교만과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혹 그런 마음이 들 때, 다시금 복음을 묵상하셔서 깨어지고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다른 사람을 겸손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