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세보 효과 / 복향옥
어려서부터 엄마한테 듣던 말씀 중 하나가, 손가락질 받을 언행은 삼가라는 것이었다. 민폐 되지 않게 살라는 거였다. 또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 항상 겸손하며, 배려하고 양보하고 참으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배기도록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하고 싶은 일이나 먹고 싶은 걸 챙기는 일은 늘 다른 사람 다음이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착해서 손해만 본다고 걱정해 주었다. 또 어떤 이는 지능이 살짝 달리는 줄 알았다며 웃기도 했다. 그렇게 훈육한 엄마가 가끔은 야속했다. 언젠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푸념처럼 “엄마가 날 그렇게 키워서 뭘 당차게도 못하고 바보처럼 살았네요.” 했다. 딴에는 웃자고 한 얘기였는데 엄마가 어찌나 미안해하던지, 그렇게 산 덕분에 사람들한테 칭찬받는 둥 하면서 수습하느라 혼난 적이 있다.
구순을 넘기면서 엄마는 부쩍 약해지기 시작했다. 툭하면 “왜 이렇게 오래 산다니.” “하나님은 나를 왜 빨리 안 데려가신다니.” 하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곤 했다. 잘 들리지 않아 대화가 어려워졌다거나 약이 아니면 이틀을 견디지 못하는 무릎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전에는 충남 청양과 전남 광양을 혼자서도 거뜬히 오갔지만, 누군가 동행하지 않으면 여행은 불가능한 일이 됐다는 사실에 마음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누구한테라도 폐 되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던 엄마였다. 게다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도움 되는 걸 사명처럼 생각하던 분이었기 때문에 더 무기력해졌으리라. “어찌어찌 거기 간다 한들, 바쁜 우리 막내딸 파 한쪽 다듬어줄 수도 읎는디 가서 뭐 한다니?” 하던 엄마 음성이,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먹먹하게 한다.
아흔일곱에 돌아가시기까지 엄마 침대 협탁 위에는 약봉지들이 수두룩했다. 그 약들을 헷갈리지도 않고 빠뜨리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통증 때문에 먹어야 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수면제가 걱정이었다. 만성이 됐는지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씀에 언니들과 의논했다. 소화제를 수면제로 둔갑시키기로 했다. 마침 수면제를 새로 사야 할 시기였다. 처방전 없이는 살 수 없는 건데, 약사 친구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가져왔다며 거짓말했다. 약통에 상표가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수면제에는 특별한 성분이 들어있어서 어느 정도 먹다 보면 차츰 불면증이 치료되고 나중에는 약 없이도 잘 수 있다고 하더라며 거짓말의 수위를 높였다. 이삼일 간 엄마는 약 효능에 대해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우리는 한목소리로 그만큼 수면제에 내성이 생겼다는 얘기라며 우겼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엄마는 정말로 수면제 없이도 자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우리는 잔꾀의 승리를 자축했다.
엄마는 정말 그 수면제 효과를 믿었을까? 생각하다가 평생을 두고 내게 보약을 지어주셨다는 걸 깨닫는다. 그동안 부작용이 있는 것처럼 여겼던, 그러나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데에는 ‘겸손과 사랑’이라는 약이 있었다는걸.
내게도 이제 ‘플라세보 효과’가 나타나는가 보다.
첫댓글 '플라세보효과'는 어떤 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처방인 것 같아요.
약 의존성이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이번 글을 선생님처럼 '플라세보효과'를 주제로 쓰려고 했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렸네요.
어머니의 불면증을 자매들이 아주 현명하게 해결하셨네요. 지난 번 글에서는 아버님, 이번에는 어머님을 쓰셔서 선생님의 고운 심성의 근원이 어디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아흔 일곱에 소천하실때까지 겸손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며 사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람 답게 살 수 있었던 데에는 ‘겸손과 사랑’이라는 약이 있었다는 걸." 소화제 속에 스며든 것 같습니다.
사랑스런 모녀지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