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민요와 영원한 ‘좋네’
3박 4일 제주도엘 다녀왔다. 성산포, 그 멋진 곳 그리고 숙소는 피닉스 아일랜드. 모두가 좋았다. 아주 가까이에 섭지코지라던가? 거기 콘크리트로 된 거대한 예술 공간이 있었는데, 특히 그 안에는 태초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깊은 숲속, 늙은 여인네,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흑백 사진을 통해 으스스함을 느꼈다.
돌아오면서 ‘코지’가 뭔지 궁금해 사위에게 물었다. 사위가 답하기를 ‘곶’의 제주도 방언이란다. 나는 갑자기 또 흥분하여 잠시 가족들과 떨어져 저만큼 종종걸음을 칠 수밖에. 그건 내 버릇이다. 노래 부르고 싶은 때 영락없이 드러나는 본색 말이다. ‘몽금포 타령’이다.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임 만나 보겠네/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임 만나 보겠네// 바람새 좋다고 돛 달지 말고요/ 몽금포 앞 바다 놀다가 가지요…
시치미를 떼고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니, 그래도 눈치를 챘는지 가족들이 웃는다. 사위가 안 그래도 궁금했던 ‘섭지’에 대해 한 마디로 설명한다. 재사(才士)가 많이 태어나는 땅이라나? 여기서 잠깐. 고백하건대 섭지보다 ‘곶’이 문제다. 곶은 한자로 串이라고 표기한다고 들어 알고 있다. 새의 부리처럼 톡 튀어나온 바닷가의 특이한 지형이 곶이라 했다. 자연스레 최백호의 그 ‘영일만 친구’의 영일만, 그곳 호미 곶을 떠올리게 된다. 한데 'ㅈ'이 들어가는 한자는 거의 없으니 섭지코지는 이래저래 매력이 있다고 하자.
2012년 12월 17일에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낯선 땅에 올라와 그저 갈팡질팡, 허둥지둥, 오락가락 하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초대를 받았으니, 내가 제대를 할 무렵에는 없었던 부대의 불무리 성당을 거쳐 26사단 12*기보대대장 김화* 중령을 만난 것이다. 군인주일에 성당에서 그와의 첫 상면이 이루어졌다. 교우였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는 내게 안보 강연을 해달라고 했다. 당일 조금 일찍 올라가 대대장실에서 차 한 잔을 대접받았다.
암말도 않고 그냥 교육장으로 갔으면 될 텐데, 입이 방정이라 한 마디 한 게 화근(?)이었다. 북한 민요, 앞서의 ‘연평도 타령’과 ‘신고산 타령’을 장병들에게 가르치겠다고 해 버린 것이다. 장산곶 다음에는 당연히 ‘영일만 친구’를 쏟아낼 생각이었다. 대대장은 가만있는데, 김석주 주임원사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북한 노래(민요인데도?)눈 좀 무엇하다는 것이다. 나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한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고등학교 교과서에 두 민요가 버젓이 수록되어 버젓이 않은가? ‘師團歌’ 2절이 생각나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잃어진 북녘 땅을 찾아오리라/ 아아 우리는 불무리의 용사…….
제주도에서 돌아온 지 만 하루가 지났다. 나는 계속 몽금포 타령에 빠져 있다. 영일만 친구인들 어찌 예외이랴. 그리고 곶에 열중하다 보니까 환청에 그만 엮어 버리고 말았다. 제주도에서의 이틀째 날 허브 농장에 갔는데, 거긴 정말 꽃이 많았던 것이다. 화훼용 양귀비를 비롯 빨간 꽃, 노란 꽃, 하얀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언젠가 아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빨간 꽃을 보고 ‘빨갛네.’라 하면 틀린대요. ‘빨가네.’가 맞다나요? ‘노란 꽃’, ‘하얀 꽃도 마찬가지랍디다. ”
“그럼 ‘좋다’는?”
“‘좋네.’가 정답!”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떤 싱거운 사람이 또 다른 싱거운 사람 보고, 무슨 이야기 끝에
“야, 좋네.”
고 무심결에 했다 치자. 결과는 걷잡을 수 없을 터. 앞을 강하게 소리 내면? 우리말이 참 무섭다.
하지만 난 한갓 기우에 시달리고 있다. 절대 ‘좋네’가 ‘좋으네.’로 바뀌지 않는다. 다른 북한 민요 ‘군밤타령’을 모든 국민이 애창하는 한 말이다. 여기서 한 번 불러 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연평 바다에 어허 얼싸 돈(돛?)바람 분다/ 얼싸 좋네 하 좋네 군밤이여 에헤라 生栗 밤이로구나/ 산도 설고 물도 선데/ 누굴 바라고(*내 처지와 같다.)
이 정도가 되니 착각이 아니라, 내가 실재(實在) 위에 얹혀 있음이 틀림없다. 곶 /꽃/ 빨강 ․ 노랑 ․ 하양 등등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공간이다.
다음 주에 26사단 군악대에 간다. 내 사랑하는 전우(손자)들에게 줄 맛있는 한라봉을 배달해 달라고 부탁해 놓은 터. 그들과 ‘몽금포 타령’과 ‘군밤 타령’에다가 더 보태 ‘신고산 타령’을 접목시키고 싶다. 우리나라 최고의 군악대장 여군 군악대장 허수진 대위, 유지훈 분대장을 비롯한 그들. 유노윤호(정윤호) 일병이 세계적인 스타라지만 민요는 내가 앞서니 그도 제쳐둘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좋네'를 양념으로 친다. 허수진 대위가 자리를 비워 주리라, 잠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