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환적 병치은유의 시
지하철 정거장에서(In a Station of the Metro)
에즈라 파운드
군중(群衆)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the wet, black bough.
■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 1885. 10. 30 미국 아이다호 헤일리~1972. 11. 1 베네치아.
미국의 시인·비평가로 20세기 영미시에 끼친 지대한 영향 때문에 '시인의 시인'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중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를 지지하는 방송을 하여 전쟁 후에 체포당해 1958년까지 정신병원에서 억류되었다.
● 이해와 감상
파운드는 창작 동기를 "나는 3년 전에 파리의 지하철에서 갑자기 아름다운 어린아이의 얼굴, 부인의 얼굴 등을 보면서 그 인상을 표현하려고 애썼으나 그 신선한 감정을 나타낼 수 있을 만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중략) 나는 30행의 시 한 편을 썼지만 그것을 찢어 버렸다. 6개월 후에 그 반 정도의 시로 고쳤고, 1년 후에 2행의 짧은 시로 만들었다."
그는 '얼굴들'과 꽃잎들'을 대조시켜 이러한 대립이 빚어내는 묘한 효과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의 모더니즘은 다분히 한시(漢詩)와 비슷하다. 두 행의 시어의 선명한 대립이 빚어 내는 대구법, 감정의 배제는 한시에서 배워 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여간 이 시는 지하철 정거장에서 얻은 한 순간의 인상을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낸 이 2행의 시는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즘적 면모를 집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 은유의 의미
은유(隱喩)란 직유와는 달리 표면적인 유사성의 발견이 아니라 직감적으로 유사성을 찾기 어려우나 의미상 또는 내면적 정서 등에서 일부의 유사성을 인정하고 아예 본래의 의미를 비유적 의미로 바꾸어 버리는 어법이다. 은유를 메타퍼(metaphor)라 하는데 meta는 초월, 벗어남의 뜻이고 phor는 이동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은유란 어떤 사물이나 의미나 감정이 다른 사물이다. 의미로 옮겨져 전자의 사물이 후자의 사물로 전이(轉移)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경우 결코 유사성이 없어도 시인의 직관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전이 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때 비유는 유사성의 발견이 아니라 의미나 감정의 새로운 창조가 된다.
◆ 치환(置換)은유 epiphor의 시
치환은유란 두 사물간의 비교가 아니라 A라는 사물의 의미가 B라는 사물에 의해 자리바꿈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형태상으로 보면 'A는B이다'라는 구문이 성립한다.
싹
김용호
이상은
아름다운 꽃다발을 가득 실은
쌍두마차였습니다.
현실은
갈가리 찢겨진 두개의
장송의 만가였습니다.
아하! 내 청춘은
이 두 바위 틈에 난
고민의 싹이었습니다.
치환은유는 'A는 B다' 식의 은유로서, 보다 가치 있고 중요하지만 아직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원관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거나 구체적인 것(보조관념)으로 옮겨지는 의미론적 전이를 특징으로 한다.
치환은유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하나의 원관념에 하나의 보조관념이 연결된 단순 은유, 둘째는 하나의 원관념에 두 개 이상의 보조관념이 연결된 확장 은유, 셋째는 은유 속에 또 은유가 들어 있어 이중 삼중의 현상을 나타내는 액자식 은유가 그것이다. 자연과 현실의 모방이든 관념의 묘사이든 또는 선행 예술의 모방이든, 모든 모방의 요소가 있을 때에는 치환은유가 발현될 수 있다.
◆ 병치(竝置)은유 diaphor의 시
바다의 층계
조향(趙鄕 : 1917~ 1984)
낡은 아코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뽄뽄다리아>
<마주르카>
<디젤. 엔진이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년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병치은유는 서로 다른 사물들이 당돌하게 병치됨으로써 빚어지는 새로운 결합의 형태이다. 전이가 아닌 병치가 은유의 한 형태로 성립되는 근거는 휠라이트가 은유를 어디까지나 의미론적 변용 작용으로 본 데 있다. 자연계의 요소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자질을 생성하듯이 시에서도 이전에 없었던 방법으로 언어와 이미지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휠라이트는 병치은유의 예로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지하철 정거장에서」)이란 에즈라 파운드의 시를 인용했다. 이 시에서 병치되어 있는 것은 '얼굴들'과 '꽃잎들'이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같은 것인지 또는 다른 것인지 판단이 유보된다는 점에서 병치은유는 해체주의적 관심까지 불러일으킨다. 한국 현대시에서는 김춘수의 무의미시, 이승훈의 비대상시 등이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휠라이트는 순수한 병치은유가 비모방적 음악이나 추상화에서 발현된다고 했다. 곧 병치은유는 일상적이고 논리적인 의미를 배제하는 원리이며, 예술을 독자적이게 만드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 치환은유가 전통 은유라면 병치은유는 새로운 은유 형태이다. 치환은유가 '의미의 시'를 지향한다면 병치은유는 '무의미의 시' 또는 '존재의 시'가 되게 한다. 결론적으로 치환은유가 시 속에서 맡는 역할은 의미를 암시하는 데 있고, 병치은유의 역할은 존재를 창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진정한 은유는 치환과 병치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