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선 <리처드 로티, 우연성 · 아이러니 · 연대성>
저자 이유선
리처드 로티 철학의 핵심은 반표상주의다. 즉 로티는 인간이 진리를 표상할 수 있다는 플라톤적 인간관을 거부하고,.우연성에 기반하여 세계를 기술하고자 한다. 로티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를 기술할 수 있을 뿐 실재에 대한 진리 언명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언어 자체가 우연의 산물이며, 실재를 정확하기 기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티는 진리를 표상하는 도구가 인간의 의식에서 언어로 이행했을 뿐 여전히 표상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분석철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으로 전화하여 철저하게 자연주의적이고, 철저하게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한다. 기존 프래그머티즘의 전통을 따라가는 부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그 철학의 전제가 되는 반표상주의에 대해서는, 인간 이해에 대한 남다른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분명 생각할 거리가 많다
로티는 논증의 방식으로 진리를 구명하고자 했던 분석절학에서 벗어나,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철학적인 물음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서술했다. 로디에게 철학적 이론은 보편이나 공적인 문제보다는 이론가의 사적인 완성을 향한 욕망과 관련된다. 다시 말해 이론은 진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재서술의 성격을 갖는다. 로티에 따르면, 진리를 있는 그대로 표상하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은 다른 이론에 대한 재서술이거나 재-재서술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로터는 공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론에 천착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실천에 나서야 한다. 이처럼 로티의 입장은 이론과 실천을 분리하려는 매우 독창적인 관점을 지닌다.
● 네오 프래그머티즘
분석철학에서 벗어난 로티는 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에 영향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프래그머티즘은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관심을 둔다. 이런 맥락에서 프래그머티즘의 탐구는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우리의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탐구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장애에 직면했을 때 시작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믿음은 새로운 문제 상황에 의해 언제라도 새롭게 변할 수 있다. 즉 프래그머티즘에서 영원히 참된 지식, 진리라고 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공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구체화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실험해 보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반표상주의
로티는 서양철학은 진리를 향한 여정이 아니라 플라톤의 은유에 대한 계승으로 봤다. 플라톤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을 도구로 하여 자연에 감춰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즉 플라톤은 인간에 의해 진리가 '표상된다고 봤다.
하지만 로티는 이러한 플라톤 철학을 거부하며 애초에 인간에게는 진리를 비추는 '자연의 거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로티는 진리를 비추는 거울의 자리에 '의식' 대신에 '언어'를 가져다 놓은 현대철학에 대해서도, 그러한 시도는 형이상학적 부담을 덜기 위해 '자연의 거울' 이미지를 언어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여전히 본질주의적이며 표상주의적인 이원론의 틀은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입장은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로티에게 과학적 언어는 실재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술할 뿐이다. 따라서 로티는 듀이의 표현을 빌려 모든 이론은 실험과 실천을 거침으로써 '보증된 주장 가능성'의 지위를 인정받는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반표상주의와 우연성
반표상주의의 핵심은 진리란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언어 행위는 세계에 대한 서술, 재서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장 분명한 '고통'을 서술할 때에도 고통의 '실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통의 느낌을 서술하는 것이며 그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며, 심지어 잘못 서술될 수도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세계란 신념의 인과적 원인일 수는 있으나, 그 신념이 '참'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 신념을 '참'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세계의 실재가 아니라 다른 신념들이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티는 표상적 언어는 잘못된 형이상학적 논쟁을 이끄는 것외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반표상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반표상주의는 '우연'과 연결된다. 무엇이 '참'인지에 대한 진리 언명은 인간의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에, 인간적 영역의 바깥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참 혹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서술에 대한 것이지, 세계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로티는 언어를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한다. 달리 말하면 로티에게 언어는, 그것이 문자적인 언어든 은유적인.언어든 간에, 실재에 대한 표상이나 참/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진리 언명이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우연적인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언어로 밖에 서술될 수밖에 없는 '자아'라는 개념도 우연적이며, 마찬가지로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의 정당성 역시 그것이 실세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해당 사회체세가 그것을 '진리'라고 부르는 데 만족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
리처드 로티의 사상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핵심 어휘는 바로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다. 니체의 '시인'에 가까운 아이러니스트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본성이나 본질을 찾으려 하지 않고 남들과 소통할 수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존재다. 이 존재는 자신의 언어에 대한 고유성이 누군가의 영향에 의한 것은 아닌지 '영향에 대한 불안'을 끊임없이 느끼며, 자기만의 낱말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삶을 최종적으로 완성하고 정당화하고자 한다.
이러한 낱말을 로티는 '마지막 어휘'라고 부른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러니스트의 언어는 '바깥의 진리'를 향하는 형이상학자들과 달리, 마지막 어휘를 제외한 모든 언어는 마지막 어휘에 대한 비평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형이상학자의 언어가 진리를 향한 직선적 운동이라면, 아이러니스트의 언어는 자기 완성을 위한 순환적 운동을 반복한다.
아이러니스트가 '사적인 세계'를 추구한다면 '자유주의자'는 타자와의 '공적인 세계'를 추구한다.
여기서 로티는 슈클라의 자유주의 개념을 빌려온다. 슈클라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잔인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로티는 자유와 잔인의 관계를 순환적으로 묘사한다. 즉 잔인이 나쁜 것은 자유를 파괴하기 때문이고, 자유의 파괴가 나쁜 것은 그것이 잔인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순환은 아이러니스트인 자유주의자가 내세울 수 있는 '마지막 어휘의 특징으로 자유와 잔인에 대한 '실재'는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자유주의자의 연대는 공통 진리에 대한 공유가 아니라 각자의 사적인 세계가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기적 희망에 근거한다. 즉 도덕적 진보는 보편적 원리에 대한 발견이 아닌 타자의 고통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로티의 자유수의 아이러니스트는 이처럼 형이상학이 아닌 실제적 문제에서 출발한다.
교화적 철학
인식론적 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에피스테메를 통한 진리의 표상이다. 이에 대해 로티는 인식론에서 해석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은 곧 인식론이라는 틀 자체에 대한 거부로, 이를 위해 표상하는 인간관을 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 로티가 취하는 관점이 바로 가다머의 해석학이다. 가다머의 'Bildung' 개념은 자신의 밖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하며, 오로지 그 사람의 방식대로 습득되고 수용되어 그 사람 자신의 것으로 되는 것을 의미한다.
로티는 이 개념을 '교화'로 번역하여 인식론에 기반한 체계적 철학(통상적인 철학)에 대한 대안으로서 '교화적 철학'이라는 어휘를 만들었다. 체계적 철학자(통상적 철학자)는 인간의 진리 인식 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이 발견한 진리 위해 사회 구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에 로티는 유한하고 우연적인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플라톤적인 대문자 진리 (Truth)가 아니라 일상적인 작은 진리들(truth)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교화적 철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객관적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공동체와의 지속적인 대화이다. 한편 로티는 교화적 철학자로 듀이,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를 꼽았다.
문학적 문화
로티는 다양한 도덕적 딜레마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절대 진리의 개념을 '구원적 진리'라고 불렀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등 본질에 대한 물음이 구원적 진리의 내용으로, 구원적 진리에 대한 추구는 인간보다 더 큰 힘에 의지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티는 이러한 종교와 철학의 자리를 시와 소설이 대체하는 '문학적 문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적 문화에서 사람들은 인간이 초월하는 어떤 힘이나 권위에 의존하여 구원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문학을 읽는 것은 인간적인 것을 초월하는 아닌 더 인간적이 되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우연성과 유한성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로티는 바람직한 문화로써 '문화적 문화'는 공적인 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과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듀이적 요청으로 전환하는것이다.
연대와 자문화 중심주의
로티는 반표상주의적 관점에서 연대 개념을 이해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로티에게 연대는 인간 본성과 무관하며, 이는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마지막 어휘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잔인한 행위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악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느끼고 연대하게 할 만한 '마지막 어휘'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깨우침이 아니라 자신의 감수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통해 '우리'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로티는 역사와 제도를 초월한 절대적 가치를 통해 신념을 정당화하기보다는,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마지막 이휘'들의 생산 문제에 친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연대의 '단위'라는 관점에서 '자문화 중심주의'는 등장한다. 로티의 자문화 중심주의의 핵심은 역사적 우연성을 넘어서는 어떤 큰 힘에 호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로티에게 절학은 '문화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정치'란 여러 철학적 입장 중 자신의 '마지막 어휘가 공동체에서 지배적인 것이 되길 희망하며 벌어지는 각축전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 부르주아 자유주의
자문화 중심주의의 개념의 연상선으로, 로티의 '포스트모더니스트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칸트적 배경 없이 민주주의의 제도와 관행을 옹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부르주아'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특정한 제도와 실천이 특정한 역사적, 경제적 조건에서만 정당화된다는 것을 로티가 받아들인 것이고, '포스트모더니스트'는 본질적 자아, 절대정신 등 메타 서사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
로티는 우연성을 받아들일 때 정치적 실천의 토대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역사적이고 유한한 공동체와 관습,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우리'라는 의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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