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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8일(주일) 오전예배
말씀 : 마태복음 25:31~40
제목 : 작은 자에게 한 일
도입 :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 주님
마태복음 25장은 계속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셨을 때 있을 일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 가지 중에 그 중에 오늘은 주님이 양과 염소를 구분하셔서 양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염소는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잘 말씀하십니다. 당시 목자들이 양을 칠 때 양과 염소를 들판에서 풀을 뜯게 한 후 우리에 들릴 때는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양은 추위에 강하고 염소는 추위에 약하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양에 대한 배려와 염소에 대한 대처가 잘 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목자들이 구분하듯이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온 세상이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구분하신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오른쪽에 염소는 왼쪽에 모이게 해서 오른쪽 양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고 염소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그렇게 구분을 하는지 오늘 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베풀고 섬긴 것은 곧 예수님께 한 일과 같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염소 쪽의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주님께 하지 않은 것이며 곧 그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풀고 섬기는 일을 하지 않고 외면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주님을 외면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공궤한 양들
마태복음 25:31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자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표현하실 때 늘 사람人(인) 자에 아들 子(자)를 써서 사람의 아들, 즉 인자라로 표현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인자되시는 주님께서 자기 영광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영광은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왕’을 표현합니다. 우리 주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이 땅에 오시며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는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천군 천사들이 주님을 찬양하고 호외하며 주님과 함께 올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32절에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온 세계의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모든 민족을 모으고 각각 양과 염소로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서두에서도 제가 말씀드린 대로 목자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우리에 넣습니다. 그처럼 우리 주님이 온 세상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지, 양은 좋은 동물이고 염소는 나쁜 동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양도 제사를 드리고 염소도 제사를 드립니다. 만일 염소가 나쁜 짐승이면 제사를 드리라고 명하겠습니까!
비유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로 구분하듯이 참 목자이시며, 대 목자장이신 우리 주님이 온 세상 사람들을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양처럼 오른쪽에 모은 사람들은 영생을, 염소처럼 왼편에 모인 사람들은 영벌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 무슨 근거로 그렇게 구분하고 심판하시는가?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34절에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이렇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되시며 또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임금이 되신다고 시작하십니다.
그리로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복 받은 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원한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35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36절에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헐벗을 때에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위로하고 돌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이 질문을 합니다. 여기서 의인들은 오른편에 있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언제 우리가 주님께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눈에 안 보이는데, 우리가 어찌 주님이 주린 것을 보고 먹이시며 헐벗을 때 입히고 고통받을 때 돌아보고 위로를 했습니까? 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40절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임금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여기 내 형제 중에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 안에서 형제 된 성도를 두고 한 말씀입니다. 여기 양처럼 오른편에 있는 성도에게 한 것입니다.
그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작은 자’라고 하면 될 텐데 왜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라고 표현을 한 것일까요? 참으로 연약하고 사람들 보기에도 참 내세울 것 없는 부족하고도 작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런 자에게 베푼 것이 곧 주님께 베푼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장애복지원의 장애우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도움과 손길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의 작은 자들에게 사랑을 베푼 것이 곧 주님을 섬긴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화) 청년 때 꿈에 본 주님
제가 청년 때에 일입니다. 그 때에 참 힘들 때였습니다. 교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고 여러 가지 힘들 때였습니다. 정서적으로도 힘들었고 경제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앙도 아직 어리고 미약했습니다.
마산에서 자취를 했는데 하루는 신마산에 가서 신문 배달소 옆에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 아이들이 모여서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아들과 같은 아이들이며 노숙자들과 같은 아이들입니다. 옷을 입은 것이 형편이 없었고 새까맣게 찌들어 있었습니다.
저도 가진 것이 없었는데 그 때 시골에서 가져온 쌀이 있었습니다. 쌀 한 자루로 한 달 밥해 먹고 삽니다. 그 쌀을 지고 가서 그들에게 가져다 줘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 살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날 밤에 주님을 꿈꾸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내 평생에 꿈에 주님을 본적은 그 때 딱 한 번입니다.
둘째,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을 베풀지 않은 염소들
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왼쪽에 있는 자들을 책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1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굉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의 저주는 ‘나를 떠나’ 즉 ‘주님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곁을 떠나 멀리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천국입니다. 주님을 떠나는 것은 영원한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보면 사람들에게 그렇게 주님을 믿고 주님 곁으로 오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주를 믿지도 않고 주님 곁으로 잘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일들입니다.
그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도니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귀는 ‘디아볼로스’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사탄’입니다. 귀신들의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원래는 천사장이었는데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범죄하여 쫓겨나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귀신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리고 그 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졸개들 즉 마귀의 졸개들이니 귀신들입니다. 점쟁이들이 섬기는 귀신들을 말합니다. 악한 영들을 말합니다. 성경에 귀신이라고 하면 사람이 죽은 영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의 영들을 말합니다. 그 악한 사탄과 그 졸개들, 악한 영들이 가야할 곳 지옥형벌입니다.
그곳은 ‘영원한 불’이라고 했습니다. 꺼지지 않은 불입니다. 영원히 불타며 고통을 겪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귀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런 곳으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왼쪽에 있는 자들입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되는가? 42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 너희는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고 내가 목마를 때 너희가 마시게 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43절에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주님이 헐벗을 때 옷을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주님께 묻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님께서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공궤하지 하니하였습니까?’ 그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45절에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주 안에서 형제 된 이 작은 자들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주님께 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습니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은 인생을 주님의 사랑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하나도 전하지 아니했다면 그 사람은 그 안에 그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십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의 사랑이 있을 것이고 주님의 사랑이 있다면 당연히 몸소 섬김과 봉사가 실행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예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 형님, 이상덕
저에게는 형님이 하나 있습니다. 남자 형제가 둘이고 여자 형제가 셋인데 형제 중에는 제가 막내입니다. 우리 형님이 경찰공무원 출신인데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 현직에 제직 중일 때 성실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안 다녔습니다.
제가 청년 때 주님께 은혜를 받고 신학하려고 마음을 먹고 진전이라는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당시 창포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생활은 이명에 있는 소망의 집, 장애자의 집에서 거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도인으로서 산서교회를 개척하며 섬겼습니다. 그 후에 신대원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소망의 집에 있을 때 그들을 섬기며 지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 형님이 알고 창원에 사시면서 명절에 고향 고성에 내려갈 때 항상 그곳에 들려서 사과나 과일 한 상자를 사드리고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 제가 그곳에서 나와서 부산에서 교역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제가 그곳에 방문을 하여 임문호 당시 목사님을 만났는데 ‘너의 형이 매 명절, 추석이나 설이 되면 과일을 한 상자 사다 주고 간다는 것입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경찰공무원이다 보니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좋은 일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생각하기를 제가 그곳에 머무르지도 않고, 또 자신은 교회도 안 다니는데 그렇게 매 명절에 그 장애복지원에 들려서 과일을 갖다주는 것은 참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훗날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예수 믿지도 않던 공무원도 이렇게 이웃을 섬깁니다. 우리 예수 믿는 성도는 마땅히 약한 자들을 섬기고 돌보아야 합니다. 아멘
결론)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고 악인들은 영벌에 처합니다.
예수를 믿고 의인 된 성도는 마땅히 이웃을 돌보아야 합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 하여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를 믿지도 않고 약한 자들을 섬기지도 않았을 때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온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주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영벌에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십니다. 다스리실 때에 우리 사람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을 뜻을 따라서 공의로 다스리며 약한 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운영 원리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