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동 사지는 불국사 남쪽 약 1.5km에 위치하고, 탑이 있는 장소는 계단식 경작지로 쓰이고 있는 대지가 3단이 있는데, 아래의 2단은 논으로 쓰이고 제일 상단은 민묘이다. 논의 일부와 민묘가 있는 곳이 절터로 추정된다. 민묘와 논 사이의 둑은 돌로 다져있는데, 옥개석 1매는 둑에 걸쳐놓았고 탑신받침(지대석일 수도 있음)은 둑의 일부로 묻혀있다. 또 다른 옥개석은 둑 상부에 엎어진 채로 묻혀 있다. 주변에서 확인되는 석탑부재들은 옥개석 2점, 탑신받침 1점이고 일부 탑신으로 보이는 석재는 땅에 묻혀있어 완전한 형태는 알 수 없다. 1992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할 당시에는 옥개석 3점, 탑신 1점, 장대석 1점이 발견되었다고 하였으나 현재 옥개석 1점과 장대석 1점은 행방을 알 수 없다.
현재 사지에는 탑신받침과 옥개석 2매가 있다. 탑신받침으로 보이는 부재는 정사각형으로 윗부분에 1단의 받침이 있다. 현장에 남아 있는 옥개석의 크기로 미루어 지대석보다는 탑신받침일 가능성이 높다. 옥개석은 하면의 층급받침이나 상면에 탑신받침이 조출되지 않았다. 처마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살짝 반전하고, 내림마루의 합각선은 선 아닌 굵고 둥글게 돌출된 띠 형태의 우동을 표현하였다. 풍탁공은 확인되지 않는다. 석탑부재들은 다듬은 정도가 매끄럽지 못하고 매우 거칠어 미완성 탑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첫댓글 진현동 사지(寺址) 일원에서 발견된 석탑의 옥개석(지붕돌)은 신라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 양식(석가탑 스타일)과 달리, 백제계 석탑의 전통적인 조형 양식과 기법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어 석탑 연구에 있어 매우 흥미롭고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옥개석 상면의 4개 모서리 지붕선(합각선)을 따라 두툼하고 볼록하게 마감된 내림마루(우동마루)가 선명하게 형성되어 있다.
목조건축의 기와지붕 모서리를 석조로 옮겨 표현한 백제계 석탑(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등)의 대표적인 조형 기법이다. 신라의 일반적인 정형화된 석탑은 이 부분이 매끄러운 단면으로 처리되는 반면, 백제계 기법에서는 지붕마루의 존재감을 두껍게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지붕의 경사면(낙수면)이 급하지 않고 비교적 완만하고 넓게 펼쳐져 있으며, 끝부분(전각부)이 살짝 들어 올려진 듯한 형태를 띤다.
목조건축의 느긋한 지붕 곡선미와 처마의 흐름을 반영한 구조로, 탑 전체에 둔중함 대신 경쾌함과 안정감을 부여한다.
신라 석탑이 통상 5단 또는 4단의 꺾인 계단식 옥개받침을 유연하고 두껍게 두는 것과 달리, 백제계 전통의 영향을 받은 옥개석은 받침 단수가 적거나( 보통 얇은 2~3단) 얕은 형태를 취한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지역(진현동, 늠비봉, 옥룡암 등)에서 이러한 백제계 조형 요소(특히 도드라진 내림마루)를 가진 석탑재가 발견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삼국통일 이후 백제 석공들의 기술 유입 및 신라 석탑 양식과의 융합, 혹은 고려 시대 이후 백제 옛 지역의 석탑 양식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실물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