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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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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비난 할 수 없는 사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얘기들 듣던 많은 사람들이 회당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 속에는 똑똑하다는 율법교사도, 바리사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언제나 쫓아다니는 제자들도 있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소중한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강도를 만난 어떤 선량한 사람도 있고, 그를 초주검으로 만든 무지막지한 강도들도 있었습니다. 부정을 탈까봐 외면한 사제와 레위인도 있었고, 이 얘기의 주인공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강도를 잘 돌보아 줄 여관 주인과 직접적으로 돌봐줄 여관 종업원도 있을 것입니다. (루카, 10,25-37)
이 정도 찾았으면 참 많이도 찾아봤다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분과 많은 사람들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입니다. 비유로써 하느님 사랑과 사람 사랑, 율법과 자비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둘째는 율법을 보았고,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대하고, 읽고, 그 말씀을 깨달았다고 자부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도 있었고, 예수님께서 오신 후에도 있었고, 지금 각박하기도 하고, 인심도 후한 세상에 살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잘못했다고 비난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요것 저것 따지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들이나 사마리아 사람을 닮고 싶어 하는 더 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이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하는 이웃도 있고, 이웃이 필요한 이웃도 있고, ‘이웃집 웬수’처럼 사는 이웃도 있습니다. 매일 콩콩 뛰어서 잠 못 들게 하고, 화도 나게 하는 윗집도 있고, 몇 달이 되어도 아직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아파트의 앞집도 있습니다. 지난날의 이웃이나 앞으로 다가올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넷째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아무도 비난 할 수 없는 흠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힘들어하고, 게으르고, 남의 탓이나 환경을 탓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신입니다.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시는데도 외면하고 교만과 거짓으로 일생을 살아온 나 자신이 있습니다.
오늘 신명기의 말씀이 가슴을 더 무겁게 합니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 율법서에 쓰인 그분의 계명들과 규정들을 지키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계명은 너희에게 힘든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지도 않다. 그러니 ‘누가 하늘로 올라가서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들려주리오? 그러면 우리가 실천할 터인데.’ 하고 말할 필요가 없다. 또 그것은 바다 건너편에 있지도 않다. 그러니 ‘누가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서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들려주리오? 그러면 우리가 실천할 터인데.’ 하고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기, 30,10-14)
- 야고보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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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항상 너희와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고 슬기와 지혜를 갖고 긍정적으로 행동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