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금려산 살구꽃 마을, 살구꽃 마을로 날 좀 보내다오!”
할아버지는 살구나무가 꽃을 피운 뒤로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다. 학교에서 돌아온 모란은 자기 방으로 가 책가방을 던져놓고 할아버지를 쏘아보며 말했다.
“기따위 말 제발 좀 그만하시라요.”
할아버지의 눈은 창문 너머 먼 하늘에 가 있었다. 모란은 교복을 벗어 던지고 짧은 청치마로 갈아입었다. 모란은 어머니가 들여다보던 거울 앞에 앉아 립글로스를 발랐다. 초등학생이었던 재작년까지만 해도 그런 것은 생각도 못했다. 모란은 화장을 다 하고 서랍에서 통장을 꺼내 가방에 넣고 거실로 나왔다. 아침으로 할아버지에게 끓여 준 라면은 불어터진 채 그대로였다. 파리들이 라면과 말라비틀어진 김치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혀를 놀려댔다.
“다시 한 번만 기딴 소릴 하믄 내래 당장 오마니 아바이처럼 도망가 버리갔시오.”
모란은 곧장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대문을 나서려다 말고 살구나무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며 그녀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이곳에 이사 올 무렵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때 할아버지는 모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고향집에도 이런 살구나무가 있었단다. 아주 오래된 살구나무였지. 봄에 꽃이 피면 온 식구들 얼굴까지 환해졌어. 지금도 그 살구나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