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오늘 서울이다 / 강희근
서울은 오늘 영하 12도, 이 정도라야
서울이다
비로소 구겨진 추억들이, 다 닳아 어디론가
먼지가 되어 날아갔을 눈물 같은 언어들이 그 골목
그 번지에서 살아나고
친구의 자취집 냉방과 솥단지와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들리고
한 번도 머리 긴 여학생 뒤 따라가 보지 못하고
이 달이 끝나기 전에
끝나기 전에 편지 한 번 쓰리라 결심했던 일
금호동 고개 넘어가는 버스 속에서
없던 일로 했던 것 사무치는
추위는 이 정도라야 머리 뜯을 청춘이 살아난다
친구여,
너무 추워 입이 다 얼어붙던 그해 12월 22일
축 당선
서울신문사 여덟 글자가 전보지에 적혀 문화동으로
날아오던 날
그날도 영하 12도
세상은 이제 뛰고 눈 오고 가슴 박동 찢어지는
시간
아직도 추위는 추위 그대로지만
아는가, 청춘이 키웠던 고뇌
청춘의 등어리로 넘어오던 눈발에 다 녹고
환희에 다 녹고
서울은 오늘 서울이다
라디오가 얼어붙는 시대 찐득거리는 어둠 묻어나던
세종로
세종로도 이름 그대로,
우리들의 전망 남산을 보면 남산의 이름도
이름 그대로,
아, 마포나루는 마포나루의 얼음 뒤집어쓰고
풀리지 않는 겨울 삼동을 나리
거기 죽은 친구여,
소설 쓰다가 그만 둔 대목 그 다음줄에서
그대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 손 호호 불어가며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시작할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