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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자유 게시판◀ 스크랩 메노나이트와 아미쉬에 대하여
느디님 추천 0 조회 725 14.08.24 07:47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메노나이트와 아미쉬에 대하여

 

 

 

영길이가 메노나이트가 뭐냐고 물어서...

 

나도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캐나다에 와서야 처음으로 메노나이트 교회를 보고

무슨 교횐가 했거든... 기독굔가 아닌가하고 말야

 

처음에 캐나다 서부에 살다가 동부인 워털루로 이사했는데

우연히 두군데 다 주변에 메노나이트들이 사는 동네여서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고

2년전쯤 근처에 있는 아미쉬 가정을 방문하고 블로그를 쓴게 있어 여기에 인용하니

관심있는 친구들 참고하기 바라네

 

 

 

 

<내 블로그 인용>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교회(카톨릭)에서 세례를 받고 교적부에 등록됨으로써 (즉 과세대상자에 오름으로써)

인간 (또는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카톨릭 교회에 반대하여 종교 개혁을 이끈 루터와 칼빈 조차도

모든 인간은 당연히 기독교인으로 태어난다고 믿었고

따라서 교회가 정부에 의해 세워지거나 정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그룹중 한 집단에서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처럼 교회가 국가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고

국가 (교회)가 주는 유아 세례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 자신의 입으로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 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믿는) 사람들의 모임" 이라는 교회의 정의가 실은 이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그리고 개신교에서 성인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나,

부모의 신앙에따라 유아세례를 받았더라도 성인이 되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입교문답을 하게 하는 것도 이들의 사상을 따른 것이지요)

  

 

그러나 유아 세례를 부정하는 이들의 신앙은 당시로서는 교회의 전통과 국가의 기반을 흔드는 급진적인 것이어서 (세수확보에 차질이 생기므로)

이들은 "과격파 (Radicals)" 로 분류되고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또 세례를 준다고하여 "재세례파 (Anabaptist)" 라고 조롱조로 불리웠으며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또한 성경 말씀에 따라 비폭력, 비저항의 평화주의를 주창하여 전쟁을 반대하고 병역을 거부했으므로

식민지 확장과 전쟁을 일삼던 유럽의 각 정부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았으나 어떠한 탄압과 박해에도 저항하지 않고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가정과 교회들을 세울 곳을 찾아 유럽 각지를 떠돌았고

일부는 북미와 남미로도 이주했습니다

 

 

저지대 지방 (독일 북부 및 네델란드 지역) 에서는

네델란드 사람 메노 사이먼스 (Menno Simons) 가 이들의 지도자였으므로 메노나이트 (Mennonite) 라고 불렀고

독일 남서부 및 스위스 지역에서는

스위스 사람 야곱 암만 (Jacob Amman) 이 지도자여서 아미쉬 (Amish) 라고 불렀습니다

  

 

터키와의 전쟁에서 이겨 광대한 영토 (우크라이나)를 차지하게된 러시아의 카트린느 여제는

새 영토를 개발하고자 고도의 농업 기술을 갖고 있던 메노나이트들을 초청하여 우크라이나에 정착하게 합니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의 보호아래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번창했으나

20세기 초 볼세비키 혁명으로 러시아가 공산화되자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은 그곳에서 쫓겨나 

대부분 서부를 개척할 근면하고 우수한 농부들을 찾고 있던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했는데

다수가 캐나다의 매니토바, 사스카추완, 앨버타, 브리티시 컬럼비아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이들을 러시안 메노나이트 (Russian Mennonites) 라고 부릅니다

  

 

이전에 신천지인 미국 펜실바니아에 정착하여 대규모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아미쉬들은

영국 정부의 보호아래 병역을 면제 받으며 자신들의 신앙, 문화, 언어를 고수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영국과의 독립 전쟁에서 이기며 애국심이 고취되고 그에따라 군국주의의 기운이 강해지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이들중 일부가 멕시코를 위시한 중남미로 이주했고

또 다른 일부는 영국을 지지한 왕당파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합니다

  

 

그들은 주로 온타리오주에 정착했는데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도시의 이름을 베를린이라고 명명하고

독일 사람들답게 근면하게 일하여 공업, 농업, 낙농업 분야에서 훌륭한 제품을 생산합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반독기운이 강해져 이들이 생산한 "베를린" 상품이 팔리지 않게 되자

시민투표를 통해 도시 이름을 사고로 사망한 당시의 영국 국방장관의 이름인 키치너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키치너와 워털루는 마치 마산, 창원처럼 경계없이 붙어 있는 쌍동이 도시입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키치너-워털루 지역으로 새로운 이주자들이 몰려와 그 수가 많아지자

(2차대전 이후에 독일에서 많은 독일인들이 이주해와 한때는 독일밖에서 독일인이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이주자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들(온건 및 진보파: Moderate and Progressive)도 있으나

(키치너시에서 최장수 市長 기록을 갖고 있는 현 시장인 Carl Zehr 는

전직 회계사로 외관상으로는 그가 메노나이트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음)

보수적인 신앙과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보수파들(Old Order and Conservative)은 점점 외곽으로 빠져나가

현재 밀뱅크, 엘마이라, 엘로라등지에 흩어져 살며 주로 농업에 종사합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겨울에는 남자들은 목공일을 하고 여자들을 퀼트를 만드는데

그들의 작품은 관광객들에게 꽤 인기가 있습니다

   

 

이들 (특히 보수파들)이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로마서 12장 2절)" 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전기, TV, 자동차등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거나 전통 의복을 입는등

종교 개혁 당시인 16세기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인데

세대가 흐를수록 이러한 보수적인 신앙과 생활방식을 고수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워털루에서 가까운 밀뱅크 (Millbank) 에 사는 아미쉬들중 아홉 가정이 참여하여

시월 한달간 토요일마다 정오에서 4시까지 자기들의 집과 상점을 개방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오랜 탄압과 박해의 역사를 통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며 서양인의 관점에서는 꽤나 "수줍은"

이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얼른 다녀 왔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www.visitperth.ca/amish-tours.html 을 방문하시면

참여 가정, 지도등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펜실바니아에 사는 아미쉬들이 말하는 독일어를 Pennsylvania Dutch 라고 합니다

원래는 Pennsylvania Deutsche 즉 '펜실바니아에서 사용되는 독일어' 라는 뜻인데

도이취 (Deutsche) 를 영어식으로 읽어 더치 (Dutch) 가 되었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펜실바니아에서 사용되는 네델란드어' 로 오해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이들이 말하는 독일어는 스위스에서 사용되는 독일어 (Swiss German) 에 가깝다고 합니다

    

 

루터가 최초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함으로써

루터가 살던 지방의 독일어가 표준 독일어가 되었는데 이를 일명 고지대 독일어 (High German) 라고 합니다

국경 개념이 지금처럼 분명하지 않았던 종교 개혁 시대에

저지대 지방인 독일 북부와 네델란드 지역에서 사용되던 독일어를 저지대 독일어 (Low German) 라고 하는데

러시안 메노나이트들이 바로 이 저지대 독일어 (Low German)를 말합니다

저지대 독일어는 고지대 독일어와는 많이 다르고

같은 게르만어의 뿌리를 두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네델란드 고어 (Old Dutch) 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Low German 은 말만 있고 문자가 없는 spoken language 였으나 20세기 후반 문자를 만들어 성경을 번역했는데

고등학교 교사로 정년 퇴직한 온건파 메노나이트인 제 친구 George 말에 의하면

High German 을 아는 사람이 그 성경을 읽으면 아마도 웃느라고 제대로 읽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개화기에 중국에 파견나와 있던 토마스 선교사는 중국으로 장사하러 오는 평북 의주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최초로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였는데 장사꾼의 억센 평안도 사투리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읽으면 마치 코미디 글을 읽는 것 같아 배꼽을 쥐고 웃을 것이라는 얘기를 ("날래 나오라우~")

대한성서공회에서 일하시는 목사님으로 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비슷한 경우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중 재미있게 본 것으로는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1985년 작 "Witness" 가 있으며

최근 메노나이트들이 직접 출연하여 Low German 을  말하며 찍은 영화 "Silent Light" 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최초로 Low German 이 영화에 녹음되어 일반에게 공개된 작품이며

올 봄 소극장에서 상연되었는데

제 아내는 이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메노나이트들은 선교와 봉사에도 열심이어서

인도, 콩고, 인도네시아, 이디오피아, 브라질등 북미밖의 여러나라에도 전파되었는데

이들의 수가 전체 메노나이트의 절반을 넘는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왕성한 한국에 의외로 메노나이트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마 병역 문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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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8.24 07:47

    첫댓글 '하토브'님께서 카나다 메노나이트 이야기를 하셔서...

  • 14.08.24 13:13

    미국의 메노나이트는 아마쉬와 다릅니다.
    20여년전 제가 풀로리다에서 만나본 메노나이트들은 주로 그들의 기독교 서적들과
    퀼트 상품들을 관광객이 많은 도시로 나와 숍을 열고 파는데 일반인들과 같은 모든
    문명의 혜택을 다 누리며 삽니다.
    그네들은 아미쉬와는 다른, 차별화된 그룹들이길 바라는것으로 보였습니다.
    머리도, 의상도 현대 스타일로 그들이 말하는 다른 세속적인 사람들과 다른게 전혀 없었지만
    친절하고 표정들이 밝았다는것은 기억됩니다.
    그야 상품을 파는 비지네스인의 입장으로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 14.08.24 12:36

    느디님님이 이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노나이트 신앙에 대해서는 주목할 점도 있고 공동체생활에 대해서 도전을 받을 부분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희 모임에는 아미쉬와 결혼한 형제가 있습니다. 아미쉬는 펜실베니아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앨버타 주에도 많은데 여기 온타리오에서는 위에 말한 워털루 키치너 서쪽 생 제이콥스, 알마이라 등지에 많이 거주합니다. 워털루 자체는 도시에 독일어 간판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독일인들이 많이 삽니다. 그외에 생 토마스 서쪽에도 많은 메노나이트들이 살고 있습니다. 메노나이트들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일정기간 세속 생활을 직접 해보도록 허용하고

  • 14.08.24 12:40

    나중에 다시 자유선택에 따라 들어오게 한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경찰은 메노나이트였다가 경찰이 되고, 메노나이트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며칠전 제가 운전하고 다니다가 어느 상점에 들르니까 메노나이트 젋은 부부가 쇼핑하러 다니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런 사람들에 있어서 교리적인 강요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메노나이트도 요즘에는 바티칸과 교류하는 집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메노나이트의 분파들이 많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무어라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14.08.25 00:28

    공동체 생활하는 것만 빼면 세상문화를 멀리하는 것은 익스클루시브 모임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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