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대에 존재가 희미했던 순천.
여수공항에서 광양제철소로 가다 하루 쯤 묵어가는 곳으로 치부했던 때가 벌써 20년 전이다.
지금은 순천만 갯벌이 세계 5대습지로 인정받아 광활한 관광단지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고,
대한민국의 환경수도라고 자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쌍전벽해다.
그 많던 관광객이 날이 어두워지자 썰물같이 자가용이나 관광버스로 빠져 나가고,
어둑한 길을 택시를 부르고 도보로 걸어 나오는데,
유창한 영어로 길을 묻는 홍콩인 같은 중국여인네들을 만나,
국제적으로 놀았다고 자부하던 노장들이 일순 당황하여 버벅거렸으니, 이미 국제적 생태관광도시가 된지라.
jays가 노래부르며 자랑한 죄?로 부담한 명궁관의 한정식은,
남도의 상다리 부러질 듯 차려내오는 한상에다,
영광 바닷바람에 과메기 삭히는 식으로 말렸다는 노릿한 굴비가 특이하기는 하다.
번철에 한번 살짝 튀겨내왔다니, 그 참맛은 모르겠으나, 기름진 별미임에는 틀림없다.
선암사 입구의 기사식당은 후라이판에 내오는 푸짐한 김치찌게가 유명하다는데,
젓갈이 풍부한 남도음식이 짠 맛이기는 하나, 짠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흠이라면 흠이다.
순천시내의 일만원 짜리 정식은 불고기 정식으로서, 명궁관과 기사식당의 얼추 중간 맛이었다.
식도락을 즐기는 여행객들에게는 남도여행의 주된 이유가 다양한 식사의 선택에 있음에,
상중하 모든 한정식을 섭렵한 여행이었다.
선암사는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긴 진입로에 높고 커다란 일주문을 세우지 않고,
절 입구에 담장을 둘러친 아담한 일주문이 차분하다.
대웅전을 이층으로 중창한다니, 이곳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으나,
현재의 선암사만큼 주변 산세와 조화로운 절도 별로 없을 것이다.
독립된 건축물로서 뒷간이 유명한데, 지금은 스님들이 이용하고,
일반인들을 위한 화장실은 깔끔한 현대식 수세식 화장실이 바로 아래에 있다.
재래식 변기에 소변을 보러 올라가니 아래 보이는 곳이 이층높이라 나이 탓인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소변줄기에 어두운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 비치니, 무지개 색갈로 변하는 것이 오랜만에 보아 신기하다.
<시인 정호승은 이렇게 노래했다 한다.
"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라고,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기어다닌다."
선암사엔 600살이 넘은 매화가 있다 한다.
효봉스님이 제자의 오도를 기뻐하며 내린 전법게.
한그루 매화나무를 심었더니 옛 바람에 꽃이 피었구나
그대 열매를 보았으리니 내게 그 종자를 가져 오너라. (한민의 산사의 주련에서 발췌)>
선원이 없는 절은 절이 아니라고 성철 스님이 말씀 하셨듯이,
일반 신도들이 불사를 하고 내왕하는 곳이 볼거리가 많고 화려하기는 하나, 절의 본모습의 전부가 아닌 것은,
천주교가 수도원을 보지 않고 성당만으로는,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총림은 선원 강원 율원이 모두 갖추어진 곳이라, 그 규모가 클 수 밖에 없고,
하선원인 尋劍堂과 상선원인 칠전선원이 있으니, 총림의 면모가 약여하다.
번뇌를 끊는데 필요한 칼을 찾는 심검당은 금강의 예리함으로 번뇌를 끊는다는 금강경의 이름에
걸맞는 선원의 이름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이름이다.
일반신도들은 내세에 극락왕생이 소원일 것이나, 수행하는 스님들은 이 생에 부처가 되어,
다시 윤회하는 생을 벗어나는 것이 목표 일 것이니,
그 치열함이 밖에서 보이는 것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이리라.
속인으로서는 부도가 있는 절의 초입과 수도하는 절의 근접성에
생과 사를 포용하는 종교의 일체성을 본다.
살아서 농사 짓다 죽어서 뒷산에 묻히는 우리의 전통적 삶도 이와 비슷하다.
성당도 원래 지하에 무덤이 있고, 교회에는 묘지가 있는 것이 본 모습이 아니겠는가?
아파트에 살다 병원의 장례식장에 갔다, 먼 곳의 납골당이나, 공원묘지로 가야 하는,
현대식 삶의 메마름 보다,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는 옛 방식이 더 푸근한 것 같다.
승선교의 홍예다리는 건축적 아름다움도 있으나,
물에 비추이는 반쪽과 합하여 둥근 圓을 이루는 것이 불법의 완성을 상징한다는 해설이
익산을 지나면서 본 원불교의 대단지와 그 상징인 圓이 생각된다.
선암사에서 측백나무 숲을 지나 자리잡은 승주군에서 운영한다는 한옥 다실은
그 규모가 웬만한 절 규모이다.
반가 반누각 형태의 사랑채에서 보는 가을 경관은 뛰어나다.
창호마다, 열린 정도마다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 다채롭기 이를데 없다.
창호지에도 매화, 국화그림이 있으니, 전후좌우가 다 선경.
한복 곱게 차려입은 공무원이 따라주는 작설차를 홀짝이니, 신선노름이 따로 없다.
숙박도 가능하다 하니, 언젠가 하룻밤 유숙해 보고 싶더구먼.
2차에 걸쳐 유람기를 주섬주섬 늘어 놓았으나, 백문이 불여일견,
사람마다 보고 느끼는 것이 달라,
혹자는 글로 사진으로, 미술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그 경험을 남기려 하나,
역시 여행은 물적이든 정신적이든 심미적이든 영적이든
그 실체를 묘사하기에는 벅찬 개인적 체험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첫댓글 작설차 차값은 두당 2천냥 쳐서 합의 일만냥을 주었으니, 비싸지 않은 것인데... 잘 못 아셨나??
그렇게 쌌나요? 소생은 일만이천냥 달라고 해도 주었겠습니다. 스타벅스 커피 2잔에 과자값 치면, 그정도 불러도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