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창원에 터를 잡아 사는지 어언 이십오 년 지난다. 통합시가 되기 이전부터다. 그 당시 명서동 낡고 좁은 주공아파트에 세 들어 살았다. 인근 주택가에는 재래시장이 있었다. 요즘 홈플러스나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같은 대형 할인매장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명서시장에서 멀지 않은 도계동에도 재래시장이 있었다. 소답동으로 가면 재래시장에다 2일과 7일이면 오일장이 크게 섰다.
명서동에 잠시 살다가 큰 녀석이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배정받은 학교 따라 반림동으로 이사를 왔다. 이후 내리 다른 곳을 옮겨가지 않고 이십여 년 지나고 있다. 창원종합운동장 맞은편과 용지호수 인근 창원이 신도시로 출범하면서 들어선 낮은 아파트는 재개발되어 고도가 높아져 스카이라인이 달라졌다. 재개발되기 이전부터 서민들 애환이 서리고 발길이 잦았을 반송시장이 있다.
창원의 상권 중심지는 시청광장과 멀지 않은 상낭동이다.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하고 업무용 빌딩도 높이 솟구쳐 있다. 한때 상남동 유흥가 밤 문화는 서울 강남 술집에 뒤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본래부터 있던 재래시장은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서면서 다른 날에도 상가까지 활기찼다. 근래 우리 지역 방언으로 최고요, 좋다는 뜻인 ‘대끼리’를 붙여 대끼리시장이라고 한다.
창원 서부지역 부도심은 명곡로터리다. 그곳 일대도 빌딩과 상가들이 즐비하다. 근처 시티세븐과 컨벤션센터와도 가까워 유동 인구가 많다. 명곡로터리에서 멀지 않은 주택가에 지귀상가가 있는데 할인매장 여파로 상권이 죽다시피 했다. 내가 아는 퇴직 선배는 폐업한 노래방을 세 내어 색소폰 연주 연습실로 쓴다. 그나마 1일과 6일이면 오일장이 서서 시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내가 사는 생활권과 제법 떨어졌지만 가음정동에도 서민들이 찾는 시장이 있다.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혼재한 곳으로 규모가 컸다. 지금은 인근 낮고 낡은 아파트는 재개발 되어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생필품을 파는 가게는 물론 횟집과 족발집이 더러 있어 날이 저물 무렵이면 활기를 띠었다. 생업 일터에서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소주잔을 채워 하루의 피로를 씻기 좋은 자리였다.
창원컨트리클럽으로 드는 길목인 봉곡동 주택가에도 상가와 함께 작은 재래시장이 있다. 봉림동과 사림동 사람들이 이용했다. 인근 단독주택과 창원천 건너편 반지동 아파트 입주민들도 더러 찾아가는 듯했다. 멀지 않은 곳에 지귀상가 장터와 겹쳐 규모나 세력 면에서는 활력이 뒤처졌다. 규모가 커든 작든 재래시장은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찾아주는 단골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다.
시내 재래시장 소개는 끝내고 화제를 바꾸련다. 한낱 푸성귀일지라도 상품에는 등급이 있더이다. 백화점에 납품되는 채소나 과일은 분명 최상품이더라. 질이 좋고 비쌌다. 그 다음이 대형 할인 매장이었다. 질은 보통이나 가격은 쌌다. 가장 하품이 재래시장이었다. 질도 좋지 않고 값도 결코 싸질 않은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재래시장에 중독되어 시장 구경을 자주 간다.
지난날 시내 근무할 적 퇴근길 볼 일도 없으면서 시장 골목을 둘러 집으로 오곤 했다. 반송시장이나 봉곡시장이었다. 재래시장 과일이나 채소들은 흙이 묻은 채거나 시들거나 못난이가 많았다. 손님들이 뜸하게 오니 재고가 쌓여 신선도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요즘 채소는 비닐하우스에서 촉성으로 길러내어 계절 구분이 없고 과일은 저온저장으로 연중 출고가 되는 편이다.
재래시장 골목을 스치다가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나물 앞에선 가던 길을 멈추었다. 이른 봄이면 쑥이나 달래를 보았다. 연이어 초벌부추나 머위 순도 나왔다. 두릅 순이나 취나물이 나오면 봄이 무르익을 때다. 초여름엔 마늘쫑이나 매실이 나왔다. 한여름엔 추어탕에 빻아 넣은 제피열매가 보였다. 이들은 생전 어머님이 산야에서 마련해 오신 것들이었다. 아득한 그 세월이 그립다. 21.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