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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2528-111 번지
아흔아홉 골의 수려한 풍광 속에 들어앉은 천왕사는 한라산 어승생 동쪽에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로 이루어진 아흔아홉 골(구구곡)중 하나인 금봉곡 아래 위치한 사찰이다. 1955년 천왕사 근처 토굴에서 참선수행하던 비룡스님에 의해 수영산 선원이란 명칭으로 처음 창건되었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로 등록되어 있으며 비록 건립된 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1994년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바로 뒤로는 용바위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마당 왼쪽 자락에 기세 좋게 곧게 뻗은 바위가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사찰 옆의 냇물을 따라 올라가면 한라산의 유일한 폭포라는 선녀 폭포가 나오고, 사찰 입구에는 약수터가 있다. 특히 가을에 기암절벽 아래 물드는 단풍이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 상시개방(18:00이후 제한적 이용)
쉬는날 : 연중무휴
주차시설 : 있음(주차공간 여유있음), 무료
유모차대여여부 : 불가
애완동물가능여부 : 불가
문의및안내 : 064-748-8811
관련 홈페이지 : https://www.visitjeju.net
한라산과 사찰
제주=박부영 논설위원 chisan@ibulgyo.com
도움=이병철 제주불교방송 부장
[불교신문3698호/2022년1월1일자]
‘불기 2566년 신년 특집’
한라산 나한 상주하는 부처님 산, 탐라는 정법 머무는 ‘法住道場’
佛來오름, 부처님 설법하신 영실, 오백나한봉 곳곳 불교이름
➲ 제주 불교 중심 관음사
한라산을 대표하는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본사 관음사다. 한라산 650m 기슭에 자리한 관음사는 제주의 30여 사찰을 관장하는 제주불교 중심이다. 관음사는 제주에 불교가 전래될 당시 창건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제주불교 역사와 같이 하는 셈이다. 이는 제주의 신화 전설 민담 등에 남아 있다. 제주에서는 관음사를 괴남절, 개남절, 동괴남절, 은중절 등으로 부른다. 관음사가 오랜 세월 제주와 함께 하면서 민간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음사는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에 의해 제주 지역 사찰이 전부 훼철될 때 같이 사라졌다가 1908년 안봉려관스님이 중창했다. 스님은 해월굴에서 3년간 관음기도를 드리며 법당과 요사를 완공하고 통영 용화사에서 불상과 탱화를 모셔와 사찰 모습을 갖췄다. 이어 제주 중심지 중앙로에 시내 포교당 대각사를 세워 도심 포교도 펼쳤다. 1939년 화재로 인해 대웅전 등이 모두 불탄데 이어 1948년 제주 4·3 당시 관음사가 토벌대와 입산 무장대가 대치하는 전선이 되면서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한라산 입산 금지가 풀리면서 1969년부터 불사를 시작해 대웅전을 시작으로 선방 영산전 해월각 사천왕문 일주문 종각 등을 갖춰 지금은 제주불교를 대표하는 가람답게 대찰로 변모했다. 종단의 많은 고승 대덕이 관음사 주지를 맡아 오랜 세월에 걸쳐 복원하고 시내 포교당을 통해 불법을 전한 덕분이다. 특히 현 주지 허운스님의 헌신이 크다. 24개 교구본사 중에서 유일하게 선원이 없다는 평을 들었던 관음사는 세불선원을 세워 불명예를 씻었다. 미륵대불과 만불상을 조성해 제주시내와 바다를 바라보며 제주도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한다. 2009년 완공한 선센터는 템플스테이로 재가불자들의 수행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에는 한라산 중턱에 나한전 불사가 한창이다.
관음사는 입구에서부터 현무암으로 조성한 불상을 만나 제주 불교의 특성을 만끽한다. 잘 조성된 숲과 현무암 석불이 맞이하는 관음사 일주문에서 경내까지의 길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수행길이다.
무엇보다 제주불교의 역사를 경내에 조성한 것이 눈길을 끈다. 관음사를 다시 일으킨 안봉려관스님의 이력과 수행했던 해월굴, 4·3의 아픈 역사를 만난다.
➲ 제주불교에 부는 선(禪) 열풍
제주에는 고승들의 자취와 법이 소리 없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들 모두 선승(禪僧)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제주는 자연환경이 열악한 섬 지형 상 기복이 강하다. 그 전통은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다. 거친 바다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이 땅 사람들에게 죽음은 늘 함께였으니 종교가 그 두려움을 가져가야 했다.
하지만 현대 제주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제주는 이제 과거의 버림받은 자들의 유배지가 아니다. 화산이 만든 남국의 이국적 정취, 한라산, 푸른 바다, 따뜻한 기후를 지닌 ‘파라다이스’, 휴양지로 최고의 각광을 받는 섬으로 변모했다. 낙원을 찾아 육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유가에 탄압받았던 ‘제주의 종교’ 불교가 살아나고 기복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면서도 참선이 새로운 사조로 자리 잡았다. 종정을 지낸 고암스님, 제주출신의 선승 혜국스님, 혜인스님, 원명선원 대효스님, 천왕사 비룡스님, 월서스님 등 뛰어난 고승 선승들에 의해 많은 선원이 생겼다.
➲ 나한 산신기도도량 천왕사
관음사와 더불어 제주시 방향의 한라산에 자리한 대표 사찰이 천왕사(天王寺)다. 어승생오름(1,176m) 동쪽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로 이루어진 아흔아홉골 또는 구구곡(九九谷)이라 불리는 아흔아홉 골 중 하나인 금봉곡 아래쪽에 자리 잡았다.
1956년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한 월정사 비룡스님이 영주선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다. 이후 1992년 호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법주사 조실로 금오선사의 법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월서대종사가 이 절 주지로 부임하면서 쇠락하던 절은 일대 혁신을 했다.
초입에 들어서면 천왕사를 창건한 삼광당 비룡선사 부도탑을 만난다. 천왕사 주변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나한 기도 영험 도량으로 기도객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찰이다. 천왕사 아흔아홉골에 주석한다는 발타라 존자의 신앙이 널려 퍼져 있다. 절 주변의 세존바위, 보살바위, 남근석 등 기묘한 바위와 홍송 숲이 더해져 천왕사 명성을 높였다.
주변 산세와 어울리는 웅장한 모습에다 전통건축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수작으로 평가받는 대웅전이 유명하다. 사찰문화연구원 신대현 교수는 불교신문에 “비룡스님이 수행했던 토굴에서 비롯된 천왕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된 것은 월서스님과 현재 주지를 맡고 있는 지오스님에 의해서였다. 월서스님은 비룡스님에 이어서 천왕사의 기틀을 잡아 실질적 창건을 이루었고, 근래에는 지오스님이 대웅전을 새로 짓고 도량을 정비함으로써 화룡점정했다. 그러니 천왕사의 중흥은 이 두 사제(師弟)에 의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평한 바 있다.
➲ 고암스님 만나는 선덕사와 영원사
서귀포시 상효동 속칭 ‘선돌 지역’은 오래 전부터 스님들이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까지 존속했던 두타사, 쌍계사 등의 터가 그 역사를 말해준다. 지금은 선덕사가 제주 선불교 명성을 잇는다.
조계종 제 3, 4, 6대 종정을 역임한 윤고암스님을 존경했던 부부 불자의 신심과 스승의 가르침을 이은 손상좌 학균스님의 수행과 열정이 선덕사를 만들고 이끌어온 힘이다. 고암스님은 손상좌인 학균스님에게 이곳에 부처님의 바른 법을 이어갈 선불장(選佛場)을 일으켜 세울 것을 권했다. 당시 선덕사 자리에는 150평의 부지에 30여 평의 법당과 작은 요사를 갖춘 선도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1870년 무렵 쌍월 선사와 응월스님이 이곳에서 수행했으며 근처에 두타사 터가 있는 등 오래 전부터 수행처로 유명했던 곳이다.
억불과 전쟁 등으로 사라졌던 터에 고암스님의 법력, 독실한 단월의 지원에 힘입은 학균스님의 원력에 의해 학전선원을 시작으로 새롭게 산문을 열었다. 학균스님은 선도암을 중심으로 주변 3만여 평 부지를 마련하여 불사에 들어갔다. 대적광전을 비롯한 삼성각 웅진전 범종각 불이문 보광당 사천왕문 범종루 옥칠불전 금강문 등 10여동의 건물을 목조 전통 가람형태로 축조해 한라산과 어우러지는 신심나는 아름다운 가람을 조성했다.
대적광전은 특히 제주도 내 사찰 법당 중에서 유일하게 중층 목조 구조여서 독특함과 미적 완성도로 제주도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학술 가치도 높다. 이러한 이유로 2005년 3월 선덕사는 서귀포시향토유형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고 같은 해 10월 ‘선덕사 대적광전’이 제주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또 고암스님이 전수한 선덕사 소장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3종도 2003년 7월2일에 제주특별자치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처럼 선덕사는 울창한 숲과 어울려 고즈넉한 정취로 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와 삼림욕을 즐기며 지역 신행단체들의 성지순례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명찰이다.
➲ 영실 오백나한절 영원사
한라산 영실 탐방로 입구 왼편에 오백나한절이 있다. 영원사라고도 한다. 이 절 역시 선덕사를 창건한 고암스님과 그 손상좌 학균스님, 고암스님을 존경했던 불자의 자취가 서린 곳이다. 오백나한절은 선덕사의 여름 하안거 선원으로 운영한다.
선덕사와 영원사 고암스님과는 오랜 인연이 전한다. 5·16을 주도한 박정희는 제주 4·3 이후 막았던 한라산을 1960년대 후반부터 개방한다. 영실휴게소 운영권이 한 독실한 불자에게 돌아갔다. 박정희 장군과 인연 있는 불자였다. 휴게소라고 해야 등산객을 상대로 김밥을 파는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유지하는 정도였다. 이 때문에 타종교에서 영실휴게소 매입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선덕사 창건 화주 최용주 거사와 부인 조근호(보현월) 보살에 관한 이야기다. 조 보살은 1970년 후반 영실휴게소가 경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당시 타종교에서 매입 제의를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라산 영실은 불교성지이므로 다른 종교로 절대 넘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1980년대 관광 여행 바람이 한라산에도 불어 닥치면서 영실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그렇게 모은 돈을 선덕사를 짓는데 희사했다. 이어 영원사 불사도 뒷받침했다. 학균스님은 그래서 늘 조보현월 보살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며 한라산 영실이 불교 성지로 남아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보살님의 공덕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영실휴게소는 그 자리에서 지금도 운영 중이며 조보현월보살도 곁을 지키고 있다.
➲ 제주불교 초전전래지 영실 존자암
영실 탐방로 주차장은 두 곳이다. 탐방로 입구 주차장과 아래 영실 주차장이다. 그런데 두 곳 거리가 꽤 멀다. 걸어서 40분 가량 걸린다. 아래 영실 주차장에서 1km 가량 걸어가면 존자암이 나온다. 맑은 계곡물이 나오는 양지 바른 곳에 자리했다.
제주에 불교가 처음 전래돼 세웠다는 존자암이다. 터만 남은 것을 제주시에서 복원했다. 절 맨 위에 오래된 부도가 멀리 서귀포 앞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부처님진신사리를 모신 탑으로 알려져 있다.
불래오름 남쪽 기슭 해발 1200미터 고지에 자리한 존자암지는 1990년 발굴 조사에서 규모와 가람배치 등을 확인하였으며 2001년에는 존자암 인근에 40여명이 들어가는 수행굴을 확인했다. 1998년부터 2004년에 걸쳐 복원해 현재 대웅전 국성재각, 누각 등을 복원했다. 소유는 제주시 소속이지만 스님이 머물며 기도 포교 한다. 제주에 ‘고’ ‘양’ ‘부’ 세 성(姓)이 들어올 때 창건하고 세 읍의 수령이 재를 지내던 신성시 하던 곳이라고 문헌에 기록한다. 영실, 불래오름, 오백나한봉 등 제주불교의 초전지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선풍(禪風) 일으킨 남국선원
1992년 혜국스님이 개원한 남국선원은 제주 선불교를 대표한다. 성철스님이 제주 출신의 선승 혜국스님에게 제주도에 사찰이 많냐고 물었다. 혜국스님이 ‘당오백 절오백’의 제주불교와 깊은 신심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성철스님이 선원은 얼마나 있느냐고 했다. 혜국스님이 “없다”고 답하자, 성철스님은 “선원이 없으면 불교가 없다”고 했다.
남국선원은 이렇게 해서 설립됐다. 1948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혜국스님은 부처님의 혜명을 잇기 위해 1994년 법당과 선원을 새로 지어 선원 2층에는 일반선원, 1층과 일반선원 좌우편에는 7명이 수행할 수 있는 무문관을 마련했다. 대웅전 맞은편에는 시민선방도 별도로 개설했다.
제주에서도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돈내코 부근, 서귀포 앞 바다가 환히 바라 보이는 곳에 자리한 남국선원은 이국적 정취로도 눈길을 끈다. 남국선원을 중심으로 좌우로 한라산 둘레기를 따라 걷는 정진의 길이 놓여 있다. 서귀포 앞바다와 한라산의 적막한 숲 선사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걷는 최상의 수행 길이다.
➲ 안봉려관스님, 항일항쟁 법정사
조선 후기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제주불교는 다시 일어난다. 200여년 간 사라졌던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킨 인물은 비구니 봉려관(蓬廬觀)스님이다. 봉려관스님은 제주불교 중흥조이면서 제주 지역 최초로 항일 운동을 펼쳤던 법정사 무장항쟁을 지원한 애국자다.
1865년 제주시 화북동에서 태어난 스님은 34세가 되던 1899년 우연히 한 노인으로부터 관음보살상을 받은 인연으로 출가해 해월굴에서 6년여 용맹정진 끝에 크게 깨달았다. 제주불교 중흥을 서원해 전남 대흥사에서 비구니계를 수계하고 1908년 관음사를 창건해 개산조가 되었다. 법화사, 불탑사, 법정사, 월성사, 백련사 등을 중창 또는 창건하고 국내 대덕스님을 초청, 정법홍포에 매진했다.
법정사 무오항일항쟁의 중심에 서서 활동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성의 사회참여에 선구적 역할을 한 애국자였다. 스님은 1936년 법납 37년 세수 71세로 입적했다. 관음사는 스님의 행적을 이렇게 정리했다. “봉려관 스님은 조선조 억불정책으로 인한 200여 년간의 무불시대를 마감하고 이 땅에 불교를 일으켜 세운 제주불교 중흥조요, 선각자요 애국지사이시다.”
법정사무오항쟁은 1918년 10월7일 서귀포시 도순동 산 1번지 법정사에서 평소 일본제국 통치를 반대하던 불교계의 김연일 방동화 등 스님이 중심이 되어 법정사 신도와 지역주민 천도교 등 700여명이 집단으로 무장하여 2일 동안 조직적으로 일본에 항거한 항일운동이다. 이듬해 3·1운동을 비롯하여 항일 민족의식을 일깨운 선구자적 항일로 높이 평가받는다.
무장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주요 가담자 66명은 체포되어 48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5명이 옥사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항일 중심지 법정사는 일본순사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1992년 재판기록이 발굴되면서 무오법정사항일항쟁성역화 사업이 추진돼 보천교도의 난으로 명명되었던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졌으며, 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옛 법정사 주변의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어 2004년 700인 합동 신위와 66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 등을 준공했다. 법정사는 현재 터가 남아있다.
◼ 한라산과 불교
‘당오백 절 오백’ 섬 전체 불교성지
제주 지명 탐라도 불교 경전서 나와
초전법륜지 영실이 제주불교 산실
제주도는 ‘당오백 절오백(堂五百 寺五百)’이라 할 정도로 섬 전체가 불교성지다. 제주(濟州)의 원래 이름 탐라(耽羅)는 불교 경전 구절에서 나왔고 한라산(漢拏山)은 나한(羅漢)이 상주하는 산이라는 뜻이다. <고려대장경> 제30권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佛說大阿羅漢難提密多羅所說法住記)(약칭 법주기)가 그 출처다. <법주기>는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들기 전에 설한 <법주경(法住經)>을 불멸 후 800년경에 현재의 스리랑카에 해당하는 사자국(師子國) 승려 난제밀다라(難提密多羅)(경우존자(慶友尊者)라고도 불림)가 다시 설법한 내용을 기록한 경이다.
제주도와 한라산을 나한이 상주하는 불국토라고 우리 조상들은 신성시한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 이후 <화엄경>에 따라 이 땅 전체가 불보살이 거주하는 불국토로 바라보는 불신상주설이 널리 퍼졌다. 이에따라 유명한 산 봉우리 등에 불보살 이름을 붙였다. 금강산 오대산 세존봉 원효봉 의상봉 등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는 이름이 이렇게 해서 생겼다.
제주도와 한라산은 그 중에서 나한 상주처였다. 지금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지명이 이를 말해준다. 제주는 곧 한라산이다. 한라산에서도 불교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는 영실(靈室)이 최고의 성지다. 관광객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영실은 하늘로 솟아 있는 기암괴석 모습이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한 영산과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영실 탐방로 입구에서 바라 보이는 오백나한봉, 제주도에 불교가 가장 먼저 들어왔으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존자암(尊者庵), 존자암 뒤편의 불래(佛來)오름 등 온통 불교 일색이다. 아예 나한을 산 이름으로 정한 한라산, 존자암 역시 나한에 대한 존칭이다.
<법주기>의 구절을 보면 탐라, 한라산, 존자암 등이 어디에서 기인하였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탐몰라주 발타라 존자는 부처님 열반 후 중생들이 삼보를 호지하는데 정법 수행할 바를 설하며 미륵불이 출현할 때 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선정에 들어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시며 석존께서 열반하실 때 무상법을 16대 아라한과 그 권속에게 부촉하시어 수미산을 중심으로 16개국 정법이 머무는 법주도량에 파견하시었다” ‘정법이 머무는’ 법주도량 중 한곳으로 제주로 여겼음이 경전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제주와 한라산은 불교를 빼고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 억불 정책에 의해 제주의 불교는 철저히 파괴됐다. 특히 숙종 때 제주 목사를 지낸 이형상은 폐사에 앞장서 가장 많은 절을 불태웠다. 제주도의 절은 대부분 이 시기에 사라졌다. 그 이후 제주불교는 맥이 끊겨 불교 암흑시대를 보내다 관음사를 다시 일으킨 안봉려관 스님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관음사와 제주 출신 고승, 선승들 그리고 제주불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많은 가람이 현대에 다시 들어서면서 불교성지의 옛 명성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불교성지 제주의 본모습 찾기는 여전히 미완이다. 특히 이름을 되찾고 널리 알리는 불사가 시급하다. 한라산과 제주를 설명하는 어디에도 불교 관련성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한라산을 ‘손을 들어 은하수를 잡을 수 있을 만큼 높다’는 뜻이라는 아무런 근거도 출처도 없는 엉터리 설명이 마치 공식인양 유통된다. 인터넷 포털 설명까지 사실인양 적혀 있는 실정이다. 불교경전을 따르면 제주와 한라산 유래 역사 의미가 명확하게 설명되는데, 불교관련설을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억지춘양식 궤변이 횡행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전도된 현실이 한라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 백록담 가는 길
성판악, 관음사 두 코스
관리공단 홈피 예약 필수
오후 1시30분 하산해야
화산이 만든 계곡과 암벽
발아래 구름과 바다 조망
한라산은 높이 1947.3m로 남한에서 가장 높다. 육지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이 1915m다. 섬 중심부에 높게 솟은 주봉은 부악이다. 1000m 이상 봉우리가 20여개다. 나머지는 방패를 엎어놓은 듯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바다로 빠져든다. 이 중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면적은 제주도 전체의 8.3% 정도다.
현재의 제주도가 형성된 것은 지금부터 120만년에서 2만5000년 사이, 한라산 화산체가 형성된 것은 30만년 전에서 10만년 전 사이다. 화산 폭발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멀리까지 흘러내려가지 않고 분화구 주변에 떨어져 쌓여 한라산체 위쪽은 경사가 급하다. 관음사 계곡에 올라가 삼각봉 대피소에서 바라보면 수직으로 곧추 선 벽을 마주한다.
한라산 꼭대기 백록담은 둘레 3km, 깊이 115m 분화구다. 백록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으려는 등산객들로 평일에도 길게 줄이 선다. 한라산은 해발고도에 따라 날씨가 다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혹은 산 높이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한라산 등반은 까다롭다. 오르는 길은 두 갈래다. 성판악 매표소에서 속밭 사라오름 진달래밭 정상 동릉으로 오르는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옆에서 탐라계곡, 개미등, 삼각봉 대피소, 동북릉으로 오르는 길 두 갈래다.
1990년대까지는 영실에서 윗새오름, 남벽을 따라 오르는 영실코스와, 어리목광장에서 사제비 동산, 윗새오름, 남벽으로 오르는 두 갈래가 더 있었지만 자연휴식년제로 남벽 능선이 폐쇄된 뒤 열리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개방 논의가 나왔다가 환경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남벽으로 못가지만 영실 윗새오름을 지나 어리목에 이르거나 되돌아 오는 코스는 평탄하면서도 풍광이 좋아 지금도 등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라산 등반을 하려면 몇 가지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성판악코스와 관음사코스는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하루 탐방객 숫자를 제한하기 때문에 주말 등에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예약하는 사람이 많아 막상 하루 전에는 여유가 나기도 한다. 예약 하고도 찾지 않는 이른바 ‘노쇼’(no show)는 1회 3개월, 2회 1년 동안 예약을 못 할 정도로 벌칙이 강하다.
성판악 관음사 두 곳 외 영실과 어리목은 따로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탐방 제한 시간이 있다. 네 곳 다 오전 6시부터 문이 열리며 성판악은 진달래밭을, 관음사코스는 삼각봉대피소를 낮 12시에 통과해야 한다. 매표소에서 대피소까지 대략 7km 거리이므로 걸음이 빠르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백록담에서는 오후 1시30분 이전에 하산해야 한다. 산이 높고 길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조치다.
관음사코스 주차장은 차량 여유가 있지만 성판악은 협소한데다 길가에 불법 주차를 하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봉으로 막아 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헛걸음 할 수 있다. 영실은 오백나한 절 입구에 주차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이곳에 주차를 하지 못하면 존자암 입구까지 내려와야 하는데 도보로 40분이 걸린다.
이처럼 많은 제약이 있고 까다로운 것은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식생이 다양하고 자연환경이 탁월한 한라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현무암과 고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식생, 정상에서 바라 보이는 바다와 해안가 풍경의 기막힌 조화, 허리 아래 걸린 구름띠, 정상 부근의 주목과 기기묘묘한 풍경, 백록담 주변의 곧추선 벽.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에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한라산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천왕사와 이효리
한라산 아흔아홉골에 자리해 기도 성취도량으로 유명한 제주 천왕사가 인기 연예인 이효리씨가 출연한 2018년의 ‘효리네 민박’으로 인지도가 급상승한 뒤 국내외 젊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효리네 민박에 방송됐던 관광지를 찾아가는 ‘효리네 투어’에서 함께 출연한 이효리씨와 아이유씨가 천왕사에서 함께 구입했던 합장주도 인기 구매품이다.
'마음 쉬어가는 고품격 힐링코스'...제주불교성지순례길 '인욕의 길'개장
원성심 기자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헤드라인제주 기사 승인 2017.10.26. 12:35
29일 천왕사서 개장식...천왕사~석굴암~충혼각 5km 절로 가는 길
(주)제주불교신문(대표이사 허운 스님)과 제주도관광공사(사장 박홍배)는 오는 29일 오전 10시 한라산 천왕사(주지 지오 스님)에서 제주불교성지순례길 '인욕의 길'개장식을 갖는다.
이번 개장식에 이어 걷게 될 천왕사~석굴암~충혼각 5km의 순례코스는 불자 뿐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때' 힐링코스로도 제격이다.
천왕사는 이미 한라산 기슭에 자리잡아 기도 영험도량으로 제주불자들에게 최고의 기도처로 각광 받아온 사찰이다.
여기에 일반인과 관광객들이 마음을 사로잡는 천혜의 고즈넉한 풍경에 개장식에 선물로 찾아 올 단풍은 순례객들에게 최고의 힐링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어 300m 발걸음을 옮겨, 제주도민들의 최고 등산코스로 자리한 석굴암 순례길 3km(왕복)를 걷는다. 한라산 금봉곡에 자리한 석굴암 코스는 제주도민에게 부처님이 선사한 가피의 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석굴암에서 1.5km의 내리막길을 걸어 호국도량 충혼각에서 따뜻한 점심공양이 곁들여지면서 회향한다.
충혼각은 매년 '전물군경합동 위령대제'를 봉행하며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도량이다. 매년 (음)3월 18일 입재해 20일 회향하고 납골당 합동위령제는 (음)9월 9일 봉행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故 설봉 스님에 의해 1956년 사라사에서 시작해 한라산 충혼각으로 이전, 호국영령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있다.
한편 제주불교신문과 제주도관광공사는 지난 2012년 제주시 관음정사~관음사를 잇는 지계의 길을 시작으로 2013년 서귀포시 존자암~남국선원을 잇는 정진의 길, 2014년 제주시 대원정사~불탑사를 잇는 보시의 길을 개장했다.
이어 2016년에는 서귀포지역의 선덕사~천제사를 잇는 네 번째 제주불교성지순례길인 '선정의 길'을 개장했고, 2017년의 인욕의 길은 제주시지역의 관음사~천왕사~영실~존자암을 잇는 길이다.
순례길 마다의 지계, 정진, 보시, 선정, 지혜, 인욕이란 명칭은 불자들의 지켜야할 수행덕목인 육바라밀에서 따왔다.
문의=제주불교신문(064-755-2203)
천왕사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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