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포럼을 시작한 이유
(트루스포럼 대표 김은구)
- 지난 금요일(6월28일)에 붙인 대자보 입니다.
트루스포럼을 시작하게된 배경을 적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강호 위원님의 강연은 반드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58
트루스포럼을 시작한 이유
서울대 입학한 첫 학기 한국사 수업을 들었다.
교수님이 6.25에 대해 설명하시며 6.25는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고 말을 떼시는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남한의 북침입니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반복해서 소리를 질렀고
당황한 교수님은 그를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그 때 나는 6.25에 대한 내가 모르는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법대에선 좀 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정의의 광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히히덕거리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의외였다. 빨치산 출신을 만났는데 '혁명이
어려운 게 아니다. 6.25 당시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했듯,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혁명은 그렇게 어느 순간 완수될 것'이라며 격려했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당시엔 그게 무슨 얘기인지
곱씹어 볼 여유도 없이 대학생활은 분주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80년대 운동권 선배들은
전략적으로 학생회를 장악했고, 법대는 입학과 동시에
운동권 학회로 자동가입 되는 시스템을 갖춰 둔 상황이었다.
학회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뭔가 있어 보였고
서울대에 법대까지 왔으니 여기에서는 그런가보다 싶었다.
신입생 환영회라며 입학하기도 전에 참석했던 오티에서는
계급적 자각을 유도하는 짧은 영상을 보여주며 토론을
붙였다. 입학 전부터 진행된 의식화 교육이었다.
처음엔 대부분 어색하게 느꼈지만 학습이 빠른 서울법대
신입생들은 대다수가 큰 저항 없이 곧 바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했다. 법대 수업에서도 대부분 민주화 운동을 미화했는데
어떤 교수들은 소위 혁명가 출신이었다. 경쟁에 익숙한
일부 친구들은 이제 앞을 다투며 선배들이 규정해 둔
정의로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민주화 운동은 당연히
순수한 것이었고 국가는 민중을 억압하는 부당한 폭력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따라 나간 데모에서 경찰에 쫒기는
경험이라도 한다면 투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옹호하려고 굳이 애쓰기 보다는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것이 편안하고 정의로운 길이었다.
전교 1등을 한들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람시의 진지전을 충실하게 수행한 선배들로 인해
법대의 헤게모니는 이미 그렇게 구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순수한 민주화 운동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혁명운동은 건국 당시부터 언제나 뒤섞여 있었고
혁명가들은 늘 민주화 운동을 빙자했다.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하는 기회주의자들 역시 섞여 있었다.
몇 년 뒤,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하면서 6.25 당시
소련의 비밀문서를 우리측에 공개한 사실을 알게됐다.
6.25는 스탈린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김일성의 명백한
기습 남침이었다. 진실을 알게된 것에 기뻤다.
6.25가 남한의 북침이라 외쳤던 선배와 같은 사람들도
이제 진실을 알게되었을테니 오해에 대해 사과하고
마음의 짐을 덜고 자유로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나라를 위해 피흘려 싸운
국군 장병들과 참전용사들을 조롱했던 거대한 오해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는 어디에도 없었다.
누가 먼저 공격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발전적인
남북관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궤변이 당연히 있어야 할
사과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진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짓 선동으로 국정을 마비시킨 광우병 사태와
박대성씨에게 감옥까지 찾아가 분신자살을 종용했던
미네르바 사건을 지나오면서 나는 거짓을 이용해서라도
대한민국을 부정하려는 혁명가들이 존재함을 명확히 깨달았다.
그들이 다시 언론의 거짓된 기사들을 이용해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고 광화문을 촛불로 뒤덮었을 때에는
더이상 침묵할 수만은 없었다.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미래를 두고 목숨을 바친 선각자들과
그들을 따랐던 선량한 사람들, 그들에게 대항했던
순수한 민주화 운동가들과 좌우를 넘어 기생하는
기회주의자들, 건국 당시부터 대한민국을 부정해 온
사람들과 끊임없이 분열을 조장하며 공작을 진행해 온
북한이라는 다양한 변수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그려오고
있다. 상처를 보듬어 싸매는 것도, 진실을 직면하고 바로잡아
나아가는 것도 모두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진정한 화해와 일치는 거짓에 기반한 감정적
동이 아닌 오직 진실에 기반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오직 거짓을 떠난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제 김원봉을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려는
시도마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학우 여러분은 언제까지 침묵하시겠는가?
모든 죽음은 안타까운 것이고 일제 시절 김원봉의
독립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6.25
전쟁의 공으로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고 그 후에도
대한민국을 전복할 목적으로 남파간첩을 침투시켰던
사람을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 서훈한다면 분단의
원흉인 김일성에게도 서훈을 수여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김원봉의 서훈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읍 발언이 있기 이전에 김일성은
이미 소련의 도움을 받아 사실상의 정부기구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설치했고 인민재판과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김일성마저도 이때까지는 우리 민족의 상징인 태극기를
들었고 애국가를 불렀다. 소련이 만들어 준 인공기를
들고 소련의 지원과 지령을 받아 기습적으로 6.25 전쟁을
개시한 김일성은 민족의 반역자이며 전쟁범죄의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이다. 그가 만든 북한은 반인도범죄
국가이고 지구상 유일한 전체주의 노예국가라는 것이
2014년 유엔북한인권보고서의 결론이다.
지금도 그 본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트루스포럼은 1.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2.북한의 해방이 우리 민족의 사명임을
인식하며 3.자유와 진리의 가치 아래 굳건한 한미동맹을
지지한다. 또한 4.탄핵의 부당성을 인식하며
5.유대-기독교 전통에 기반한 기독교 보수주의를
바탕으로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2019년 6월 28일
법대 박사16, 트루스포럼 대표 김은구
truthforum.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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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찢어 죽이려던 선배(이강호)의 특강
6월 29일 토요일 오후 6:30, 전두환을 찢어 죽이는 게
삶의 목표였던 선배의 특강이 있다.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며 구속되었던 학생회관 2층 라운지에서 강연을
진행한다. 트루스포럼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공개될 예정이다.
학우들이 많은 참여를 바란다.
아래는 이강호 선배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소개이다.
아버지께서는 장면 박사 비서셨고 박정희의 516으로
창창한 앞길이 막히셨다. 동교동계 정치인으로 활동하셨는데
전두환 때 6개월간 아무런 얘기도 없이 사라지셨다.
아버지께서 만신창이가 되어 나타나셨을 땐 전두환을
찢어 죽이는게 삶의 목표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 이미 운동권 이념서적을 완독했고,
서울대 입학 후에는 바로 활동을 시작했다.
85년엔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되면서 바로 구속되기도했지만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PD계열 운동권마저 북한과 연결된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조직을 해산시킬 수 밖에 없었다.
전두환은 찢어 죽여야 했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왜곡한 김일성은 태워 죽여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모국 소련마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오랜동안 가져온 신념에 환멸을 갖게 됐다.
건국 당시부터 끊임없었던 북한의 공작을 부정할 수 없었고,
이승만, 박정희의 공적을 그리고 집안의 오랜 원수인
전두환마저도 대한민국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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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