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는가?
우리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음란 방탕하며, 거짓을 행하는 일을 큰 죄로 여깁니다.
그러나 사실 더 큰 죄가 있습니다.
자신도 지옥에 갈 죄인이었으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경멸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욕심을 비난합니다.
자기도 거짓을 품고 살면서 남의 거짓을 참지 못합니다.
자기도 이기적이면서, 이기적인 사람을 정죄합니다.
예수동행일기를 쓰면서 음란한 일, 탐심과 거짓 등에 대하여 쓰지는 것은 대단히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싸우고 화내고 갈라진 일에 대하여는 쉽게 고백합니다.
윤리적인 죄 보다 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매일 용서받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할 때, 악수하고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오늘 회개하셨습니까?' 라고 묻곤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매일 용서받는 삶'이 필요함을 깨우쳐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동행집회 때 보혈 찬송과 보혈을 의지하여 정결함을 받는 기도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매일 용서받는 것’이 필요하다면 ‘매일 용서하는 것’도 필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사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 안식년 중에 이스라엘에 한달을 지냈는데, 갈릴리 호수가에 있는 팔복교회에서 갈릴리 호수로 내려가는 길을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 길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던 길이어서 예수님도 제자들과 걸으셨을 것이라 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내려오는 동안 눈 앞에 펼쳐진 갈릴리 호수와 주변 산과 들판의 모습이 숨이 멎는 듯 아름다웠습니다.
무엇 보다 이 광경을 주님께서도 보셨겠구나! 생각하니 더욱 감동이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며 내려오는데 자그마한 굴 하나가 있었습니다. 안내하시는 목사님께서 굴 속에 저를 앉게 하더니 이곳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제자를 세우셨던 곳이라고 알려진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앉아 묵상하는데, 갑자기‘주님은 갈릴리 호수 주변 풍경을 보지 않으시고 사람을 보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복음서 어디에도 눈 앞에 펼쳐진 갈릴리 호수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한 언급이 없음이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신 분이 이 세상 경치가 눈에 들어오셨겠습니까?
주 예수님의 눈에 보였던 것은 오직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세우셨고, 모든 족속을 제자삼으라고 파송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핍박자 사울도 위대한 전도자로 보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끄십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과정을 통하여 주님과 하나되는 성숙함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때, 비로서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으로 사는 감각이 생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