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寂止隨念(upasamānussati)
♦ 6. kaṭuviyasuttaṃ (AN 3.129) 더러움 경 (A3:126) Kațuviya-sutta
♦ 129. ekaṃ samayaṃ bhagavā bārāṇasiyaṃ viharati isipatane migadāye.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bārāṇasiṃ piṇḍāya pāvisi.
addasā kho bhagavā goyogapilakkhasmiṃ piṇḍāya caramāno
aññataraṃ bhikkhuṃ rittassādaṃ bāhirassādaṃ
muṭṭhassatiṃ asampajānaṃ asamāhitaṃ vibbhantacittaṃ pākatindriyaṃ.
dis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 --
1.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서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걸식을 위해서 바라나시로 들어가셨다.
세존께서는 소를 매매하는 장소인 무화과나무 근처에서 탁발을 하시다가
어떤 비구가 [禪의] 행복은 없고 밖의 [감각적 욕망의] 행복에 빠져632)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이 없고 집중되어 있지 않고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은 것을 보셨다. 그 비구를 보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632) '[禪의] 행복은 없고 밖의 [감각적 욕망의] 행복에 빠져'로 옮긴 원문은 rittassādaṃ bāhirassādaṃ이다.
주석서에서 각각 禪의 행복과 감각적 욕망의 행복으로 설명하고 있다.(AA.ii.378)
*rittassāda : finding one’s taste in empty things
♦ “mā kho tvaṃ, bhikkhu, attānaṃ kaṭuviyamakāsi.
taṃ vata bhikkhu kaṭuviyakataṃ attānaṃ āmagandhena avassutaṃ makkhikā nānupatissanti
nānvāssavissantīti ,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비구여, 비구여. 그대는 자신을 더럽게 하지마라.
비구여, 자신을 더럽게 하여 비린내를 풍기면 파리들이
그대에게 몰려들지 않을 것이고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atha kho so bhikkhu bhagavatā iminā ovādena ovadito saṃvegamāpādi.
atha kho bhagavā bārāṇasiy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bhikkhū āmantesi --
2. 그러자 그 비구는 세존의 이러한 교계를 듣고 절박함을 일으켰다.
그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걸식을 하여 공양을 마치시고
걸식에서 돌아와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 “idhāhaṃ, bhikkhave,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bārāṇasiṃ piṇḍāya pāvisiṃ.
addasaṃ kho ahaṃ, bhikkhave, goyogapilakkhasmiṃ piṇḍāya caramāno
aññataraṃ bhikkhuṃ rittassādaṃ bāhirassādaṃ muṭṭhassatiṃ asampajānaṃ
asamāhitaṃ vibbhantacittaṃ pākatindriyaṃ. dis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ṃ --
♦ “‘mā kho tvaṃ, bhikkhu, attānaṃ kaṭuviyamakāsi.
taṃ vata bhikkhu kaṭuviyakataṃ attānaṃ āmagandhena avassutaṃ makkhikā nānupatissanti
nānvāssav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atha kho, bhikkhave, so bhikkhu mayā iminā ovādena ovadito saṃvegamāpādī”ti.
“비구들이여, 여기 나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바라나시로 들어갔다.
비구들이여, 나는 소를 사고파는 장소인 무화과나무 근처에서 탁발을 하다가
어떤 비구가 [禪의] 행복은 없고 밖의 [감각적 욕망의] 행복에 빠져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이 없고 집중되어 있지 않고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은 것을 보았다. 그 비구를 보고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비구여, 비구여. 그대는 자신을 더럽게 하지마라.
비구여, 자신을 더럽게 하여 비린내를 풍기면 파리들이 그대에게 몰려들지 않을 것이고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자 그 비구는 나의 이러한 교계를 듣고 절박함을 일으켰다.”633)
633) “절박함을 일으켰다는 것은 그 비구가 예류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Ibid)
evaṃ vutte aññataro bhikkhu bhagavantaṃ etadavoca —
“kiṃ nu kho, bhante, kaṭuviyaṃ? ko āmagandho? kā makkhikā”ti?
♦ “abhijjhā kho, bhikkhu, kaṭuviyaṃ; byāpādo āmagandho; pāpakā akusalā vitakkā makkhikā.
taṃ vata, bhikkhu, kaṭuviyakataṃ attānaṃ āmagandhena avassutaṃ makkhikā
nānupatissanti nānvāssav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3.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더러움이고 어떤 것이 비린내며 어떤 것이 파리입니까?”
“비구여, 탐욕이 더러움이고 악의가 비린내며 악하고 해로운 생각이 파리이다.
비구여, 참으로 자신을 더럽게 하여 비린내를 풍기면 파리들이 그대에게 몰려들지 않을 것이고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 “aguttaṃ cakkhusotasmiṃ, indriyesu asaṃvutaṃ.
♦ makkhikānupatissanti, saṅkappā rāganissitā.
4. “눈과 귀 보호하지 않고 감각기능들 제어하지 않는 자에게
욕망을 의지하는 나쁜 생각이라는 파리 떼가 몰려드나니
♦ “kaṭuviyakato bhikkhu, āmagandhe avassuto.
♦ ārakā hoti nibbānā, vighātasseva bhāgavā.
더러움을 만들어 비린내를 풍기는 비구는
열반으로부터 멀리 있고 오직 괴로움을 겪으리.
♦ “gāme vā yadi vāraññe, aladdhā samathamattano .
♦ pareti bālo dummedho, makkhikāhi purakkhato.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 그는 마을에서건 숲에서건
마음의 고요함을 얻지 못하고 파리들만 앞세우고 다니네.
♦ “ye ca sīlena sampannā, paññāyūpasameratā.
♦ upasantā sukhaṃ senti, nāsayitvāna makkhikā”ti.
그러나 계를 구족하고 통찰지와 고요함을 즐기는 자들 <*戒-定-慧>
그들은 파리를 모두 없애버리고 평화와 행복을 누리네.”
<*파리 : gehasitā sarasaṅkappā 재가(출가 전의 세속)와 관련된 기억(에 의한) 생각(사유)>
chaṭṭhaṃ.
upasama,[Sk.upaśama,upa + śam]
calm,quiet,appeasement,allaying,assuagement,tranquillizing
in freq.phrase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ṁvattati]
as one of the 4 objects of [adhiṭṭhāna,viz.paññā° sacca° cāga° upasama°]
[ariyaṁ maggaṁ dukkh°-gāminaṁ] [dukkh°] [vitakk°] [°ânussati]
sammati,1 [śam; Dhtp 436=upasama] 1.to be appeased,calmed; to cease
pp.santa.-- Caus.sāmeti to appease,suppress,stop
[ so aññataraṃ santaṃ cetovimuttiṃ upasampajja viharati.
그는 평화로운, 마음의 해탈[心解脫]가운데 하나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 ]
[ kāyagatāya satiyā.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bhāvite bahulīkate 닦고 많이많이 [공부] 지으면
vitakkavicārāpi vūpasammanti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도 가라앉는다.]
[ yathayidaṃ, bhikkhave, cetaso avūpasamo.
그것은 바로 마음이 고요하지 않음이다.
avūpasantacittassa, bhikkhave, anuppannañceva uddhaccakukkuccaṃ uppajjati
uppannañca uddhaccakukkuccaṃ bhiyyobhāvāya vepullāya saṃvattatī”ti.
비구들이여,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들뜸과 후회가 일어나고,
또 이미 일어난 들뜸과 후회는 증장하고 드세어진다.]
[ buddhānussati.
ayaṃ kho, bhikkhave, ekadhammo bhāvito bahulīkato ekanta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ī”ti.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함이다.
비구들이여, 이 하나의 법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절대적인 역겨움, 탐욕이 빛바램, 소멸, 고요함, 최상의 지혜, 깨달음, 열반을 얻게 된다.
dhammānussati ... pe ... saṅghānussati... sīlānussati... cāgānussati... devatānussati...
ānāpānassati... maraṇassati... kāyagatāsati...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이다.
“ …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함이다. … ”
“ … 계를 계속해서 생각함이다. … ”
“ …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함이다. … ”
“ … 신들을 계속해서 생각함이다. … ”
“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 ”
“ …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 ”
“ … 몸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 ”
비구들이여, 하나의 법이 있어, 그것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윤회에 대한]
절대적인 역겨움, 탐욕이 빛바램, [탐욕 등의] 소멸, [오염원들의] 고요함<* 寂止>,
최상의 지혜, 깨달음, 열반을 얻게 된다. 무엇이 그 하나의 법인가?
<寂止隨念> upasamānussati.
ayaṃ kho, bhikkhave, ekadhammo bhāvito bahulīkato ekanta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ī”ti.
“ … 고요함을 계속해서 생각함이다. …
<寂止隨念>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 寂止을 얻게 된다.>]
[ ♦ “yadā buddho abhiññāya, dhammacakkaṃ pavattayī.
♦ sadevakassa lokassa, satthā appaṭipuggalo.
♦ “sakkāyañca nirodhañca, sakkāyassa ca sambhavaṃ.
♦ ariyañcaṭṭhaṅgikaṃ maggaṃ, dukkhūpasamagāminaṃ.
♦ “yepi dīghāyukā devā, vaṇṇavanto yasassino.
♦ bhītā santāsamāpāduṃ, sīhassevi’taremigā.
♦ “avītivattā sakkāyaṃ, aniccā kira bho mayaṃ.
♦ sutvā arahato vākyaṃ, vippamuttassa tādino”ti .
신들을 포함한 세상에서
견줄 이 없는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최상의 지혜로 알아 법 바퀴 굴리고
자기 존재[有身]와 자기 존재의 일어남과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팔정도를 설하셨네.
긴 수명을 가졌고 아름답고 명성을 가진 신들조차도
아라한 해탈하신 분 여여하신 분의 말씀을 들은 뒤
사자 앞의 다른 동물들처럼 두려움과 전율에 빠졌네.
'오, 참으로 우리는 존재의 무더기를 넘어서지 못했고
무상하구나.'라고 하면서.]
[ ♦ “aggato ve pasannānaṃ, aggaṃ dhammaṃ vijānataṃ.
♦ agge buddhe pasannānaṃ, dakkhiṇeyye anuttare.
♦ “agge dhamme pasannānaṃ, virāgūpasame sukhe.
♦ agge saṅghe pasannānaṃ, puññakkhette anuttare.
♦ “aggasmiṃ dānaṃ dadataṃ, aggaṃ puññaṃ pavaḍḍhati.
♦ aggaṃ āyu ca vaṇṇo ca, yaso kitti sukhaṃ balaṃ.
으뜸의 법 알아 최상의 청정한 믿음 가진 자들에게,
위없는 보시를 받아 마땅한 으뜸인 부처님
그분께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탐욕이 빛바래어 고요하고 행복한 으뜸인 법
그 법에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위없는 복밭인 으뜸인 승가
그 승가에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으뜸가는 보시를 베푼 자들에게 -
으뜸가는 공덕이 증장하나니
[그것이 바로] 으뜸가는 수명과 용모와
명예와 명성과 행복과 힘이다.]
[ “anupasamārāmā, bhikkhave, pajā anupasamaratā anupasamasammuditā.
sā tathāgatena opasamike dhamme desiyamāne sussūsati sotaṃ odahati aññā cittaṃ upaṭṭhapeti.
비구들이여, 사람들은 고요하지 않음을 좋아하고 고요하지 않음에 물들어 있고
고요하지 않음에 탐닉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래가 고요함으로 인도하는 법을 설하면 듣고자 하고
귀를 기울이며 알기 위해서 마음을 확립시킨다.]
[ channaṃ, āvuso, phassāyatanānaṃ asesavirāganirodhā papañcanirodho papañcavūpasamo”ti.
도반이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할 때
사량분별이 소멸하고 사량분별이 가라앉습니다.]
[ “carato cepi, bhikkhave, bhikkhuno uppajjati
kāmavitakko vā byāpādavitakko vā vihiṃsāvitakko vā.
taṃ ce bhikkhu nādhivāseti, pajahati vinodeti byantīkaroti anabhāvaṃ gameti,
carampi, bhikkhave, bhikkhu evaṃbhūto
‘ātāpī ottāpī satataṃ samitaṃ āraddhavīriyo pahitatto’ti vuccati.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걷고 있는 동안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과 악의에 대한 생각과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 일어난다면,
만일 그가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면,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이런 상태로 걷고 있다면,
그를 일러 애쓰고 수치심이 있고 언제나 한결같이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를 독려한다고 말한다.
♦ “caraṃ vā yadi vā tiṭṭhaṃ, nisinno uda vā sayaṃ.
♦ yo vitakkaṃ vitakketi, pāpakaṃ gehanissitaṃ.
♦ “kummaggappaṭipanno so, mohaneyyesu mucchito.
♦ abhabbo tādiso bhikkhu, phuṭṭhuṃ sambodhimuttamaṃ.
걷고 있거나 서있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동안에
그는 오염원에서 비롯된55) 사악함을 생각하고
미혹을 일으키는 것들에 혹해서 나쁜 도를 닦나니
이런 비구는 최상의 깨달음에 닿을 수 없으리.
55) 원어는 geha-nissita이다. geha는 '세속적인'의 뜻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오염원(kilesa)을 뜻한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AA.iii.16)
♦ “yo ca caraṃ vā tiṭṭhaṃ vā, nisinno uda vā sayaṃ.
♦ vitakkaṃ samayitvāna, vitakkūpasame rato.
♦ bhabbo so tādiso bhikkhu, phuṭṭhuṃ sambodhimuttaman”ti.
그러나 걷고 있거나 서있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동안에
[나쁜] 생각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고요히 함을 즐기는
이런 비구는 최상의 깨달음에 닿을 수 있으리.]
[ ♦ “akkocchi maṃ avadhi maṃ, ajini maṃ ahāsi me.
♦ ye ca taṃ nupanayhanti, veraṃ tesūpasammati.
'나를 욕했다, 나를 때렸다.
나를 이겼다, 내 것을 훔쳤다.'라고
이런 생각을 품지 않는 자
그들의 원한은 영원히 멈추리. ]
[ “tasseva kho pana pubbe aviddasuno abhijjhā hoti chando sārāgo.
svāssa pahīno hoti ucchinnamūlo tālāvatthukato anabhāvaṃkato āyatiṃ anuppādadhammo.
tasseva kho pana pubbe aviddasuno āghāto hoti byāpādo sampadoso.
svāssa pahīno hoti ucchinnamūlo tālāvatthukato anabhāvaṃkato āyatiṃ anuppādadhammo.
tasseva kho pana pubbe aviddasuno avijjā hoti sammoho.
svāssa pahīno hoti ucchinnamūlo tālāvatthukato anabhāvaṃkato āyatiṃ anuppādadhammo.
전에 그가 어리석었을 때 그는 탐욕과 열망과 욕망이 있었다.
이제 그것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그것을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전에 그가 어리석었을 때 그는 분노와 악의와 혐오가 있었다.
이제 그것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그것을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전에 그가 어리석었을 때 그는 무명과 어리석음이 있었다.
이제 그것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그것을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tasmā evaṃ samannāgato bhikkhu iminā paramena upasamādhiṭṭhānena samannāgato hoti.
eso hi, bhikkhu, paramo ariyo upasamo yadidaṃ — rāgadosamohānaṃ upasamo.
그러므로 이와 같은 [고요함을 ]구족한 비구는 이런 최상의 고요함의 토대를 구족한다.
비구여, 이것이 최상의 성스러운 고요함이니 바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고요함이다.]
[ ete kho, bhikkhave ,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이 양 극단을 떠나 여래는 중도를 철저하고 바르게 깨달았나니,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 so vatānanda, bhikkhu saṅgaṇikārāmo saṅgaṇikarato saṅgaṇikārāmataṃ anuyutto
gaṇārāmo gaṇarato gaṇasammudito
yaṃ taṃ nekkhammasukhaṃ pavivekasukhaṃ upasamasukhaṃ sambodhisukhaṃ
tassa sukhassa nikāmalābhī bhavissati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ti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아난다여, 참으로 비구가 대중에 사는 것을 좋아하고 대중에 사는 것을 즐기고
대중에 사는 즐거움에 몰두하며, 무리를 좋아하고 무리를 즐기고 무리의 즐거움에 몰두하면서,
출리의 즐거움과 떨쳐 버림의 즐거움과 고요함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려움 없이 얻으리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
[ evañhi so, bhikkhave, goṇo kiṭṭhādo gāmagato vā araññagato vā,
ṭhānabahulo vā assa nisajjabahulo vā na taṃ kiṭṭhaṃ puna otareyya —
tameva purimaṃ daṇḍasamphassaṃ samanussaranto.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하면 곡식을 좋아하는 황소는
마을로 갈 때나 숲으로 갈 때나 오래 서 있을 때나 오래 앉아 있을 때나,
이전에 몽둥이로 세차게 맞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다시는 그 밭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seyyathāpi, bhikkhave, gimhānaṃ pacchime māse sabbasassesu gāmantasambhatesu
gopālako gāvo rakkheyya, tassa rukkhamūlagatassa vā abbhokāsagatassa vā satikaraṇīyameva hoti
— ‘etā gāvo’ti.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더운 여름의 마지막 달에 모든 곡식들을 마을 안으로 다 거둬들였을 때
소치는 사람이 소떼를 보호 한다고 하자. 그는 나무 아래로 가거나 노지에 가서
'여기 소떼가 있구나.'라고 마음챙김만 잘하면 된다.
evamevaṃ kho, bhikkhave, satikaraṇīyameva ahosi — ‘ete dhammā’ti.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이런 마음의 현상들[法]이 있구나.'라고 나는 마음챙김만 하면 되었다.
“āraddhaṃ kho pana me, bhikkhave, vīriyaṃ ahos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ṃ cittaṃ ekaggaṃ.
비구들이여, 내게는 불굴의 정진이 생겼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었고 혼란스럽지 않으며
몸이 경안하고 동요가 없으며 마음은 집중되어 일념이 되었다.]
첫댓글
수행과 관련된 동영상을 보다가
실참 수행하시는 분들이 일상생활에서는 무엇을 사띠하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참수행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적인 움직임이 크지 않는 -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 - 수행과
다른 하나는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큰 - 행주좌와(어묵동정)에 대한 사띠 -수행.
좌선에 비해서 행선은 일상생활에도 어느 정도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 보다 더 육체적인 움직임이 더 활발하거나 생각할 거리가 많은 업무 중에는
어떤 것이 사띠의 대상이 되는지 생각해 보니....
그러다가 본문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자료들이 본문입니다.
일상생활 중에는 무엇을 사띠의 대상으로 하시는 가요?
그 베이스 캠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