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꽤 오래 전 좀 큰 교회 집회를 갔었다. 설교하러 단에 올라 갔다가 숨이 막혀서 설교를 하기가 힘들었다. 못 볼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강대 옆에 장로님들만 앉는 좌석이 따로 있었다. 자리도 일반 교인들 자리보다 높게 벽돌을 어께 높이만큼 쌓아 박스를 만들고 팔걸이 의자와 책상을 놓았었다.
2. 설교 하기 전 저거 부수시라고 말씀드렸다. 이 교회는 저거 부수기 전에는 뭘해도 부흥은 없다고 말씀드렸다. 순간 교회 분위기 얼음짱처럼 싸해졌었다.
3. 미국의 제법 큰 교회 집회를 갔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큰 교회엘 가면 목사와 장로님들 어께가 좀 올라가 있는 것처럼 보여 불편하다. 그런 낌새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직설적으로 그것을 지적하곤 했었다. 그 때도 아마 그랬을꺼다. 집회가 끝난 후 몇몇 장로님들이 내 숙소로 찾아오셨다.
’죄송하지만 목사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내가 되 물었다. ’몇 살이면 들으시겠습니까?‘ 그 때 내 나이는 40 갓 넘었을 때였다.
그땐 그게 나 다웠다.
4. 은퇴 후 겨울에 태국 치앙마이를 가곤 한다. 치앙마이에 가면 난 그냥 ’모지리‘가 된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하고
식당엘 가도 핸드폰 가게엘 가도 은행엘 가도 영어 문장이 아닌 단어로 겨우 겨우 의사소통을 하며 산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싸우지도 못한다. 화도 못낸다. 그냥 왠만하면 피하고 참고 그냥 웃어 넘긴다.
난 요즘 그런 내 모습이 좋다. 맘에 든다. ’모지리‘도 나름 멋이 있고 맛이 있다.
젊어서 난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서운 사람이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요즘 난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
5. 우리 둘째가 그런 면에서 날 제일 많이 닮았다. 그 자식이 화를 내면 무섭다. 겁도 없다. 그런데 그게 우리 집의 우리 집 다움이다. 그래서 난 둘째가 좋다. 걱정은 많이 되지만.
6. 둘째가 늦게 장가를 가 늦게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예뻐 정신이 없다. 어제 며늘 아이가 아일 유모차에 태우고 집근처 당현천을 산책하며 찍은 동영상을 보냈다.
7. 우리 손자 선욱이 때문에 멀쩡한 우리 아들 완전 ’모지리‘가 됐다.
그런데 난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가끔 모지리가 되어 사는 것도 괜찮다 싶다. 좀 만만한 사람이 되어 사는 것도 괜찮다 싶다. 우리 막내 빈티지 옷가게에서 파는 색바래고 구멍 뚤리고 여기 저기 뭐 좀 묻고 풀죽은 옷의 멋이 있듯이 삶도 그렇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