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재난 속에 있었고
재난을 목격한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오늘의 과학 탐구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다. 기후위기가 전 지구에 흔적을 남기며 영향력을 떨친다면, ‘세월호’와 ‘이태원’은 사회적 재난의 상처를 남겼다. 인간, 사물, 사회의 복잡한 연결망 속에서 벌어지는 재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학계와 현장을 오가는 환경사회학 연구자 박진영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오랜 연구의 결실을 한 권의 책에 모았다.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만들어갈 과학은 어떤 모습인가? 재난에 맞서는 오늘의 과학을 이야기하자는 강렬한 선언이다.
👨🏫 저자 소개
박진영
부산대학교 SSK 느린 재난 연구팀 전임연구원. 환경사회학과 과학기술학 분야에서 과학기술과 환경, 위험과 재난, 사회갈등과 제도 등을 연구한다. 환경과 건강 문제, 공해 등을 사례로 느린 재난을 둘러싼 지식, 제도, 사회운동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목차
들어가며 재난과 살아가기 7
1장 신호를 무시하다 29
2장 불확실성에 다가가다 44
3장 참여하는 전문가 70
4장 합의에 이르는 길 96
5장 과학과 정치의 다리 120
6장 사회를 바꾸려면 148
7장 누구나 손 드는 과학 175
나가며 혼자가 아닌 이야기 196
참고 문헌 211
📖 책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 이야기는 한자리에 모일 때 더욱 강했다. 특별한 사명감이나 정의감보다 내가, 내 주변이, 우리 동네가 언제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감각을 공유했다. 예기치 못한 재난이 벌어져도 내가 속한 공동체가 피해자의 경험에 귀 기울이고 충분히 조사하길 바라는 평범한 마음이다. 환경재난과 피해를 더 떠들썩하게 말하자. 그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자. 그런 마음으로 나는 환경재난을 보고 듣고 읽고 쓴다.
--- 「들어가며」 중에서
“좋은 줄 알았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마트에서 판매되는 제품이니까, 매일 가는 마트에서 판매원이 판촉 행사를 하니까, 텔레비전에서 광고를 하니까 믿고 구입했다고 말했다. 또 옥시와 애경은 트리오, 팡이제로, 옥시크린 등 절대다수의 소비자가 찾는 생활화학제품을 판매하던 기업이다. 소비자들은 익숙한 브랜드를 달고 나온 제품이기에,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마트에서 팔리는 제품이기에 가습기살균제를 좋은 상품으로 믿고 구매했다.
--- 「1장 ‘신호를 무시하다’」 중에서
인구 집단에서 질병이 일어나는 원인과 그 경향성을 연구하는 역학자들에게 47.3이라는 교차비는 평생 처음 본 숫자,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볼 수 없는 수치”였다. 담배의 교차비보다 두 배 더 큰 이 분석값은 연구진이 찾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임을 적시하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와 동시에 역학자들에게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며 그들 자신이 “역사적 사건의 한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결과였다.
--- 「2장 ‘불확실성에 다가가다’」 중에서
나는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방청석에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청석 난간과 벽에 현수막이 여럿 붙어 있었고, 피해자분들은 현수막이나 피켓을 들고 있었다. 모두 피해자 단체가 제작한 것이다. 눈에 띄는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배경 위에는 그보다 더 시선을 잡아채는 문구가 빨간색, 흰색, 노란색으로 쓰여 있다. “살인대기업 정부통합배상”, “살인기업 옥시RB 3, 4단계 사망자 피해자 사죄 배상”, “환경부를 특검하라”, “질병관리본부 특검하라”, “가습기살균제 참사 징벌적 손해배상”, “정부는 재난선포 국가법적 책임인정”, “공소시효폐지, 기업살인 처벌법”.
기업 관계자,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현직 환경부 장관 등이 증인으로 나와 발언할 때마다 피해자들이 외쳤다. “사과하세요!”,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세요.” 청문회 위원은 증인들에게 제대로 사과할 의사가 있는지 거듭 물었다. 사과한 증인도 있었지만 하지 않은 증인도 있었다. 사과하지 않은 증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전에 사과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사과했기 때문에 자신이 할 필요는 없다는 식이었다.
--- 「4장 ‘합의에 이르는 길’」 중에서
옥시의 연구 용역을 맡은 전문가들은 기업 자본과 결탁한 청부과학자로 비판받았다. 역학자이자 공중보건학자인 데이비드 마이클스는 담배, 석면, 염화비닐, 납과 관련된 환경피해 사례에서 제품의 유해성과 관련된 논쟁을 방어하고자 기업이 취한 전략을 분석하며 이 개념을 제시했다. 기업이 과학자를 용병으로 삼아 물질이나 제품이 유해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생산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마이클스는 기업이 그들 제품의 유해성을 밝힌 다른 과학 연구를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며 유해성을 둘러싼 의심을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물질과 제품에 의한 피해가 불확실해지면서 대중은 제품을 계속 사용하고, 규제기관은 규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 「6장 ‘사회를 바꾸려면’」 중에서
우리가 고민할 지점은 진실 너머에 또 있다. 어느 한편이 승리해 단 하나의 진실이 확정된다면 이 모든 혼란이 줄어들 것인가의 질문이다. 사람들이 진실을 확인하면 오염수 방류 사진을 더는 걱정 없이 대하고, 수산물을 마음껏 소비하고, 소금을 사재기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거는 기대와 달리 과학적 사실과 진리는 한 사회에 단번에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태양이 아닌 지구가 천구(天球)를 돈다고 말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도 처음부터 진리로 수용되지 않았다. 지동설은 완벽한 설명과 현상 예측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타협과 조정을 거쳐 진실로 자리 잡았다. 과학적 사실은 신뢰를 얻기 위해 합의하고 소통하는 과정과 그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어야만 비로소 과학과 진실이 된다. 아무리 자명한 근거가 있더라도 과학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없다.
--- 「7장 ‘누구나 손 드는 과학’」 중에서
🖋 출판사 서평
가습기살균제 참사 12년,
정치-과학의 장에서
느리게 변화해 온
한국 사회를 말하다
1994년 출시된 가습기살균제는 가정의 청결과 건강을 관리하는 제품으로 1000만 개 가까이 판매되었다. 2011년 원인불명의 폐 질환 사례가 수집되면서 이 획기적인 제품은 전대미문의 환경재난을 부른 주범으로 지목된다. 2023년 10월 말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7877명 중 확인된 사망자 1835명. 도대체 어떻게 이토록 위험한 제품이 팔릴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다치고 병들고 죽고 나서야 만들어지는 지식이 있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호는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도, 사망자가 발생한 후로도 계속해 울렸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골든 타임은 거듭 유예되었다. 역학과 독성학 전문가의 의견이 갈렸으며, ‘가장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절차는 계속해서 지연되었다. 청부과학 논란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과학의 장면이다. 기업은 거액의 연구비로 연구 결과를 조작하려 나섰고, 이 연구를 맡은 전문가는 자본과 결탁한 청부과학자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이 답답하고 익숙한 경과가 사건의 전부는 아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과정에는 피해자의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듣고, 책임 있게 사건 해결에 나선 ‘다수의 참여하는 전문가’가 존재했다. 전대미문의 참사에 대응해 온 가장 강력한 연대체는 피해자와 시민단체, 전문가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완벽하지 않고 오래 걸렸지만,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오늘의 과학은 절대적인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재난을 둘러싼 책임 논란과 극한의 대립은 때때로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정치와 자본으로 환원되지 않는 과학의 고유한 특성들을 환경사회학과 과학기술학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한국 사회가 느리고 단단하게 성숙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논쟁에서도 보듯, 앞으로도 반복될 재난에 맞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갈 과학이다.
평범한 마음으로
서로의 안녕을 비는
새로운 세대의 윤리
“왜 이 주제로 학위논문을 쓰나요?” “어쩌다 이런 주제를 선택했어요?” 박진영은 학위논문을 쓰는 몇 년간 환경재난을 연구할 자격을 스스로 되물었다. 환경문제를 강의하면서 오늘도 화나고 답답한 사연을 전했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오랜 불안에 대한 답은 현장에 있었다. 나 말고도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믿음이 결국 우리를 변화시킨다. 저자가 현장의 사람들을 통해 되찾은 자신감은 오늘날 과학기술의 의미를 찾는 모두에게 필요한 감각이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을 위해 무엇이 더 연구되어야 할지, 어떤 증상을 더 조사해야 할지는 피해자, 전문가, 시민, 정부, 국회 모두가 요구해야 한다. 특별한 사명감이나 자격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내 주변이, 우리 동네가 언제나 위험할 수 있다는 감각이 우리 사회의 과학과 전문성을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손을 들고 과학에 대해 말할 때 세상은 바뀐다. 이 책을 쓰면서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겪은 저자는 이렇게 독자에게 제안한다.
“환경재난과 피해를 더 떠들썩하게 말하자. 그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자. 그런 마음으로 나는 환경재난을 보고 듣고 읽고 쓴다.”(「들어가며」 중에서)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세대의 시각
공부와 삶을 잇는
인문 시리즈 ‘탐구’
‘탐구’는 오늘날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성과를 한눈에 보는 시리즈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젊은 저자들이 자기 삶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솔직하게 꺼내 놓고,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제안을 독자에게 건넨다. 낯선 학문이 이곳에서 다시 해석되고, 각자의 현실이 새로운 길로 연결된다. 기존 인문학의 한계로 지적된 서양 학문 의존에서 벗어나 동료 학자와 또래 저자를 참조하고, 어려운 이론은 가까운 사례를 통해 풀어서 설명한다. 학술서와 대중서로 양분된 독서 시장에 다리를 놓는 시도다. 2022년 『철학책 독서 모임』으로 시작해 2만 5000부 판매를 기록하며 독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탐구 시리즈는 7번 『이미지란 무엇인가』, 8번 『재난에 맞서는 과학』으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