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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싫다.
이틀 동안 일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를 않고 죽은 듯이 누워있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무녀가 앓는 무병같이 오월이 되면 찾아오는 병인가 보다. 오월의 찬란한 태양은 나에게서 두 사람을 앗아갔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1995년에는 마흔세 살의 한창나이인 등려군을 앗아갔다. 그리고 5년 전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 봉하마을로 낙향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를 앗아갔다. 1995년 당시에는 등려군, 그녀를 잘 몰랐다. 그러다가 영화 <첨밀밀>에서 그녀를 알게 되어 얼마나 행복했던가. 중화권을 비롯해 일본에서까지 그녀의 명성은 대단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녀의 사후에서야 그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고인이 되어 그녀를 기념하는 영화가 만들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이후 나는 집에서나 택시에서나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비록 5월의 푸른 하늘로 떠났을지언정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언제나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다정한 누님이었고 연인이었다.
노무현,
살면서 이렇게 한 남자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 1988년 초겨울, 나는 청량리를 지나는 버스의 라디오에서 투박하지만 정의감 넘치는 경상도 사나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노동자를 착취하고 권력자와 결탁한 재벌 총수를 혼내고 심지어는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옥죈 전직 대통령과 그 하수인을 질타하는 모습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든 국민이 그러했을 것이다. 거침없이 할 말을 쏟아내는 그의 포효는 그동안 숨죽여 살아야 했던 국민들의 울부짖음이었으며, 속속들이 꿰고 파고드는 그의 예리한 질문은 힘없고 돈 없어 당하고만 살아야 했던 우리 서민들의 체증을 쑥 내려가게 할 만큼 위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이야! 정말 멋진 사람이네.' 이것이 그날 내가 그에게서 느낀 진솔한 감정이었다. 청문회장에서도 재벌 총수와 권력자의 비위를 살피는 여느 정치인과 달리 그는 불의가 정의를 짓밟고 반칙과 편법이 원칙과 정도를 이기는 것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 김영삼이 자기세력을 이끌고 민자당에 몸을 던지는 야합의 정치를 할 때도 그는 분연히 일어나 "이의 있습니다!"며 강하게 외치며 분노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편하고 쉬운 길을 내팽개치고 남들이 가지 않는 험하고 힘든 길을 스스로 선택했기에 그의 앞길은 평탄하지가 않았다. 한때 잘 나가던 정치인에서 총선에 떨어져 원외가 되다 보니 언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나 또한 그에게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멀어져 갔다. 아니 20대의 젊은이가 불안한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흔들리다 보니 다른 데 눈 돌릴 틈이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그 사이에 당선이 확실시되는 서울 종로의 지역구를 버리고 수차례 부산에 출마하며 지역 구도를 깨는데 매진하는 동안에도 그는 나에게서 예전과 같은 강렬함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그를 보고 뭔가 가슴에서 울컥거리기 시작했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그의 용기와 이상을 그제야 제대로 인식한 나의 무지를 탓하며 죄스러운 마음에 그의 승리에 마음을 졸였다. 장인이 빨갱이라는 공격에 대해서 "그럼 장인이 빨갱이라고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라는 말로 단호하게 응수하는 그의 돌직구와 순애보에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의 심금을 울리며 결국 그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까지 만들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5년 동안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서 외면받는 외로운 대통령이었다. 그때도 나는 그에게 힘이 되어주지를 못 했다. 단지 그가 너무 안쓰러웠을 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렇게 임기가 끝나고 고향으로 그는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수구세력들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흔들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이 떠안고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그에게 한 번이라도 힘이 되어주지 못한 나 자신의 무성의와 무지에 대해 질책을 하며 눈물로 그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어 5월의 찬란한 태양이 두고두고 미웠다.
<심고싶다> 편에서 문화평론가 김갑수는 "나는 그의 노제가 열리는 시청 광장에서 평생 울 걸 다 울어 버렸다. 호곡을 했더니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했고 소매로 눈가를 자꾸 닦았더니 피가 묻어 나왔다."라고 얘기했다.(p.145) 비단 그만 그러했겠는가. 그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의 죽음을 황망히 애도했는데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정말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때의 비통함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나는 운행하면서 그를 생각하노라면 먹먹함에 눈가에 이슬이 맺혀 손님이 볼세라 손등으로 훔치기까지 한다.
어느 토론회에서 당시 유시민 의원이 한 말이 기억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정신이 낳은 미숙아다." 그렇다. 노무현은 우리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 가치를 체현하고 있는 정치인인데, 그런 시대가 오기 전에 먼저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실수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반영하기에, 노무현은 우리 국민이 갖기에 지나치게 수준이 높은 대통령이었고, 그로 인해 시대와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하기에 '미숙아'보다는 '시대를 앞선 사람'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착한 개와 나쁜 개가 싸우면 어떤 개가 이길까요?"
"나쁜 개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한 개가 이깁니다. 이기고 싶으면 강해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달리 질문해 보겠습니다. 한 인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이란 것은 나 하나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입장과 처지가 다르고 경험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곳이다. 그래서 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욕심이라고. 하지만 '내가 바뀌면' 이미 세상은 바뀌어 있다고. 그것은 마치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다가 그저 선글라스만 벗어도 세상의 빛깔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고. 그리고 선글라스를 벗고 보는 그 달라진 세상에서 내 행동이 바뀌면 내가 정말 바뀌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내 주변의 상황도 바뀔 것이며, 그렇게 주변이 바뀌기 시작하면 결국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p.29,30)
김영만 "당신의 꿈 우리가 지키렵니다" <@출처-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그렇다. 세상을 바꾸려는 허황된 욕심이 이룰 수 있는 꿈이 되려면 결국 '자기로부터의 혁명'이 있어야 한다. 조세 전문 변호사로서 세속의 부를 쫓아가던 노무현에게, 영화 <변호인>에서도 나왔듯이 국밥집 아들 진우로 대변되는 부림사건의 피의자들이 국가라는 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정의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각성과 통찰이 그로 하여금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용기있는 인권변호사가 되게 했으며 조금이라도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려는 이상가를 꿈꾸도록 했다. 비록 그의 꿈은 미완에 그쳤지만, 그가 못 다 이룬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염원은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함께 만들어 갈 과제이며 이상이다.
그가 떠난 2009년 5월 23일을 전후로 해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 원칙과 상식을 부르짖던 그가 야만과 몰상식의 권력으로부터 등 떠밀려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걸 알기 위해서 나는 슬픔과 분노를 뒤로하고 무지를 일깨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가 민주주의를 향한 새로운 열망을 가지기 시작한 그 즈음의 나이에, 나 또한 그 연배가 되어서야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 했던 열정을 가지고 깨어있는 시민이 되고자 했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 쓰고 있던 선글라스(색안경)를 벗어내던질 수 있었으며 그제야 세상의 빛깔이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사물의 실체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권력자가 던져준 허상을 진실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저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재벌의 아들이 말한 '미개인'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의 죽음이 무지렁이 택시기사인 나를 진정으로 눈 뜨게 한 것이다.
내 삶의 한줄기라도, 한 자락의 작은 신념이라도, 내가 좇는 한 줌의 가치라도 다시 진짜이고 싶다는, 진짜여야 한다는 절실함이 꿈틀대는 것. 그런 확신을 가지도록 꿈꾸게 한 이가 나의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비록 슬픔과 분노로 인한 옹이는 깊이 새겨져 있지만 이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만큼 깨어난 시민으로 거듭났기에 지난 5월에 대한 미운 감정을 조금씩 떨쳐내 보려고 한다. 그것은 또한 그가 바라 마지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마지막으로 5월의 푸른 창공으로 떠났지만, 비상식이 상식의 자리를 꿰차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야만과 불의에 함께 분노할 줄 아는 눈을 가지도록 일깨운 그에게, 뒤늦게나마 못난 사내가 진심으로 회한과 그리움이 묻은 고백을 해본다.
"당신과 한 시대를 산 것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나의 노무현!"
첫댓글 당신과 한 시대를 산 것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나의 노무현!
정말로 다시 한번만이라도 뵈었으면,,,,,
전 아직도 노무현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존경하는사람은
이순신장군과 노무현대통령 두분입니다.
당신 냄새라도 훈풍에실려보내주오, 노짱 잊혀지지 않아요,
이 카페도 좋은 글이 마구 공감되는 글이 있긴 합니다
카페지기님부터 글 올리는 몇분들
말두 안되는 도저히 비상식적인 내용의 고집 센 글들만 보다가
모처럼 좋은 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