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내곁에 있음에 /
박희봉
낯선 목소리의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구인지 몰랐는데, 기와집 큰손녀 진희라했다.
내 고향은 집성촌이다.
어린시절 진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름방학이면 부산에서 간이역에 내려 고개를 넘어 할아버지 댁에 왔다. 조금 멀리서 본 진희는 큰 키에 파란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언제나 웃으면서 마을 어른들께 공손했다.
할아버지 댁은 마을에 제일 큰 기와집이었다. 사랑채와 행랑채 사이 대문을 나오면, 큰 대추나무와 텃밭에는 고목이 된 감나무와 밤나무가 있었다.
설날에는 친구들과 제일 먼저 세배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한학자시고 아버지는 선생님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명심보감을 배웠다.
진희와 자란 환경이야 다르겠지만, 도시에서 자란 아내와 닮은 점이 있었다. 큰 키와 온화한 성품이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동갑이고, 맏이다. 진희의 전화를 받고 어릴 때 본 진희가,
옆에 있는 듯 했다.
무심히 지내온 40여 년 세월동안,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산 것이다. 아바의 노래을 좋아 했고, 백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슬퍼진다던 말이 오랜 세월 기억된다.
진희의 전화는 나의 모자람을 깨닫게 했다. 먼저 오르던 산길도 한걸음 뒤에 쳐저 걸어가리라.
첫댓글
좋은글 시섬동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