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령산
김홍희
뒤를 돌아보면 천문대, 나아가면 봉수대. 서둘러 다시 올라온 황령산은 서쪽으로 재촉하는 해를 잡지 못하고 어두워졌다. 천문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봉수대로 나아갈 수도 없는 시간.
산꼭대기에서 삼각대를 폈다. 갈라진 바위틈에 삼각대를 단단히 고정하는 것은 경험과 요행이 모두 필요하다. 삼각대를 걸 수 없는 바위틈에서는 아무리 오랜 경험도 무색해지고 요행이 좋아 단단한 바위를 만날지라도 경험이 부족하면 원하는 모양대로 삼각대가 펴지지 않는다.
해는 졌지만 다행히 바위틈에 삼각대를 걸었다. 그러나 나는 사진을 찍지 못하고 산정의 세찬 바람을 피해 초라하게 바위틈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전체를 하나로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 할수록 산정의 바람은 차가워지고 마음은 더욱 궁색해졌다. 그러고 보면 이미 낮에둘러본 봉수대 위에서도 나는 한탄했다.
“사물의 골수를 찍어 그 전체를 드러내는 것이 사진이건만, 어이해 보면 볼수록 보이지 않는 것이 내 고향 땅인가?”
봉수대에서 본 고향 땅의 동서남북은 그 방향마다 각기 다른 모습이었다. 동쪽이 골수냐 하면 서쪽이 드러나고, 남쪽을 보자 하면 북쪽이 탓을 한다. 강을 찍자 하면 바다가 보이고, 바다를 찍자 하면 산이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
미천한 재주를 한탄하며 바위틈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어느새 도시는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이 만든 불이 일시에 바다를 드러내고, 어두운 산들을 드러내고, 새로운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모두 집으로 집으로 이어졌다. 바위틈을 빠져나온 나는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챙기며 홀로 말했다.
“그래, 동쪽이면 어떻고 서쪽이면 어떠냐? 사람이 살지 않으면 별인들 무슨 소용이고 봉수댄들 무슨 소용이냐? 카메라는 온 우주를 다 담아도 그 무게 하나를 더하지 않는 법.”
나는 천문대로도 가지 않고 봉수대로도 가지 않고 그저 휑하니 황령산을 내려와버렸다.
----김홍희 시집 {부산}(근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