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상당히 맑다. 저 끝없는 푸른 하늘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나는 맑은 하늘을 무척 좋아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시원해지기 때문에....여기에다 구름까지 살짝 곁들어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이렇게 감출 것 없이 자유롭게 공기를 호흡하면서 부드러운 땅을 밟고 끝없이 펼쳐진 푸른 실크를 마음 껏 감상하면서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허락하여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궁금해졌다. 부끄러움없이 살아왔던가.......
그와 동시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신 고3 담임 선생님 모습이 물결처럼 스쳐지나간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자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다. 안 좋은 면이 있었다면 주변에 나 보다 뛰어난 아이들이 있다면 꼭 그들과 비교하곤 했다. 그들에 대한 질투심과 함께...
그렇게 하면서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곤 하였다.
'나는 왜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그러나 한 편으로는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을 사랑해야한다며 이러한 생각을 스스로 부정하곤 하였다. 자신을 무능하다고 생각하며 벼랑끝까지 몰아세우게하는 생각과 세상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너무나도 소중하다면서 스스로를 비호하는 생각이 공존하면서 나의 마음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아울러 '옳다, 그르다'로 모든 상황을 판단하였다. 예를 들어 미국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대다수 40대이상이신 기성세대들...)을 보수주의자, 현재의 미국의 모습을 제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며 '그릇된 사고방식을 가진 소유자'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모습들은 고3때 절정을 달하였다.
나의 생각대로 내 자신의 모습과 나의 주변의 상황과 세상이 움직여주지 않다보니 자신을 무능한 사람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다면 무슨 이유인지를 생각하는데 도저히 스스로가 감당할 수 가 없자 기어이 야자를 튀었다.
내가 야자를 튄 그 날이 2004년 11월 10일 수요일이었는데 (이 날을 특별히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1주일 뒤가 수능이었기 때문이었다.)이 날 야자 감독선생님이 바로 담임이셨다. 담임은 내가 이러한 증상 즉 생각이 끝도 없이 전개되는 모습을 보이면 이렇게 돌발적인 상황을 연출함을 잘 알고 계셨고 무엇이든 '옳다, 그르다'로 따지고 드는 성격과 자신을 사랑하지 못 하고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다. 야자를 튀었다고는 하지만 갈 곳도 없었고(더군데나 그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생각의 쇠사슬이 나를 움직이지 못 하도록 단단하게 묶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학교 중앙현관 안과 밖을 서성거렸다. 밖은 스펀지와 기타 여러 건물들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불빛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담임은 나에게 오셨다.
나는 담임께 이야기를 하였다.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다고.... 모든 것이 후회투성이라고... 이렇게 후회할 것을 예전의 나는 몰랐던 이유는 무엇이고, 어떠한 상황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담임은 말씀하셨다.
「세상의 일 중에서 옭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수학'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학은 인류에게 정해진 공통된 약속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다. 세상의 일은 완벽하게 이분법으로 구분되어있지 않다. 항상 변화하니까...변화를 통하여 사람의 사고가 바뀌니까. 그리고 사람은 각자에게 부여된 특출한 능력이 있다. 너에게도 있고 나(담임)에게도 엄연히 존재한다. 모든 것을 하나의 입장에서만 볼려고 하지 마라.」
이 외에 여러 가지 조언을 많이 해 주셨는데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이 날외에도 담임은 많은 조언을 통하여 나를 많이 깨우쳐 주셨다.
지금의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아님을 확고하게 부정할 수 없을지라도 조금이나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 '나'는 세상에 유일한 '나'라는 것. '양소라'라는 이름으로 잠깐동안 지구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빌려쓰다가 갈 한 사람.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않은 재능을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인간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다른 재능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고 앞으로 발전하는 문명의 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잘 난 사람이건 못 난 사람이건 하나같이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이고, 잘나고 못 나고 판단의 차이는 사람이 만들어낸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사람의 판단이란 시간이 흘러가서 시대가 바뀌면 언제든지 바뀌는 것이니까....
무엇보다도 변화를 느끼는 것은 모든 상황을 옳고 그름으로 따지려하지 않는 자세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다보면 자신도 피곤하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자연스럽게 무시하게 된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자세야말로 사람이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세가 아닌가? 한동안 이분법에 빠져 살았을 때 나는 이러한 사실들을 인식하지 못 하였다. 지금에서나마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언제인가는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입고 하루하루를 바둥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수학의 사인, 코사인 그래프를 보는 듯 하다. 즐거움과 슬픔이 반복의 물결을 그리며 우리의 마음을 스쳐지나가는 것... 그 것이 삶이 아닐까?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삶'이라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새로운 경험을 통하여 배워나감의 즐거움을 느껴보라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존재의 증거는 내가 이 지구에서 발을 딛고 살고있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고 나를 알아보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바로 그 것이다.
때때로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산다는 것의 반대....그러나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것. 사람들은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라는 말을 내뱉고는 한다. 이러한 생각의 원천은 아마도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간이니만큼 어느 한 쪽에만 매달려 살 필요는 없다는 내용이 아닐까? 그러나 죽어도 살아도 그만이라면서 판단를 내리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인간을 둘러싸고있는 모든 환경은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한데 하물며 삶과 죽음이겠는가? 삶과 죽음은 자연으로부터 태어난 모든 생명체가 거쳐야하는 하나의 순리이다. 이러한 순리를 두고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니'라는 생각은 순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명확한 답은 오로지 수학에만 있으며 세상은 변화하기에 일방적이지 않음을 가르쳐주시고,세상이 비록 나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지만 그 속에서 산다는 것이 불행한 것만은 아님을 가르쳐주셨던 고3 담임 선생님........보고 싶습니다.
첫댓글 일찍 제출하셨네요..후아;;;난 언제 적나..크으...
일어로 소라 는 하늘을 뜻하지요. 그래서 하늘을 좋아하시는건 아니신지` ^ㅡ^a [개그 로 받아주셔요~]
high 개그임..ㅋㅋ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시고 자신의 생각을 잘 나타내셨네요...잘 읽었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4)
(4)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잘 정리하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4) 내용도 충실히 분량도 많이 쓰셨네요... 경험에서 드러난 느낌을 바탕으로 잘 전개하신 것 같아용~~^^ 수고하셨습니당...^^*
(4)주제의 대한 접근이 상당히 좋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3] 그런데도 수학은 가치 중립적이라는 게 참 놀라운 일이죠? 참으로 좋은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언제 한 번 선생님 찾아 뵐 수 있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