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이야기 / 조경란
새 학기는 연필을 깎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이었을 텐데도 아버지는 연필이나 공책 같은 학용품만큼은 넉넉하게 사다 주곤 했다. 1970년대 후반이니까 아마도 낙타표 문화연필이나 동아연필이었을 텐데, 나한테 생의 첫 번째 연필은 사막에서 건설 일을 하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귀에 꽂고 있던 심이 사각형인 빨간 연필처럼 느껴진다. 커서야 그것이 목수들이 작업할 때 쓰는 연필이라는 것을 알았고 지금도 그것을 각종 연필들로 빽빽한 통에 간직하고 있다.
나는 커터 칼로 연필을 아주 잘 깎는 맏딸과 언니로 성장해 갔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방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그 후 5년 동안. 친구들과 동생들은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면서 모두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들로 변해 먼 데로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방문 밖의 모든 것과 담을 쌓아가면서 먹고 마시고 책을 읽는 데만 몰두해 있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책상에 연필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본 연필들 중 가장 뾰족하고 검고 긴 심을 갖고 있는 연필 같았다. 그때의 내 무기력과 소외감을 푹 찔러 터뜨리고도 남을 만큼. 그날 밤에 그 연필을 손에 쥐고 처음으로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문구의 모험’이란 책을 보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잘 알려진 로알드 달은 하루에 연필 여섯 자루를 썼으며 존 스타인벡은 여섯 시간씩은 손에 연필을 쥐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읽은 연필에 관한 가장 멋진 이야기는 역시 폴 오스터에 관한 것이다. 그가 여덟 살 때 좋아하는 야구 선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 경기가 끝난 후 그를 만났지만 사인을 받지 못했다. 누구의 주머니 속에도 연필 한 자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폴 오스터는 어딜 가든 연필을 꼭 챙겨 갖고 다녔다. 훗날 대작가가 된 그는 “연필을 주머니에 넣고 있으면 쓰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자신은 그 덕분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쓰는 연필에는 이런 두 가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매일매일의 노력’, ‘한 걸음 한 걸음 전진’. 연필을 갖고 한 일 중에 돌아보니 후회스러운 일도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마음에 안 드는 남학생이 짝이 되면 나는 가차 없이 연필로 책상 한가운데 금을 쭉 긋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선 넘어오지 마.”
오랫동안 연필을 쥐고 있다가 나는 결국 쓰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이곳과 저곳 사이, 보이지 않는 많은 선들을 지워가는 그런 글을 언젠간 쓸 수도 있게 되겠지라고 느긋하게 생각한다. 꿈을 연필로 써나가는 일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첫댓글 좋은 글귀가 생각나면 카톡에 기록하곤 했었지요
나는 지역적 특성상 노란 미제연필과 역시 미제 4h 2h
연필을 않이썼던 추억이 ♡
저는 핸드폰 메모장을 아주아주 애용합니당
ㅡ
미제 연필로 공부하셨네요.ㅎㅎ
저는 낙타표 문화연필, 동아연필입니다.
그런데 나무 대신 종이로 만든 연필도 있었던 것 같아요.
@파랑새(장수경) 색연필이 그랬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