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이란의 핵 저지에 정신을 빼앗긴 미국이 중동에서 복병을 만났다. 이란의 핵 개발이 기정사실화되자 중동 국가들이 일제히 핵 야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중동이 핵 경쟁을 시작하면 지금까지의 핵비확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5월 3일 유엔에서 1개월 예정으로 열린 핵확산방지조약(NPT) 8차 평가회의에서 미국과 이란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미국 측에서 돌연 중동의 핵 경쟁을 시급한 현안으로 내세운 건 이란의 핵 보유를 현실적으로 저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문제는 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만들고 이것으로 핵폭탄을 제조해도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과 이란이 바로 이 허점을 악용하여 유엔을 기만하고 핵 개발을 계속해 NPT를 위반했으나 처벌은 받지 않았다. NPT에는 1백 89개국이 서명했다. 북한은 NPT에 서명했다가 탈퇴한 후 두 차례 핵실험까지 했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핵 보유국이면서 NPT에 서명하지 않고 있다. 그밖에 인도와 파키스탄도 핵을 보유하고 있지만 NPT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그만큼 NPT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얘기다.
중동의 핵 야망을 자극한 것은 무엇보다 이란 핵이다. 당장 NPT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 오바마의 핵무기 담당 보좌관 개리 스모어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NPT를 개정하는 건 미국 헌법을 고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의 무기통제 및 국제안보 담당 국무부장관 엘런 토셔도 이란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중동 전역이 핵 개발로 뛰어드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그만큼 NPT를 둘러싼 이해가 상충하고 있고 그래서 이란 핵 저지는 어려워졌다. 중동 산유국들이 이란을 의식해 일제히 핵 개발에 나선다면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가 실행되는 셈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4백 30개의 원자로가 있으나 중동에는 하나도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원자로를 보유할 경우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주로 작용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의 원자로를 폭격했으며 2007년에는 북한의 지원으로 시리아에 건설 중인 핵 시설을 파괴했다.
이란은 현재 나탄즈(Natanz)에 두 개의 원자로를 가동 중이고 쿰(Qum) 시에서는 3번째 원자로를 건설 중이다. 향후 20개를 더 건설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를 본 중동국가들이 핵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사실상 레바논을 제외한 모든 중동 국가들이 원자로 건설에 착수했거나 건설의사를 밝혔다.
거의 모든 중동국가가 원자로 건설을 시작한다면 안전문제와 함께 사용후 연료의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생산 문제를 야기한다. 현재 UAE만 부시 행정부와 비확산기준에 합의했을 뿐 여타 국가는 방치상태에 있다.
중동국가들의 핵 개발 경쟁은 마침 뉴욕시에서 폭발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테러용 자동차 폭탄과 함께 제2의 9.11 악몽을 연상시키는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간, 스리랑카 등에서 차량폭탄이 터졌을 때 이를 먼 나라 일로 보던 뉴욕시민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만약 자살 테러용 차량에 핵폭탄이 장착된다면 인류 최악의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동의 핵 개발 움직임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핵 대결 가능성과 21 세기 최악의 흉조로 다가온다. 이란이 기어코 핵을 개발하고 이스라엘이 이를 공격하거나 아니면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가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란과 이스라엘의 핵 대결 시나리오를 오바마가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나라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에 비해 다소 느긋한 태도를 보이던 오바마가 중동으로의 핵 확산 위험을 보고 부쩍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가급적 많은 국가들과 함께 이란을 제재하는 묘수를 찾으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란의 태도가 강경해지는 게 문제이다. 유엔안보리에서 비토권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 최근 이란 제재에 동참할 의향을 보이고 있으나 제재내용은 너무 강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중국식으로 제재를 한다면 결국 하나마나한 제재가 될 게 뻔하다. 러시아의 입장도 대동소이하다. 이 틈을 타 이란은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략 1-3년 안에 폭탄을 보유할 전망이다. 미국은 2007년 말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하고 우물쭈물 시간을 낭비했다. 다행히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의 속내를 간파하고 고삐를 죄고 있으나 이란의 핵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괴멸될 경우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란은 알고 있다. 오바마의 제재가 실현될 가능성도 없거니와 설사 된다 하더라도 별 게 아니라고 본다. 속이 타는 쪽은 이스라엘이다. 이란의 핵 보유가 확실해지는 순간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오바마는 이스라엘을 적극 만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