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꾼들과 민주화쟁이들이 이 세상을 설치고 있다. 그들의 눈에 독재는 무조건 나쁜것이고 민주,인권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그렇다면 독재정치를 거치지 않고 순수하게 민주화를 이룬 나라가 있던가? 역사를 통해 볼때 그런 적은 결단코 없었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어주는 거울이라 한다. 19세기 근대화의 흐름을 잃지 못하고 세계조류에 탈락하고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선왕조! 정조대왕이 서거한지 불과 100년만의 일이었다.
정조24년 서기1800년 세계는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산업화로 이룩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서구열강은 무역으로 부를 키우며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었다. 조선 역시 정조대왕의 강력한 통치아래 그 흐름에 막 부응하려던 참이었다.
조선도 스스로 근대화로의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상업혁명이 일어나 독점상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화폐가 유통되었으며 신분제가 조금씩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바로 이해에 정조대왕은 유신을 단행하여 오랫동안 근대화를 반대하고 왕권에 도전하던 노론을 숙청하고 자신이 꿈꾸었던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려 하였다. 이런 과업을 수행하려면 박정희,전두환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고 그 리더십을 뒷받침 하려면 강력한 왕권이 필요했다.
정조대왕은 유신을 단행하여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악법인 노비제도를 폐지하려 했다. 노비제도가 왜 폐지되야만 했는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공장을 돌릴수 있고 무기를 만들 수있고 군대를 육성할수 있다. 조선백성의 30%를 차지했던 노비가 하는일도 없이 국가총생산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노비신분으로는 근대화를 추진할 수 없었다. 노비의 신분에는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를 부과할수 없다. 왜냐면 그들은 왕의 백성이 아니라 양반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정조대왕은 청나라와 일본의 동향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세계정세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었다. 즉위하자마자 정조는 실학자들을 정계에 등용하고 장용영을 설치하여 국방력 강화에 힘썼다.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상공업의 진흥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신분제를 서서히 없애기 위해 서얼출신들에게도 벼슬길이 열리게 하였다. 각종 문화 진흥사업을 펼쳐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화 근대화를 반대하는 작자들이 있었다. 농업만이 살길이며 신분제철폐를 결사반대한 무리들, 바로 공자,맹자 추종하는 성리학쟁이,주자쟁이놈들이었다. 정조대왕의 통치는 언론을 무시하고 조정을 주상혼자만의 조정으로 만들고 있다며 예법을 어기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심지어는 의례적으로 있는 군사훈련조차도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군자는 칼과 창으로 맞설것이 아니라 예와 의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무식한 주장을 성전처럼 떠받드는 한심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사사건건 정조대왕의 개혁을 반대하며 맞섰다.
이에 정조는 홍재유신을 단행하려 하였다. 흔히 유신하면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고 일본의 명치유신을 본뜬것이라 한다. 그러나 유신이란말은 일본말이 아니다. 유신이란 유교의 경전인 시경에서 나온말이다. 한문을 직역해 풀이하면 "구태의연하고 나태한 악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고 발전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꿈꾸었던 강력한제국을 만들자면 강력한 왕권이 필요했는데 그 구심점은 바로 자신 '군주'였다
성리학적 질서내에서는 군주도 성리학적 질서에 편입되어 신료의 의견에 귀를 귀울이는 것이 어진정치였다. 그러나 그 신료들이라는 것은 주자,공자,맹자쟁이들었다. 근대화를 반대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것이다.
정조대왕은 이러한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필요성을 느꼈다. 유신체제하에 군주는 성리학적 질서를 초월한 군주였다. 훗날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시행할 당시 천황을 헌법위의 신성한 존재로 만들었다. 근대화를 이루려면 강력한 통치가 필요하고 그것을 추진하는 천황에게 힘을 주기위한 것이다. 정조대왕은 그러한 패러다임을 일본보다 60년 먼저 실행하려 하였던것이다.
정조대왕이 즉위한지 17년째가 되자 왕권은 서서히 신권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정조대왕이 즉위초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개혁정치가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국력은 가히 건가성세였다. 아시아 최고의 문자해독률, 아시아 제일의 서적출판량, 동양 최고의 민원서비스, 청나라와 일본과 더불어 동양의 3대무역대국이었다. 문화는 극치를 이루어 조선제일의 문예부흥이 이루어진 황금시대였다.
이렇게 다져진 국력을 바탕으로 조선은 서서히 근대화에 진입하고 있었다. 정조대왕의 꿈이 드디어 이루지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정조24년 서기 1800년 정조대왕은 갑자기 승하하고 만다. 이유는 몸에난 종기가 도져 죽었다는 것이다. 훗날 학자들은 정조의 죽음이 노론세력들이 독살했다는 추측을 한다. 정조대왕의 친위쿠데타가 일어나기 전날 갑자기 승하하니 그들이 그 타이밍을 절묘하게 맞추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도 수수께기가 너무나 많다)
정조대왕이 죽은후 조선왕조는 급격히 쇠약해진다. 정조가 죽자 주자,맹자,공자 쟁이들은 정조대왕을 개혁을 전부 취소하고 다시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 산업화가 아닌 농업화로 신분제 강화로, 역사의 흐름을 역행하는 짓을 한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것이 예법에 따르는것이다 의리와 명분이라 믿었다.
정조가 죽은후 순조-헌종-철종-고종-순종이 차례로 즉위한다. 순조는 불과 3살의 나이로 제위에 올라 할머니인 정순왕후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정사한번 펴보지도 못하고 허수아비짓만 하다가 제위에 오른지 34년만에 죽었고 헌종은 방탕한 생활만 하다고 제위에 10년도채 있지못하고 몸이 허약해져 병사하고 철종은 안동김씨의 세도에 가려 이름만의 왕이었다. 고종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일본에 빼았겼으며 순종은 일본천황에게 이름뿐인 조선왕이라는 책봉만 받고 일본의 들러리 노릇만하다가 죽었다.
정조대왕 서거이후 이상하게도 제대로 왕다운왕이 하나도 없는것이다. 강력한 지도자가 사라지면 나라는 망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건국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이 세분의 대통령의 영도아래 세계100위권국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로 세계30위권 국가에 진입했고 전두환 대통령의 영도아래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세계 10위권 국가로 도약하였다.
87년 6.29선언 그리고 1993년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생기고 난뒤 한국은 UN국가순위 25위권으로 추락하였다.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30위권으로 추락하였다. 사기꾼 김대중정부는 한국의 국가순위를 40위권으로 추락시켰으며 노무현 정부부터는 아예 50위권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쳐해 동남아시아의추격을 걱정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국민들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첫댓글 이렇듯 식견이있는 윗분같은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앞으로 뒤짚어 엎을 가능성이 크며, 전대통령의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시기는 점점 빨라 질것입니다..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