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0일(금)
* 시작 기도
(시 71:15-16)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
주님...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이 무엇인지 잘 아는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측량할 수 없으나 그가 할 수 있는 것 곧 공의와 구원을 종일 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주의 공의는 사실 진멸이요 심판입니다.
그리고 이 심판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지요.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으시고 또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 나도 아버지의 공의로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죽고 그의 무덤 안에서 함께 살아날 것을 믿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순간순간 나를 드러내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러한 것에 착념치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만물 안에 있는 존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은 쓰레기에 불과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하여 내 안에 계신 예수만이 진짜요 보배이오니 이 질그릇은 깨뜨려 주옵소서.
나를 나 되게 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느 10:1-31
제목 :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1 그 인봉한 자는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2 스라야 아사랴 예레미야
3 바스훌 아마랴 말기야
4 핫두스 스바냐 말룩
5 하림 므레못 오바댜
6 다니엘 긴느돈 바룩
7 므술람 아비야 미야민
8 마아시야 빌개 스마야이니 이는 제사장들이요
9 또 레위 사람 곧 아사냐의 아들 예수아 헤나닷의 자손 중 빈누이 갓미엘과
10 그의 형제 스바냐 호디야 그리다 블라야 하난
11 미가 르홉 하사뱌
12 삭굴 세레뱌 스바냐
13 호디야 바니 브나누요
14 또 백성의 우두머리들 곧 바로스 바핫모압 엘람 삿두 바니
15 분니 아스갓 베배
16 아도니야 비그왜 아딘
17 아델 히스기야 앗술
18 호디야 하숨 베새
19 하립 아나돗 노배
20 막비아스 므술람 헤실
21 므세사벨 사독 얏두아
22 블라댜 하난 아나야
23 호세아 하나냐 핫숩
24 할르헤스 빌라 소벡
25 르훔 하삽나 마아세야
26 아히야 하난 아난
27 말룩 하림 바아나이니라.
28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은
29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30 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31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품이나 온갖 곡물을 가져다가 팔려고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그들에게서 사지 않겠다고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 나의 묵상
느헤미야를 비롯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이 언약을 갱신하고 직접 인봉(서명)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백성들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에서 수종드는 사람들은 맹세를 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기 위하여 외국인과의 관계를 끊은 사람들과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어 깨달을 만한 사람들은 모두 맹세를 하였다.
그들이 맹세한 내용은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따라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원주민들과 서로 통혼하지 않고, 안식일에는 물건을 사고팔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안식년을 지키고 그 안식년의 규례대로 모든 빚을 탕감하겠다는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들어와서 살 때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통혼이었다.
가나안 원주민의 아들이나 딸들을 그들의 사위나 며느리로 삼는 일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엄격한 율법이었다.
(신 7: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섞는 것을 싫어하신다.
(신 22: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신 22:9-11)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레 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스 9:1-3)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섞어 입는 것, 섞어 심는 것, 섞어 가는 것, 섞어 짜는 것, 섞어 교미하는 것, 섞어 뿌리는 것, 섞여 사는 것(통혼) 등.....
사람들은 섞는 것을 좋아하나 하나님께서는 섞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순수한 것을 좋아하신다.
섞인 데서부터 항상 말썽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도 그들을 따라 나온 이방 잡족들이 있었다.
그들을 일컬어 성경은 섞여 사는 무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민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그런데 원망과 불평의 진원지가 바로 이들, 석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었다.
섞여 사는 무리들의 탐욕으로 인하여 시작된 원망과 불평은 금세 전염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퍼졌고 그들은 울면서 말하기를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는데 여기는 그저 만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그 만나 역시 처음에는 꿀 섞은 과자맛 같다고 했는데 이제는 기름 섞은 과자 같다고 하면서 섞어버리고 평가절하 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섞었는지 모른다.
목회에 좋다고 하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온갖 프로그램들을 들여와 목회 현장 이곳저곳에 섞어서 적용하곤 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이 많이 모일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가져와서 접목시키곤 했었다.
왜냐하면 그 때는 나의 목회의 초점이 오직 사람 숫자 늘리는 데만 있었기 때문이다.
목회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직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온갖 프로그램들을 섞어서 잡탕을 만들어 목회 현장에 접목한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비참한 피투성이였다.
여기저기 찢기고 상처나고 철저하게 무너져 버린 모래 위의 집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런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나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끊임없이 헤매곤 하였다.
그러다가 거의 패닉 상태에 이르렀고 목회를 그만 두려고 작정한 것이다.
그러던 나에게 복음이 찾아 왔다.
나는 이 복음을 듣고 생명이 소성케 되었다.
목회는 교인들 숫자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한 후에야 깨달은 것이다.
멋지고 보란듯한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교회를 부흥시키는 주변의 교회들을 보면서 나는 많이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거기에 나는 왜 저렇게 못하는가에 대한 자괴감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인위적인 프로그램을 섞어서 하는 목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주께서도 공생애 기간 동안 오직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면서 아버지의 명령을 준행하셨던 것처럼, 이제부터 나 또한 그렇게 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복음도 이것저것 섞인 것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섞인 복음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순수한 복음만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람의 생각과 인위적인 방법으로 짜깁기 한 복음은 또 하나의 야곱의 우물 만 양산할 뿐이다.
목회자가 자기를 보내신 주님의 뜻도 모르고 자기 멋대로 목회를 한다면 이것은 사도적 사명을 가진 자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도 자기를 보내신 이, 즉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여 영생을 전하셨는데, 하물며 목회자인 우리, 아니 나야말로 두 말해 무엇 하겠는가?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는 복음을 듣고 목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오직 성경이 증거하는 순수한 복음, 통합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것만이 살 길이요 또한 진정한 목회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 숫자에 연연하다 보면 사람의 방법이 섞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면 사람의 방법과 생각이 아니라 진리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된다.
나에게 이런 진리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듣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정말 마른 막대기와 같은 나에게 복음을 주셔서 진정한 목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섞는 것에서 해방시켜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그 어떤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오직 복음만이 해답임을 깨닫게 되는 데는 참 오랜 시간 피 흘리는 전쟁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은혜로 이 복음을 알았기에 더 이상 놓치지 않겠습니다.
사람 숫자에 치중하면 결국 나의 의가 발동할 수밖에 없지만, 복음에 집중하면 오직 주님의 뜻만 나타날 것이오니 이 종을 복음의 도구로만 사용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간섭하심과 은혜를 구하오니 주의 영광 가운데 나를 인도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