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택은 온화하고 밝은 사람이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화목하고 온 가족이 가난에 비해 구김살이 없다.
계획을 세우면 어떻게든 반드시 망가진다는 걸 지긋지긋하게 경험했을 만큼 세파에 찌들었지만,
돈이 없어도 사람이 참 밝고 구김살이 없다.
권위적이지도 않아 자식들과도 친구처럼 잘 지내며,
아내와는 온갖 역경을 같이 해쳐나온 부부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깊은 동지애로 묶여져 있다.
아마도, 박사장네 집과 얽히지 않은 채 살았다면
돈 없이 살았어도 나름 좋은 인생이었노라고 편안히 눈감았을 수도 있었을 그런 인생이었으리라.
기택은 자신들로 인해 남들이 피해를 입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박사장네 밀실의 전말을 마주하게 되고,
술에 취한 채, 아마도 우발적으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자신들보다 더 안 좋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게 되었고,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집에 돌아왔더니,
반지하 집은 밤새도록 쏟아져내린 물(낙수落水)로 인해 완전히 잠겨버려 졸지에 집 없는 신세가 되었다.
자기보다도 못 한 처지의 근세의 그로테스크한 삶을 목도하며,
우발적으로 근세와 문광을 짓밟게 되어버린 충격
박사장이 기택의 냄새에 대해 불쾌하단듯 뒷담화 하고, 그들 부부가 섹스를 하는 와중에도,
박사장 부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마치 바퀴벌레처럼 아들딸과 테이블 밑에 숨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어야 했던 일,
아들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기어서 주인집을 빠져나와야만 했던 굴욕적인 경험.
잠겨버린 반지하 그들의 집.
난민수용소와도 같은 동네 체육관 마룻바닥에서
죄송하다며 모든 걸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면서 눈물 짓는 아들을 옆에서 바라보는 아버지.
충격적인 일들을 몇시간동안 연속적으로 집약적으로 겪은 기택을
다음날 아침부터 쉴사이없이 호출하는 박사장과 연교.
일견 사람 좋아 보이지만,
기택의 냄새를 역겨워하고, 돈을 줬으니 너는 당연히 일을 해야한다라고 안면을 굳히는 박사장 부부가
기택의 위태로운 멘탈을 마치 흰개미가 나무를 갉아먹듯 먹어치우고 있었고,
멘탈이 붕괴된 근세가 지옥에서 올라와 자신의 딸을 찌른 순간 기택 안의 퓨즈도 나가버렸다.
사람이 죽어가는 와중에, 졸도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차키를 던지라 채근하는 박사장을 보는 기택.
딸은 죽어가고 있고, 아내는 괴물이 돼 버린 근세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그런 박사장에게 주머니에 있는 차키를 던져주는 병신같은 내 모습.
근세 밑에 깔린 차키를 주으며 그 냄새에 역겨워하는 박사장을 보며,
자신들을 더럽고 하찮은 존재마냥 대한다는 생각에
박사장을 향한 분노가 일순 겉잡을 수 없이 폭발하게 된 건 아닐까.
그렇다면, 두 번째 살인은 기택이 악인이라서 벌어진 일일까? 아니면,
기택의 고용주인 박사장과 연교가 악인이라서 벌어진 일일까?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분석을.....
잘 읽었습니다.
변기보다 낮은곳에 있다는게 안타까움...물이 계속 밑으로 흐르는 사실...대화주제가 이렇게 많은 영화는 '곡성'이후 첨인듯....
박사장집의 가장 낮은곳에 있는 변기 >>>>>>>>>>> 기택의 집 가장 높은곳에 있는 변기
잘 읽고가요...감사합니다
어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송강호가 이선균 죽인 이유에 공감 못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의외로. 감정의 맥락을 차근차근 잘 설명해주셨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공감이 많이가는 글입니다
늘 잘 읽고 있어요. 특히 무명자님 글 좋아하는 건 공감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요. 개인적으로는 슬픈 게 봉 감독이 그간의 영화에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보거든요. 특히, 설국열차는 시스템, 무명자님이 말하는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렬하죠. 그런데 기생충은 상황을 벗어나지 못 하는 인간들에 대한 조롱의 느낌이 강하네요. 뭐랄까, 순서가 바뀐 느낌.
저는 개인적으로 근세에 대한 무명자님의 분석이 좋았어요. 저는 조롱으로 봤거든요. 그 부부의 모습에서 박근혜 혹은 그 지지자의 모습을 떠올려서 ㅋㅋ
공감합니다. 특히나 범인은 자본주의라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는 우리 인간의 원죄라고 생각해요. 씻을 수 없는...
믿고보는 무명자님글...캬..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