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설을 쇠고 봄방학이 진행 중인 이월 셋째 월요일이다. 다음 주 월요일은 신학기를 준비하는 일들을 앞두어 거제로 건너가 사흘을 머물다 와야 한다. 근무지 현 교장은 정년퇴임하고 후임 교장이 인사 발령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같이 근무했던 일부 동료들도 이동해 가고 그 숫자만큼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질 테다. 나는 올 한 해만 근무하면 더 머물 수 없는 정년을 맞게 된다.
간밤 봄을 재촉하던 비가 내리다 새벽녘 그쳤다. 점심나절 산책을 나서 퇴촌삼거리로 나갔다. 사림동 주택가를 지나 창원국제사격장으로 올랐다. 사격장 잔디운동장을 서너 바퀴 돌다가 우회 등산로를 따라 소목고개로 올랐다. 집 근처에서 자주 가는 산행이나 산책 코스가 소목고개와 용추계곡이다. 코로나 감염이 염려되어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니 나설 만한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사격장 잔디운동장 바깥 트랙을 따라 걷다가 남향 볕바른 자리에 피어난 노란 민들레꽃을 세 송이 발견했다. 로제타식물 계통은 방석처럼 잎사귀를 땅에 붙어 납작하게 펼쳐 자란다. 겨울을 나면서 볕살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식물 진화의 일종이었다. 민들레꽃 곁에는 엷은 하늘색의 봄까치꽃들도 점점이 피어 있었다. 묵은 쑥 그루터기에는 연방 새움 새순이 자라나올 듯했다.
숲속 나들이길 이정표를 지난 약수터에서 샘물을 한 모금 받아 마셨다. 갈림길 쉼터 운동기구에는 몸을 단련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소목고개 쉼터에 앉아 잠시 명상에 잠겨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면 예전 근무지 동료와 설을 쇤 안부를 나눌 자리가 예정되어 시간이 느긋했다. 등산로가 가파른 정병산은 오르지 않기로 했다. 도계동으로 가는 골프장 산등선은 얼마 전 탄 적 있었다.
소목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아까 고개를 오르기 전에도 들려왔는데 개구리 울음소리가 와글거렸다. 물이 고인 웅덩이에 계곡산개구리들이 알을 슬어 놓고 곁에서 폴짝폴짝 뛰며 움직였다. 등 색깔이 까무잡잡하고 몸집은 그리 크지 않은 계곡산개구리들은 경칩이 오기 전인데 겨울잠을 깨고 나왔다. 무논에서 보는 참개구리와 달리 계곡산개구리는 해마다 겨울잠을 일찍 깼다.
건너편 구룡산 기슭으로는 북면 감계 신도시로 가는 터널이 뚫리고 있었다. 민자 투입 토목공사라 공기를 단축시켜 하루가 다르게 일이 진척되는 듯했다. 소목마을 뒤 양봉업자가 벌통을 둔 자리는 봄이면 무슨 작물을 심으려는지 장비를 동원해 반듯하게 다듬어 놓았다. 전에 보이지 않던 농막도 들어섰다. 단감농원은 가지치기를 끝내고 그루터기 주변 거름을 모닥모닥 내어 놓았다.
소목마을 앞에서 고속도로와 나란한 농로를 따라 걸었다. 길섶의 버들강아지는 솜털이 보송보송 부풀어 봄이 오는 낌새를 알려주었다. 14호 국도와 겹쳐 고속도로가 걸쳐진 교각 밑에서 남산마을 앞으로 건너갔다. 용전마을에서 용암마을을 지나나다 꽃다지가 피운 노란 꽃을 봤다. 꽂다지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풀꽃이었다. 귀엽고 앙증맞은 꽃다지에 허리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용강마을 노송 그루 아래 해주 오 씨 효자비가 세워져 있었다. 조선 중기 아버지를 해친 호랑이를 맨손을 때려잡은 아들 이야기를 빗돌에 새겨 놓았다. 경전선 철길이 지하로 지나는 신풍고개를 넘어 소답동으로 갔다. 소답동 일대는 향교가 있는 예전 창원도호부 자리다. 빌라 골목을 지나 도계동으로 가니 건너편은 향토사단이 이전해 간 부지는 아파트가 높이 솟아 숲을 이루었다.
도계시장에서 천변을 따라 명서동으로 내려갔다. 명서시장과 단독 주택가를 거쳐 명곡교차로에서 시티세븐 앞을 지나니 반지동 주택지였다. 노변의 무성한 가로수들은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반송시장까지 걸으니 내가 사는 생활권과 가까워졌다. 집을 나선지 네댓 시간 흘러 해가 설핏 기우는 즈음이었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내려가긴 했으나 오후의 햇살로 그리 추운 줄 몰랐다. 21.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