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은 '완생'으로 끝났으나 우리네는 너나 없이 미생이다.
내가 그만 둔 직장, 1998년 봄.
그들은 어떤가? 미생인가, 완생인가.
1998년 이른 봄 부터
어느 날, 회사에서 명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과장의 사표
건설회사는 맥없이 쓰러지고 있다. 땅을 사서하는 자체 사업은 자금이 없어서 할 수 없다. 재건축. 재개발사업도 초기 투자가 엄청나서 포기상태이다. 주택사업부장을 사무실 입구에서 잠시 세웠다. 정과장에게 내가 말했다. 정과장, 우리 모두 오늘 내일이야. 하루 차이라면 차이지. 다음 주엔 내 차례가 될지도 몰라. 먼저 나가는 사람이 퇴직금 제대로 받고 그나마 대접받고 나가는지도 몰라. 나중에 나가는 사람은 퇴직금이고 뭐고 없을 수도 있어. 알잖아. 지금 회사가 돈 꿔대기도 얼마나 어렵다고. 돈 들어가는 수주는 일체 하지 말라는 거고... 그렇다면 나도 이 회사에 더 있을 이유가 뭐 있겠나."
한 시간 뒤, 정 과장의 사표가 내 책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직원 명단 OX
재개발부에서 업무 처리에 한가닥 하기로 알아주는 Y대리는 "2월에 분양할 지역인데 지금 시유지를 계약이라도 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조합과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할 말이 있어야지요"라고 말한다. 거의 6개월동안 땀흘려서 겨우 시유지를 매입할 수 있기까지 이대리의 노력이 대단했다. 문제는 돈을 꿀 곳이 없고 연장하기도 경리부는 숨가쁘다. 조합에서는 이주비에 대한 금리는 당초 계약대로 13.5%만 고집하고 회사는 그 이상으로 꿔오니 단순산술만으로도 차이만큼 적자가 뻔하다. 천재지변만이 아닌 인재지변으로 주택 사업은 절망의 늪 속에 빠진다. 지방사업은 1000세대 분양에 20여세대만 분양이 된다. 일반 분양자들에게 분양해준 기존 계약분을 해약해서 위약금을 주고 공사를 중단하는 계획까지 생각하고 있다. 회사는 사전 투자를 하는 수주를 일절 하지 않고 있다. 땅이 원료인 건설 회사에 단 한 평도 안 산다. 재재발부 직원 18명이 있으나 사실 그들 중에 3분지 2는 할일이 없다. 남은 인원을 떠나보내도 일은 된다. 떠날 자의 존재는 늘 가볍다. 깃털마냥 가볍다. 직원들의 이름에 나는 OX 표시를 한다. 남을 자와 떠날 자의 표시가 다시 시작되었다.
명퇴과장의 해피 엔드(end)
찾아온 J과장의 말동무는 내가 맡고 자는 척하고 있는 직원들이 몇 몇은 듣고 있을 것이다. 정과장은 아는 얼굴 댓명이 돈을 추렴해서 사무실 하나 차리고 좀 팔릴까 하는 물건을 뽑아서 한번 해볼까 하는 중이라고 했다. 엔진 오일 첨가제라는 것도 있다. 연료가 30% 절약된다고 말한다. "사모님께 좋은 스타킹이 있는 데요. 혈관의 흐름을 좋게 해서 다리가 안 아파진대요. 서울대 병원에서도 인정한 겁니다. "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도 다른 직원들은 J과장이 나눠주는 안내지를 대강 보고 슬며시 두고 갔다. J과장도 그들 마음을 다 안다. 정과장은 시작하는 첫 번 째 품목을 들고서 처음으로 근무했던 직장에 왔다. 직원들은 간단한 인사말 한마디로 끝내고 제 일이 바쁘다. 건강 스타킹 하나 사지 않은 나도 그 중의 하나이다.
퇴출 통보
이제 며칠 뒤며는 10년간의 세월을 함께 했던 책상과 헤어진다. 국민학교 졸업식 노래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하고 노래 부를 때 가슴 울먹했던 감정이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있구나. 부장들을 모아놓고 이사는 말했다. 부장들은 말을 않고 있다. 침묵이 내려 앉고 내가 먼저 "더 할 말 없지요? 그럼 일어납니다"하고 일어서자 다른 부장들의 눈빛이 놀란다.
이사는 아주 망설이면서 말했다.
김부장은 아주 어색하게 웃고 있고 나는 때맞춰 말한다. 부장들이 개발1부의 회의용 탁자를 싸고 앉았다. 개발1부장인 김부장에게 말했다. 주택사업부 이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에서 재개발을 처음 시작하면서 나는 '사부님' 소리를 들으며 건설 각사의 실무자에게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친해왔었다.
말없이 그만 두기보다 전화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동아건설에 있는 오 부장이 있는 현장사무소에 전화를 거니 본사에 전화를 거니 사실 그도 보직 해임 상태였다. 대우건설에서 재개발을 맡고 있는 노차장에게 전화를 거니 나는 다른 회사의 직원 명단이 들어있는 주소록을 덮으며 이제 전화를 걸 일이 두려워졌다. 나는 내 뒤의 창가로 의자를 돌려 앉아 밖을 내다 보았다.
아버님, 제 나이 이제 쉰 하나입니다. 단단하고 굳세게 사시던 당신 세월과 견주어 볼 때 저는 너무 연약하고 무력합니다. 버티고 있자한들 버틸 자리도 이제는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갈 참입니다. 나가라 하는 직장에 한은 없습니다. 제가 나가 다른 사람 하나의 일자리가 구해졌기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직장도 이제 제 명을 다해가고 있음을 저는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버님, 이제 저는 새로운 제 길을 가게 됩니다. 힘없고 무기력하지 않게 살고자 합니다. 절망의 끝을 희망의 시작으로 삼으셨던 당신의 의지를 이어받고자 합니다. 아버님,
회사 사장이 내게 전화를 했다.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그만 두었지만 사장에게 감정은 없다. 퇴직금도 못 받고 그만 두는 살벌한 세상에 받을 것 다 받고 나간다는 것은 행운임에 틀림 없으니 그 만큼 배려를 해준 사장에게 고맙다. 사장 자신도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했고 후임 사장까지 이미 와서 쌍두의 조직이 되어 있다. 전화를 거니 사장은 손님이 와서 연결이 안되었고, 하루 해가 지나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도 그만 둡니다. 내일부로 회사 등본에 대표이사에서 빠집니다. 얼굴 한 번 봅시다. 점심이나 합시다" 점심은 오 이사와 옆부서 김 이사와 사장과 함께 사장차를 타고 이태원 입구 캐피탈 호텔 앞에 있는 음식점으로 갔다. 사장은 그곳에 가기 앞서서 "아, 황 부장은 멍멍탕을 못하지"하면서 족발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거기까지 왔다. 소주 없이 먹는 족발은 참 맛이 없었다. 대낮에 술 먹을 일은 하지 않는 사람과 술 한 모금에 꼴깍 가는 오 이사가 섞여 있으니 족발맛은 참 한심했다. 입맛 맞는 점심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고 사장이 점심 한 그릇 하자는 초대를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왔던 참이라 입맛 운운 할 것은 아니었다. 다들 고기를 손 대다 말고 추가로 시킨 비지 백반이라든지, 춘천 막국수며 선지 해장국을 먹다가 만다. 다들 점심을 부실하게 끝냈다. 밥 먹으면서 한 이야기도 별로 없다. 다시 사장실로 갔다. 사장은 늘 그래왔다. 비서가 차를 끓여냈다. 사장은 말 문이 터지면 자신의 인생사가 줄줄줄 이어 나온다.
그에게는 할 때 마다 새삼스럽고 우리들은 벌써 몇 번째 들었지 모른다. 누구나 막론하고 한 이야기를 또 다시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고 남이 꼭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거리의 행인들에게 들을만한 이야기가 있듯이 하물며 중령 출신이었고 황영시 장군의 전속 부관노릇과 정부 모처에 근무하다가 이 회사에 이사로 들어와서 13년만에 사장 노릇까지 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귀기울여들어 주어야한다. 전 대통령이 달려가고 황 장군이 갇혀 있을 때도 그는 이목을 마다 않고 교도소 면회를 다녔다. 전무 시절에 사표를 썼으나 회장은 그를 부사장으로 명했고 작년 겨울에는 순식간에 사장으로 띄워주었다. 그는 고등학교만 나와 군대에 갔고 군생활중에 야간 대학을 나왔다. 그는 웃사람을 만나기 전에 상대방이 무엇을 물어올 것인가를 스스로 질의 응답을 해왔고, 철저한 준비에 상대방은 그를 대단하다고 판단하였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다. 한 분 어머니는 다른 곳으로 시집갔고 배고프고 춥게 컸고, 죽으려고 갔던 월남에서 살아 왔다. 군대 생활할 때 열심히 모셨던 황 장군에게 귀엽게 보여 이 회사에 입사를 했다. 열심히 노력했다. 사장이 되고서는 6시 10분이면 회사에 나왔고, 저녁 7시가 되어 퇴근하였다. 일요일에도 회사를 나와서 회사의 전체 업무 보고를 미리 보고 점검하고 월요일 회의 때는 담당 중역들이 깜짝 놀라게 조목 조목 따졌다. 이 회사 사장들은 다들 모가지가 잘리듯 쫓겨 나갔으나 그이만은 그만 두겠오 그만 두겠오 해도 회장은 그를 놓치 않고 있다. 사람은 많아도 그만한 사람은 없는 탓이다. 이제 그는 그만 둘 참이다. 지치고 피곤해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 했던 건강도 지금은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앞으로10년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겠느냐고 한다. 자수성가 하여 사장까지 한 사람에게도 인생의 그늘이 있는 법이다. 이제 백수가 될 사장에게 백수 선배 내가 한마디 한다. "당장 명함이 필요하실 거예요. 대한민국인 누구 누구 하시고 광화문 사서함 하나 번호 따서 넣으시라고요"하고 나는 맥빠지고 서글픈 정보를 제공한다. 사장은 진지하게 들어준다.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 내 등뒤에 사장은 이 회사 사장들은 다들 모가지가 잘리듯 쫓겨 나갔으나 그이만은 그만 두겠오 그만 두겠오 해도 회장은 그를 놓치 않고 있다. 사람은 많아도 그만한 사람은 없는 탓이다. 이제 그는 그만 둘 참이다. 지치고 피곤해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 했던 건강도 지금은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앞으로10년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겠느냐고 한다. 자수성가 하여 사장까지 한 사람에게도 인생의 그늘이 있는 법이다. 이제 백수가 될 사장에게 백수 선배 내가 한마디 한다. "당장 명함이 필요하실 거예요. 대한민국인 누구 누구 하시고 광화문 사서함 하나 번호 따서 넣으시라고요"하고 나는 맥빠지고 서글픈 정보를 제공한다. 사장은 진지하게 들어준다.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 내 등뒤에 사장은
산에서 만날 사장출신 백수를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사장실을 나왔다. 정상에 올라 갔다가 이제 들녘에 나갈 시간을 기다리는 사장은 과연 사장다운 면이 있구나 하고 존경의 마음을 함께 달고 나섰다. 이제 산 정상에 백수를 날리는 백수가 숫자를 하나 더 채우게 되었다. 내가 떠날 때 내 부서를 맡았던 김 부장도 몇 달 뒤 그만 두고 나와 함께 여의도에 있는 표준협회에서 실직자 교육을 함께 받았다가 지금은 같은 빌딩에 있는 건영에 있다. 바로 사표쓸 것 같이 하다가 남았던 이 부장은 월간지 사장이 친구라서 관리 본부장으로 있다가 그만두었다. 영업부 이 부장은 좀 더 남아 있을 줄 알았으나 그만 두었다. 주택사업본부에 사업을 담당하던 부장은 아무도 안남았다. 함께 그만둔 김 부장은 노원구에서 한식 식당을 한다. 홍보담당이었던 그는 자기 음식점을 어떤 식으로 홍보하고 있는지. 공사부의 부장이 주택사업부를 맡고 업무부의 부장이 1년만에 상무까지 고속 특진하는 비상 사태가 생기면서 그가 사업본부장을 맡았다. 명퇴의 바람이 불 때 간암으로 죽은 양 과장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어찌 지내요?"하니 "컴퓨터를 배워서 약국에서 처방전 입력하는 일로 매일 바빠요"한다. 저마다 한몫은 하고 있구나. 나보다 한 발 앞서 그만둔 재개발을 맡았던 김 부장은 쓰러진 지 1년이 지났어도 아직 걷지도 못하고 있으나, 어쩌랴. 세월이 약인 것을. 한 번 만나자 기약하고 천지가 고요속에서 인연이 있었던 이들의 전화 한 통화가 뜸할 때, 내가 먼저 한다. "황 형, 명퇴 메들리 이야기 끝난거야. 리얼 타임으로 재미있었어"하시던 형님같던 안 이사님 이제 훨체어 그만 타시고 일어나세요. 소중했던 인연들. 그들이 내게 전화를 안 걸면 무슨 일이 있어서겠지. 우리는 다시 저마다의 마이웨이를 지금 가고 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대표이사 사용 인감을 M 이사에게 내놓으니 함께 있던 주택사업부 L부장이 말린다. 그는 총무부장 시절부터 사장의 전속부관이었다. 함께 밥먹고 사적인 심부름하고 그는 사장이 귀엽게 보는 어린 영계이다. 그가 사표를 썼다는 것은 남과 구색을 맞추는 제스추어일 뿐이다. 주택사업 20여년의 나는 노계의 최후를 알아야 하고 L 부장은 영계의 시절을 사장의 보호 우산 아래 이번 장대비를 피할 것이다. 아침 시간에 사업본부 부서장들을 오 이사가 모이게 했다. 부서에서 부서원들에게 어떻더냐고 물었었다. 점심시간 이후에 가부간 결과를 가져다 달라는 말이 있었다. 다른 부서는 전원이 사표를 썼다. 이것이 '처분만 바라오' 하는 행동이라면 내 부서는 '나는 못 쓰겠오. 짜르려면 짜르시오'하는 배짱형이다. 나는 억지 지시를 하지 않는다. 배짱 부려도 잘릴 친구는 잘릴 터이니. 이사가 내게 말했다. 이사는 싸우러 왔냐고 내게 말할 만큼 내 얼굴빛이 벌개져 있었고 심각했다. 영업부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더니 얼마 안되어 내 귀에 들리는 말은, 결정권자는 사표를 쓴 자들 중에서 수리할 사람을 골라 내는 일이 버거울 것이고 사표를 안낸 부서의 경우에는 안낸 자들 중에서 추려야할 일이 또한 버거울 것이다. 중역 회의가 아침 7시반에서 시작되어 8시반에 끝났다. 9시가 다 되어도 이사가 나를 부르지 않는다. 어제 다른 부서 직원들은 여직원에서 부장까지 사표를 담당이사에게 냈다. 그런데 내 부서는 나와 차장 하나만 덜렁냈다. 각 부서 직원들의 동향이 순식간에 도는지라 정작 우리 부서 직원들은 사표쓰지 않은 일에 더 겁을 먹은 것은 회사측에서 무슨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심지어 대리하나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우는 상이다. 제 사표를 처리해달라는 말이 아니라 사표를 쓰기는 쓰되 처분을 바란다는 말이었다. 부차장 말고 대리가 사표를 쓴다면 순식간에 수리가 될 것이니 사표내는 사람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뒤 김 과장(웬 차장 과장이 그리 많은지 . 인원 구성을 들자면 내 부서에는 부장 하나, 차장 하나, 과장 다섯, 대리 다섯, 주임 셋, 여직원 셋해서 열여덟명. " 부장님, 건의하겠습니다. 오해가 없이 들어주십시요. 다른 부서에서는 직원 모두 사표를 다 썼읍니다만, 우리 부서만 예외로 가만이 있자니 불안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다. 직원들을 다 모아 놓고 하나 하나 의견을 묻는다. 그 사표를 중역 회의가 있기 전에 이사에게 주었다. "사표를 쓰는 부장이 저만 나가면 되지 누구를 집어서 잘라라 할 수 있습니까?"하고 나는 말하고 다른 부장들도 동감이었다. 아침 중역회의때 나온 이야기로는 사표를 낸 자들 중에서 정리 대상 인원을 오늘 중에 추려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사는 나를 전화로 나를 부른다. 업무 총괄표를 펼쳐놓고 이건 끝났고 이건 소송 중이고 이건 포기하고 한다. 그가 묻는 말에 나는 답변하면서 일이 없으면 정리 대상이 될 직원들 하나 하나의 얼굴이 지나간다. 영업부의 정 차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의 말을 들으니 다른 부장들은 진정으로 나가겠다고 쓴 사표가 아니고 재신임해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의 사표였던 모양이다. 누군들 이곳을 나서면 갈 곳이 있겠는가? 비굴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직업을 함께 사는 가겟집이 바뀔 때 나는 자전거포요, 쌀가게요, 전기상회요 하고 바꿨다. 이제 내 딸애가 아버지의 직업을 뭐라고 써야 하는가? 회사내에서 그만 둔 직원들을 백수라 하기 뭐하니 백사장이라고 듣기 좋게 불러준다. 아내가 내 말을 받으며, 이사는 정리 대상인원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벌벌 떨릴 아무 것도 없다. 어차피 떠날 차비를 하고 내 짐 두 상자를 이미 집에다 가져다 놓았다. 사표쓰고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다들 사표쓰고 처분만 기다리는 아래 직원들의 기를 아직을 살려줘야겠기에 말이다. 아직 핏덩이? 과장, 부장들은 남겨 놓자. 선입선출이라. 먼저 태어난 사람은 먼저 가야한다고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한 얼굴들을 아침에 모았다. 이중 한 과장과 김 과장은 아직 풋나기 과장들이다. 그들은 좀 더 살아남아야한다. 아내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고 했다. M차장과 나라고 아내들의 걱정이 남보다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연연하고 비굴한 꼴을 보이기 싫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설사중 부실 업체가 쓰러져 가는 마당에 퇴직금 준다할 때 결정을 하여야 할 것이 아니냐하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도하다. 아직 통보가 오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내일 명단이 나올거라는 말이 떠돈다. 한 동안 진급 발표가 있을 때는 가벼운 긴장과 흥분이 있었지마는 지금은 생계와 연결되는 절박한 긴장이 사무실에 떠돈다. 거의 전원이 사표를 냈지만 이번 표적은 과장 이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혼란스럽다. 하루 이틀을 쉬는 것은 편하고 좋겠지. 아내의 걱정과 생계의 유지가 요즘은 생존 지수를 만족시킬 조정이 어려울 것이다. 산다는 것이 어제 아파트 20층에서 뛰어 내린 아이들의 절박한 심정 만큼 될 것이다. 날개없이 뛰어 내린 아이들만큼 우리 나이는 자유롭지 못하다. 뛰어내리기 전까지는 달려야하는데 그냥 달릴 수는 없다. 목표가 있어야한다. 과장급이상을 모아놓고 나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로 그들에게도 한다. 아침 7시 반에 있던 부장급의 부서장 회의는 참 건조하고 추웠다. 거의 이십여명이 모이는 자리에서 '할 말 없다''없습니다''없어요'하고 넘어간다. 여기서 좌장인 내가 한마디 한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런 말도 했다. 다들 침묵속에 다시 빠져들었다.
누구는 가게를 차리고 누구는 회사를 차리고 누구는 다른 회사 부장이다.
회사를 떠난 나는 미생, 남은 이도 미생. 어차피 인생은 미생이다. |
출처: 일파만파 원문보기 글쓴이: 일파 황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