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 /문태준(1970~)
내 어릴적 어느 날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노랗게 익은 뭉뚝한
오이를 따서 밭에서 막 들어 오셨을 때였습니다
누나가 빨래줄에 널어놓은 헐렁하고 지루하고
긴 여름을 걷어 안고 있을 때였습니다. 외할머되는 가슴속에서 맑고 푸르게 차오른 천수를 떠 내셨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곡식을 까부르듯이
키로 곡식을 까부르듯이 시를 외셨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외할머니의 밭에 자라 오르던
보리순 같은 노래였습니다
나는 외할머의 시외는 소리가 울렁출렁하며
마당을지나 삽작을 나서 뒷산으로
앞개울로, 골목으로 하늘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 석류꽃이 피어 있었고, 뻐꾸기도 울고 있었고 저녁 때의 햇빛이 부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시를 절반쯤 외시곤 당신의 등 뒤에
낯선 누군가가 얄굿게 우뚝 서 있기라도 했을 때처럼 소스라치며 남세스러워라 남세스러워라
당신이 왼 시의 노래를 너를 치마에 주섬주섬 주워 담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를 몰래 들은
어머니와 누나와 석류꽃과 뻐꾸기와 햇빛과 내가
외할머니의 치마에 그만 함께 폭 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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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할머니가 시를 외우셨다니 누구의 시였을까요 ♡
글쎄요~~ㅎㅎㅎ
외워 부르는 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죠~~
외우는 게 아니라 외다니까
오래 전부터 입에 붙은ㅡ ^^
@파랑새(장수경) 구전의 시 였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