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냉장고'는 오래 된 것이다.
2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났다.
기능 상에 문제는 없는데 내부의 '전구'(라이트)가 죽었다.
그리고 외부에도 슬슬 녹이 슬고 묵은때가 잘 닦이지 않는다.
바꾸자고 했다.
아내의 작은 소망이었다.
아내가 모델을 선택했고 내가 결제했다.
그동안 냉장고 좌우에 부착해 두었던 '마그네틱 기념물'들이 적잖았다.
여행지에 갔을 때, 눈에 보이면 하나 둘씩 구입했던 거였다.
돌이켜 보면 눈에 띄지 않아 넘어간 곳도 부지기수였다.
이번에 요놈들을 전부 떼내서 새로 준비한 '전용 보드'로 이주시켰다.
어차피 그동안 정들었던 냉장고와는 영영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최대한 빽빽하게 넣었는데도 전부 들어가지 않았다.
남은 건 새로운 보드를 준비할 때까지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기념 심볼을 정리하면서 그 하나 하나에 깃들어 있던 정겨웠던 순간들과 기억들이 조금씩 잠에서 깨어났다.
숱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돈을 벌어 '부동산 구입'이나 다른 용도로 쓰지 말고 '경험', '배움', '나눔', '추억'에 적극 투자하기로 했고 그렇게 살았다.
신혼 초에 했던 그 '약속'과 '다짐'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일관되게 기도하며 묵묵하게 우리만의 길을 걸어갔다.
낯선 환경은 여행자를 모든 것에 서툰 '초보자'로 만드는 동시에 호기심 가득한 '탐구자'가 되게 한다.
그 점이 바로 여행의 마력이었다.
낯선 환경으로의 '떠남'과 '돌아옴'이 이제는 몸에 밴 듯하다.
자연, 건강증진, 호연지기, 도전, 추억, 성취 그리고 '소통과 공감'.
이런 삶의 컨셉들이 좋았다.
위대한 자연 그 자체보다는 그 자연을 통한 사람 사이의 '소통과 공감'에 항상 방점을 찍으며 갔다.
언제나 핵심은 '전자'보다 '후자'였다.
'전자'는 그저 매개일 뿐이었다.
그래서 '소,공'이 우리들 여행의 전부였다.
나이가 들어간다.
내 나름대로 설정한 인생 4막이 있는데 그건 '배움', '채움', '나눔', '비움'이었다.
이제는 '나눔'의 단계를 가고 있다.
은퇴하여 초야에 들어가면 그땐 본격적으로 마지막 단계인 '비움'의 삶을 살고 싶다.
깨끗하게 비우고 그 빈 공간 만큼에 '소,공,추'만 남기려 한다.
긴 세월 동안 동행했던 오래된 냉장고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네 덕분에 건강하고 맛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고맙다.
새롭게 맞을 새 친구에게도 좋은 인연을 기대해 본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