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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중거리 산행이라고 하면 지리산의 화대(화엄사~대원사)종주, 설악산의 서북능선(대청봉~대승령) 종주, 소백산의 죽구(죽령~구인사)종주 그리고 덕유산의 육삼(육십령~삼공리)종주 등이 산행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하려는 분들에 의해 자주 회자되었고, 공룡능선이 일반화 될 때 쯤 지리산 성삼재길이 포장되면서 성삼재와 중산리를 잇는 코스도 각광을 받게될 즈음 이우형선생님에 의해 산경표가 발견되면서 드디어 백두대간을 위시한 정맥길이 열리게 됩니다.
당연히 박성태 님이나 신경수 님 등 민간지리학자(?)에 의해 정맥의 하위 개념인 지맥길도 정립이 되고, 이에 맞춰 태달사니 배병만님이 이끄는 J3(지리산 3대종주 즉 화대종주+성삼재~천왕봉 왕복종주+지리 태극무박종주)클럽, 무한도전, 감마로드 등에 의하여 장거리 코스 등이 개척되고 또 답사가 됩니다.
서울에서는 강남6산, 9산, 12산 등이 열리고 이어 수도권 26산이 열리니 이에 뒤질세라 부산 11산, 창원 쪽에서는 마창진 환종주도 진행이 됩니다.
영남알프스는 좀 애교스러운 코스이고 충북알프스가 만들어지니 호남알프스도 만들어집니다.
그런가 했더니 관악산에 11개의 봉우리에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음에 착안하여 관악11국기봉 코스를 도는 것도 하나의 재밋거리로 즐기게 되었습니다.
삼각산(북한산) 12성문
지난 주 지인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2차로 가진 술자리에서 우연찮게 삼각산 성문을 도는 12성문 종주 얘기가 나옵니다.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삼각산을 잇는 소위 불수사도삼(북)은 저도 이미 진행한 코스이고 12성문 종주는 저도 자주 들어보긴 하였으나 당연히 그 12성문을 도는 코스를 해보지 않아 그 코스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인터넷을 찾아봅니다.
음....
북한산성매표소를 기점으로 한 바퀴 도는 코스로군요.
포장도로를 따라 ①대서문을 찍고 법용사에서 우틀하여 국녕사를 거쳐 ②가사당암문을 지나 ③부왕동암문, ④창수동암문, ⑤대남문, ⑥대성문, ⑦보국문, ⑧대동문,⑨용암문, ⑩위문, ⑪북문, ⑫서암문을 지나 다시 북한산성 매표소에서 마무리하는 코스입니다.
원래 삼각산에는 14개의 문이 있는데 여기서 중성문은 빠지고 수문은 훼손되어 12개의 문만 돌고, 코스가 그러한 지라 삼각산의 최고봉인 백운대도 올라가지 않는군요.
생각 같아서는 의상봉으로 들어 소위 의상능선을 타야할 것 같은데 그러면 대서문이 빠지기 때문에 '12성문 종주'에서는 마루금 산행이라는 개념을 지우고 시작을 해야 하는 거 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저 의상봉은 멀리서 쳐다보기만 하겠습니다.
선답자들에 의하면 제각각이지만 대충 14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소요시간은 8시간 정도이고.....
평균시속이 2km가 채 나오질 않은 것을 보면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코스임에 분명합니다.
삼각산인가? 아니면 북한산인가?
일단 도전해 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명칭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분명 나라에서는 이 지역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못을 박아 버렸기 때문에 저도 북한산 12성문종주로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지만 이 이름은 일제에 의해 주도적으로 사용된 이름이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에 선뜻 무의식적으로 붙이는데 좀 저항감이 생깁니다.
위키백과사전을 들여다 봅니다.
북한산(北漢山)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도봉구· 은평구· 성북구· 종로구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양주시의 경계에 있는 높이 835.6m(2013년 6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산으로, 이름은 조선 후기시대때 한성의 북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북한산은 1억 7천만년전에 형성되었으며, 이곳은 최초 백제땅으로 지역명으로 한산, 산의 명칭으로 31년 이후 횡악(橫岳)이라고 하였다. 고구려가 475년 백제로 부터 이곳을 정벌하여 지역명으로 북한산주이라 칭하고 산명은 그대로 횡악으로 불렀다.
신라가 이곳을 정벌하고(553년)난 후 557년에 북한산주(北漢山州)라 칭하였다. 신라는 횡악을 부아악으로 고쳐부르고, 이곳 북한산주 부아악에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백제 초기에는 횡악(橫岳), 신라때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진 이후 부아악(負兒岳)이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초기에는 부아산이라 불렀고, 고려 시대에는 993년 이후 때 부아봉(현 인수봉 810.5m), 중봉(현 백운대 835.6m), 국망봉(현 만경대 800.6m, 국토지리정보원) 세 봉우리가 모여 있어 삼각(三角)처럼 보여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려왔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고려시대에 측성한 중흥산성을 보수축하여 북한산성을 축성(1711년)한 이후 한성의 북쪽이라는 의미에서 북한산(北漢山)이란 산명을 별칭으로 사용해 오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로 점차 북한산(北漢山)이란 산명을 정식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즉 '북한산'이란 별칭은 고려시대부터 천여 년 간 사용해온 '삼각산'이란 본래의 산 이름을 제치고 일반화 된 것이 1915년에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을 지낸 금서룡(今西龍)에 의한 것인데, 그는 삼각산의 유적을 조사하고 그 보고서의 명칭을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 조사보고서"라고 하였던 바, 이 보고서에서 '북한산은 경성의 북방에 솟아 있는 조선의 명산으로, 이 산은 일명 삼각산으로도 일컫고 달리 화산 또는 화악이란 이름도 있다'고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유별나게 방위각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서울의 모든 대문들도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홍지)문 등의 고유 이름에 동서남북을 붙여 멋대로 동대문, 남대문 등의 이름을 불렀으나 우리 조상들은 유별나게 '북(北)'이란 한자에는 '달아나다 혹은 지다'라는 뜻의 배(北)의 음(音)도 가지고도 있어 그 글자를 달가워 하지 않아 북한산이라는 이름은 그저 남한산성을 축조한 다음에 그에 대응하기 위하여 북한산성이라고 부르기만 한 것이지 북한산이라고 불렀던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일본인들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괜히 삼각산을 북한산으로 불렀겠고 백운대 위에 우리의 혈을 끊겠다고 쇠말뚝을 박은 게 심심해서였겠습니까.
고의적으로 혈을 끊고 지명이나 산이름을 바꾼 것 역시 침략의 저의가 분명하고 나아가 조선의 수도인 서울의 진산인 삼각산을 굳이 북한산으로 불러야 했던 것은 백두대간과 정맥이라는 우리 고유의 산줄기를 산맥이라는 이름으로 훼절시킨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삼각산의 족보
삼각산은 백두대간의 어느 줄기에서 온 것인가요.
삼각산은 한북정맥에서 가지를 쳐 내려온 것이기는 하지만 산경표와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에서는 좀 달리 취급을 합니다.
즉 산경표에서는 백두대간의 식개산에서 가지를 친 한북정맥이 도봉산을 지나 193.9km 진행한 지점에서 우이령 즉 소귀고개를 만나고는 여기서 우틀하여 상장봉을 거쳐 노고산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위 한북정맥에서 가지를 친 줄기는 만경대를 거쳐 보현봉~북악산~인왕산~남산~매봉을 지나 중랑천으로 떨어지는 약25.7km의 긴 단맥이 되는데 이 줄기를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한북삼각단맥이 되겠군요.
그리고 이 줄기의 만경대에서 우측으로 위문을 지나 백운대와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줄기는 소위 원효능선으로 원효여맥으로 부르면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이령을 넘으면 삼각산으로 들은 모양새가 되고 대개 북악산 터널 위까지를 보통 삼각산 즉 북한산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국가에서는 이 삼각산과 도봉산을 합쳐서 삼각산 국립공원이 아닌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고....
한편 박성태님이 저술하신 '신산경표'를 보면 이 줄기를 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즉 한북정맥이라는 줄기 자체가 10대강이나 바다로 들어가 그 맥을 다하여야 함에도 조선시대의 유교사상 때문에 굳이 그 줄기를 한양을 거쳐 지나가게끔 인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정맥 개념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북정맥은 이름 그대로 한강의 북쪽 울타리가 되는 산줄기이기 때문에 그 줄기의 마무리는 서해 바다나 적어도 한강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실제 한북정맥의 마무리는 서해바다나 백두대간의 식개령 분기점에서 발원한 한강의 지류가 아닌 한북정맥의 광덕현(카라멜 고개)에서 발원한 곡릉천에서 마무리를 하기 때문에 이는 정맥이 "바다에서 그 맥을 다 한다."는 대원칙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선생님은 한강과 한북정맥의 북쪽에 있는 10대 강의 하나인 임진강이 합수하는 지점이 한북정맥의 끝이라고 보고 양주에 있는 원산경표 상의 한북정맥의 한강봉 부근에서 그 줄기를 서쪽으로 틉니다.
그리고 그 줄기는 꾀꼬리봉~앵무봉~개명산~월롱산을 거쳐 오두산으로 떨어지는 약 221.3km의 이른바 신한북정맥이 되는 것입니다.
이 줄기는 기존의 개명지맥 혹은 오두지맥이라 불렸던 줄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신한북정맥이 되고 나니 나머지 한강봉~도봉산~현달산~장명산 줄기의 처리는?
예. 그렇습니다.
그 줄기는 그대로 최고봉인 도봉산의 이름을 붙여 도봉지맥(54.2km)이 되어 박선생님의 한북11정맥에는 오두지맥 대신 이 도봉지맥이 자리하고 있는 꼴이 됩니다.
자세한 것은 2014년 10월호 '월간 산'에 게재되어 있는 한북정맥 특집 기사 중 졸고(拙稿)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북정맥'을 참고하시면 더 많은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5. 06. 27. 토요일
2. 동행한 이 : 홀로
3. 산행 구간 : 삼각산(북한산) 12성문 종주 산행
4. 산행거리 : 14.25km (올해 누적 산행거리 : 437.54km)
구 간 |
거 리 |
출발시간 |
소요시간 |
비 고 |
산성매표소 |
|
04:27 |
|
|
대 서 문 |
1.15km |
04:40 |
13 |
|
가사당암문 |
2.22 |
05:17 |
37 |
|
부왕동암문 |
0.82 |
05:56 |
39 |
|
청수동암문 |
1.34 |
06:29 |
33 |
|
대 남 문 |
0.18 |
06:33 |
04 |
|
대 성 문 |
0.33 |
06:42 |
09 |
|
보 국 문 |
0.64 |
06:57 |
15 |
|
대 동 문 |
0.71 |
07:06 |
09 |
|
용 암 문 |
1.41 |
07:29 |
23 |
|
위 문 |
1.2 |
07:54 |
25 |
|
북 문 |
1.23 |
08:40 |
46 |
08분 휴식 |
서 암 문 |
1.60 |
09:07 |
27 |
|
산성매표소 |
1.42 |
09:22 |
15 |
|
계 |
14.25km |
04:55 |
04:55 |
실 소요시간 |
산 행 기 록
지도 #1
자, 그러면 '삼각산(북한산) 12성문 종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요즈음은 때가 때인지라 낮에 산행을 하게 될 경우 더위 때문에 중포하기 십상일 것 같아 새벽에 산에 오르기로 합니다.
집에서 새벽 3시 반에 나와 연신내역 부근에 있는 할매순댓국집에서 대충 한 술을 뜬 다음에 북한산성매표소를 지나 상가단지 옆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합니다.
행장을 갖추고 12성문 종주 산행을 시작합니다.
예전 매표소를 시작으로 백운동계곡을 가운데 두고 환종주하는 원점회귀산행입니다.
불이 꺼진 관리사무소 앞을 통과하여 포장도로를 따릅니다.
원래 12성문 종주 산행이 아니고 일반적인 산행이었다면 저는 의상봉으로 올라갔을 것이 틀림없었을 것인데 그럴 경우 이 용암사로 오르거나 이 용암사 입구 전에 우측으로 달라붙는 루트를 이용하였을 것입니다.
고로 의상봉으로 오르는 루트는 두 곳이라는 얘기인데 상당히 난이도 있는 루트입니다.
저는 도로를 따라 직진합니다.
곧 대서문이 나옵니다.
1번 성문입니다.
북한산성 4개 대문 중 서쪽에 자리한 서문이죠.
대서문을 지나면서 이제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로 들어섭니다.
그러고는 한두 번 가볍게 오르내림을 하면,
화장실과 기념관 등이 나오고,
다리를 건너 우틀합니다.
위문을 거쳐 백운대로 오르려면 좌틀을 하여야 할 것이고....
선봉사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이내 법용사입니다.
직진을 하면 중성문을 거쳐 대남문으로 오르는 길일테고...
우틀하여 무조건 법용사 안으로 들어서면 요사채 뒤로 계단이 나오고 좌측의 법당을 우측으로 이제부터는 '능가선원 국녕사' 안내판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친절한 안내판은 계속 따라오고....
그러고는 국녕사의 합장환희여래불을 뵙게 됩니다.
27m에 이르는 이 여래불은 국내 최대의 좌불로 알려져 있고....
삼배를 올린 후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 국녕사가 예전에는 승군(僧軍)이 기거했던 절이었음을 방증하여 줄 만큼 큰 규모의 절집이 보이고....
등로는 이 여래불 바로 뒤로 진행이 됩니다.
이쯤에서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갑자기 뒤가 시원해지면서 염초봉, 백운대, 노적봉, 만경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가파른 등로를 조금만 더 힘을 쓰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여기서 가사당 암문을 보기 위하여 우틀하여 의상봉을 따릅니다.
그러면 바로 오늘의 제2문인 가사당암문이 나옵니다.
소위 의상능선 상에 있는 문입니다.
가사당암문이라....
이름 자체가 袈娑堂인 것을 보니 국녕사의 건립취지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군요.
이 뒤로 넘어가면 진관내동에 있는 백화사가 나오고 우틀하면 의상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의상봉이라......
이 의상봉은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수도를 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원효봉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기 때문에 원효대사의 이름에서 비롯된 그것들이라 하니 너무 자의적이라는 느낌입니다.
어쨌든 당나라로 불교공부를 위하여 육로로 유학길에 올랐던 두 고승은 당나라 접경지역에서 월경을 하다 고구려 국경수비대에 잡혀서 출입국관리법 위반, 간첩죄 등으로 얼마간 옥살이를 하고는 강제추방 당하였고, 그 후에 다시 바닷길을 통하여 당나라로 다시 밀입국(?)을 시도하기 위하여 한남정맥에서 갈라진 태행지맥을 따라 가다 남양반도의 당항성을 통하여 가는 도중, 원효는 이른 바 '해골물 사건'으로 득도를 하여 신라로 돌아갔으나 의상은 홀로 당나라로 들어가서는 지엄을 만나 8년간 공부를 하여 화엄경의 묘지를 전수받아 신라로 돌아와서는 낙산사의 관음굴에서 수행을 한 후, 부석사를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즉 의상은 부석사를 중심으로 화엄종을 개창하였고 지리산 화엄사 등 화엄십찰을 창건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의상대사의 로맨스는 중국에서 선묘낭자의 짝사랑이 두드러지며 선묘낭자의 지극한 사랑을 멀리하고 신라로 돌아가는 의상을 위하여 선묘낭자는 용이 되어 무사히 바닷길을 건너게 해 주었고 이후에도 토착신앙을 가지고 있던 주위 사람들이 부석사 건립반대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공사장 앞에서 연일 시위를 할 때 용이 된 선묘낭자의 신기로 바위가 두세 번 하늘로 떠올라 시위대들을 놀라 도망가게 했다는 '부석(浮石)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그래서 지금도 부석사 뒤에는 선묘낭자를 기리는 각(閣)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의상대사를 기린다는 취지에서 붙여진 봉우리 이름으로 이해합니다.
가사당암문에서 좌틀을 하면 바로 암벽이 나오고 잠시 안전 시설물을 잡고 조심스럽게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바로 아래로 국녕사가 밟히듯이 보이고,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와 만경대 그리고 앞으로는 노적봉 그리고 우측의 용암봉까지 한손에 다 들어올 것 같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원효봉 뒤로는 우측으로 감악지맥의 노고산이 들어오고 조금 왼쪽으로는 감악산까지 보이는데 카메라의 선명도 때문에....
바로 앞의 의상봉 뒤로는 한북정맥의 노고산이 그리고 그 뒤로는 오두지맥(신산경표에서 이야기 할 경우에는 신한북정맥)의 맹주 앵무봉과 개명산의 철탑까지 보입니다.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김포 방향으로 한남정맥의 끝 문수봉까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운데 멀리 보이는 능선 중 하나의 봉우리가 개성의 송악산일테고....
주봉 우측으로는 동장대까지 보이고 태고사와 중흥사가 조그맣게 육안으로는 확인이 되는군요.
염초봉 아래로는 상운사와 대동사가 육안으로는 보이는데....
바위 구간을 조금 더 오르면,
지도 #1의 "나" 용출봉입니다.
용이 나타난 봉우리라고 해서 용출봉이라고 붙였다고 하는데 그냥 무조건 용이 출현한 봉이라는 얘기보다는 아까 그 선묘낭자가 변했다는 용과 맞물려서 "의상대사가 용맹정진을 할 때 주위의 잡귀신들로부터 대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선묘낭자가 변한 용이 이곳에 나타나서 대사의 공부를 도왔다."고 각색을 하는 것으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일단 그 용출봉에 오르면 드디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바로 우측의 매봉에서 매봉능선이 올라오고 있고 그 매봉능선은 우측에서 올라오는 삼각산의 주능선인 비봉능선과 만나고 있습니다.
일반지도에는 응봉능선이라고 표기가 되었고 심지어 매봉능선의 주봉인 매봉(332.9m)마저 응봉으로 표기해 놓은 지도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붙이게 된 근거는 이 부근에 매가 많이 살았고 그 매들이 늘 봉우리 주변을 빙빙 날았으니 매봉이라 불렀을 것을 일본인들이 한자화하여 응봉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지도에는 당당하게 매봉(332.9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 비봉능선에는 우선 사모바위가 눈에 들어오고 그 우측으로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져 있었던 비봉이 제일 눈에 띄는군요.
그러니 비봉 좌측 봉우리가 승가봉일테고 그 승가봉과 사모바위 사이로 관악산이 보이고 사모바위 바로 좌측의 안테나는 삼성산의 그것이군요.
비봉 바로 좌측으로는 한남정맥의 수리산.....
육안으로는 너무나 선명한데....
나월봉, 나한봉 그리고 문수봉.....
그리고 육안으로는 문수봉 좌측으로는 청계산과 백운산 그리고 수원의 광교산까지 다 보이던데....
이런 날 사진쟁이들의 출사 나온 모습이 보이질 않는 게 안타깝습니다.
바윗길을 내려가 다음 봉우리로 오르니,
지도 #2
지도 #1의 '다'의 곳에 있는 용혈봉이랍니다.
이곳도 용이 살던 굴이 있던 곳이니 선묘낭자와 연관시켜서 생각하기로 하고....
이 용혈봉에서 남쪽을 관찰하니 더 확실하게 보이는군요.
좌측으로 청계산, 백운산, 광교산....
우측 승가봉 뒤로 관악산, 그 우측으로는 삼성산....
사모바위 좌측으로 수리산....
이제 대남문이 2km 남았는데 아직 한 고비가 더 남았습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은 증취봉이 도대체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 정도라는 느낌은 드는데...
이 증취봉은 시루봉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일본인들이 또 제멋대로 한자화하여 붙여 버린 이름이겠고...
이따 반대편에 서서 이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형상을 가늠해봐야겠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부왕동암문입니다.
3번째 문입니다.
지도 #2의 '마'의 곳으로,
여기서 우틀하여 내려가면 삼천사 루트와 연결이 되는군요.
개인적으로 매봉과 삼천사 루트는 작년 말에 송년산행을 산악회 따라갔다가 들렀던 루트입니다.
부왕사는 이름만 있는 절이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있다고 하는군요.
문제는 이곳입니다.
'대남문 1.2km' 라는 이정표 뒤로는 산객들이 다닌 흔적이 선명하지만 보시다시피 국공파들은 이렇게 출입금지를 시켜놨습니다.
분명 위험하다는 표시입니다.
우틀하여 올라가 봅니다.
바위 투성이인데 안전시설이 전무합니다.
대신 조망만큼은 끝내주는군요.
비봉능선,,,,,
지나온 용출봉, 용혈봉 그리고 우측이 시루봉(?)....
이렇게 멋진 곳을 내려오고....
이정표를 따르면,
유적지 발굴 현장을 지나 조금 힘을 쓰고 오르면,
지적기준점이 나오는데 이부근이 나월봉 같습니다.
지나온 능선을 돌아보고,
백운대, 만경대...
이제는 그 두 봉우리 사이로 인수봉도 보이고....
우측의 도봉산 자운봉까지....
비봉능선이 더 가까워졌고...
북악산과 인왕산까지...
홍지터널도 보이고...
좌측 봉우리가 나한봉....
파란 거적은 유적발굴을 하기 위하여 덮어놓은 비닐이겠고....
지나온 곳이긴 하지만 멋집니다.
노고산과 개명산이 또렷하게 보이고...
그 뒤로 감악산까지...
한남정맥의 계양산....
2등급삼각점(서울22)이 있는 남장대입니다.
좌틀하면 행궁터로 진행을 하게 되고 ...
진행은 우틀입니다.
남장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오늘 네 번째 문을 만납니다.
이름마저 시원한 청수동암문.
여기서 서울 종로구를 만나 이제부터는 시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한편 도봉산과 삼각산 주릉을 진행하시는 분들은 여기서 비봉능선을 만나 암문을 통과해 승가봉이니 비봉이니 하는 봉우리들을 거쳐 백악산과 인왕산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주릉에서 보자면 여기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의상능선이 시작되는 셈이고....
대남문으로 서둘러 진행합니다.
평소 같으면 바글바글할 대남문이 오늘은 조용합니다.
우틀하여 대남문을 통과하여 나아가면 보현봉을 거쳐 형제봉능선으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이정표를 본 다음,
5 번째 문을 인증하고,
성곽 바로 옆의 계단을 따라 진행합니다.
여기서 성북구를 만나는군요.
그럼 이제부터는 종로구를 버리고 성북구와 고양시의 시계를 걷습니다.
바로 옆이 대성문이고.....
6번째 문입니다.
여기서도 형제봉 능선으로 진행할 수 있고....
이제 다음은 보국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그다지 갈증도 나지 않고 아직 배도 고프지 않고...
사실 시간 상으로 이제 겨우 두 시간 조금 넘게 산행을 했으니 그럴 수 밖에....
대성문을 인증합니다.
이 대성문은 산성의 대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문입니다.
대남문보다도 두 척이나 더 크다고 하니...
이 대성문이라는 글자는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의 친필을 집자(集字)한 것이라고 합니다.
보국문을 향하면서 지나온 성곽길을 돌아봅니다.
보국문을 내려가는 길에 위치해 있는 조망처에서 두 분이 출사를 나오셨습니다.
어쩐지 이렇게 좋은 날 사진쟁이들이 안 보이나 했더니만....
어제 비도 오고 오늘 아침에는 바람도 많이 불어서 좋은 그림을 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시는가 했더니 조리개를 돌리시고....
인사를 나누고 저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내려오다 좌측으로부터 원효봉~우측의 도봉산 오봉도 관측합니다.
도봉산 자운봉 우측의 수락산....
수락산....
그러고는,
7번째 문인 보국문입니다.
여기서 우틀하면 정릉계곡으로 진행을 하게 되겠지요.
한편 축성 당시의 이 보국문의 이름은 동암문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런던 것을 근처에 있었던 보국사라는 절의 이름을 따서 보국문으로 바뀌어졌다는데...
성문 안쪽에는 우측에는 금위영이 이 일대 성을 쌓을 때의 성의 길이 등이 음각된 명문이 보이는군요.
변수 김아무개라는 이름도 보이고.....
보국문을 지나 성문 안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금위영터가 있다고 하고....
대동문 가는 길에 헬기장을 봅니다.
여기서 강북구를 만나게 되고 이제 진행은 강북구와 고양시의 시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길이 이 정도이니 속도는 팍팍 붙게 되어 있고....
그러고는 8번째 문인 대동문입니다.
이 부근의 고개를 석가령이라고 했다는데 성호 이익은 숙종때 이 석가령을 거쳐 보현봉으로 진행하는 1박 2일의 산행기를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로 남겼다고 하고...
너른 광장에는 일찍 올라오신 분들이 운동도 하고 지도도 들여다 보면서 진행하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케른 한 기가 눈에 띄는군요.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봄이면 진달래가 온 산을 다 휘덮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진달래능선으로 가게 됩니다.
실제 완만한 능선길을 타고 오를 수 있는 이 능선은 우이동길에서 오르는 게 참맛이라고 하지요.
지도 #3
다시 성곽길에 붙어 조금 오름짓을 하면,
아까 멀리서도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동장대입니다.
이 봉을 시단봉(柴丹峰)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제 백운대도 가까워졌고.....
북한산대피소 방향이 아니고 바로 성곽을 따라 진행합니다.
한번 더 오름짓하고....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는군요.
오늘 새벽에 올랐던 봉우리들입니다.
우측부터 의상봉 그리고 용출봉, 용혈봉 그 좌측이 시루봉 그러니까 증취봉이라는 건데....
어디 한 번 볼까요.
증취봉이 아니고 시루봉 같이 생긴 거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곰발바닥 같이 생긴 것도 같고....
노적봉....
만경대.....
그 우측으로 인수봉.
그런데 인수봉과 관련하여 하나 주워들은 이야기.
이 이름이 논어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즉 知者는 요수樂水, 仁者는 요산樂山.
지자는 動하고 인자는 靜이다.
지자는 락樂하고 인자는 수壽다
그래서 인수봉(仁壽峰)이 되었다는 ....
그러고는 9번째 문인 용암문입니다.
진도가 막 나가는군요.
용암봉 아래에 있으니 용암문이겠고...
원래는 용암암문 아니었겠습니까.
도선사로 내려가는 직방 코스이겠고....
이제부터는 바위가 많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진행이 더뎌진다는 애기입니다.
노적봉을 좌측에 두고 우틀합니다.
만경대로 바짝 달라붙습니다.
백운대 정상에 있는 태극기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염초봉과 원효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절이 잠시 후 진행할 약수암인가요?
노적봉.
염초봉과 백운대.
드디어 북한산성 매표소로 떨어지는 길과 만납니다.
위문은 잠시 나무 계단을 따라 조금 만 더 올라가야 합니다.
이제 배도 고프고....
일단 10번 째 문인 위문을 찍고,
인증을 합니다.
위에 있다고 해서 위문이 아니고 위문(衛門)입니다.
여기부터 내려가는 대동사 입구까지는 거의 이런 길.
신발 속의 흙도 털어내고 가지고 온 빵도 먹기 위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합니다.
08:18
물과 빵 한 조각을 먹고 일어납니다.
지도 #4
조금만 더 내려가면,
바로 대동사가 나옵니다.
계단을 따라 들어가니 '북문, 원효봉' 이정표가 나옵니다.
이 이정표를 따라가면,
바로 상운사가 나오는데 실제 상운사에는 '하산 등산로' 표시만 되어 있고 오히려 '개조심'이라는 안내판만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절안으로 들어가 칠성각 뒤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예의 그 백구가 으르렁 거릴 차비를 하는군요.
스틱도 없는 비무장인 상태에서 그놈과 실랑이를 한다는 것도 인간으로서 체면이 안 설 것 같아 일단 절에서 나와 이 안내판을 지나는데 우측으로 윤형철조망의 흔적들이 보이고 희미하게 사람다닌 흔적이 그 철조망 너머로 보입니다.
뭐 망설일 거 있겠습니까.
바로 그 철조망을 넘어 감각적으로 치고 올라가니 상운사와 이어지는 길 흔적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있던 길을 지금은 막아버린 것입니다.
부도를 지나니 길은 더 선명해지고 기도처 같은 곳을 두어 개 지나니 바로 등로와 연결됩니다.
그러고는 바로 북문입니다.
11번째 문입니다.
원래는 대북문이라고 하여야 할 것을 '북'이라는 글짜를 좋아하지 않는 선조때문인지 그냥 북문이라는 이름만 갖고 있고 크기도 겨우 이 정도입니다.
그나마 다른 암문과 차별적인 것은 그래도 (대)북문이라고 사각형이 아니고 홍예문(虹霓) 형식을 갖췄다는 게 어느 정도 격식은 갖춰준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거기에 이중구조이기도 하고...
일설에 의하면 예전에는 성루가 있는 큰문이었다고도 하는데 글쎄 그 흔적이 어디 있는지....
waypoint를 찍기 위해서 오룩스를 열려고 하는데 스마트폰이 꺼져 있습니다.
아뿔사!
아까 쉬면서 뭘 잘못 만지작 거렸나 봅니다.
다시 전원을 켜고 지나온 구간을 보니 직선으로 연결이 됩니다.
아까 쉼터~북문 구간이 정확한 거리 측정이 곤란하겠군요.
이제 원효봉만 넘으면 됩니다.
원효봉을 오르면서 잠시 뒤를 돌아봅니다.
건너편 의상능선....
................
음.............
원효봉입니다.
원효대사께서 실컷 경주에서 노시다가 어인 일로 여기까지 와서 수행을 하셨는지....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는 도반이었는지 절친이었는지 어쨌든 함께 당나라로 불교공부를 위하여 육로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당나라 접경지역에서 월경을 하던 중 고구려 국경수비대에 잡혀서 출입국관리법 위반, 간첩죄 등으로 얼마간 옥살이를 하고는 강제추방 당하였다는 얘기는 아까 했었고...
그 후에 다시 바닷길을 통하여 다시 밀입국(?)을 시도하기 위하여 한남정맥에서 갈라진 태행지맥을 따라 가다 남양반도의 남양만(당항성) 부근에서 잠을 자던 중, 목이 말라 해골의 물을 마시고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달으면서 득도를 하여 유학을 포기한 채 다시 신라로 돌아가서는 소위 '땡중' 생활을 하면서 요석공주까지 꾀어 아들(이두 문자를 만든 설총)까지 생산하는 파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최초의 대처승으로서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등 경에 버금가는 논, 소, 초 등을 집필하는 유식학의 대가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저도 이 분 덕에 국사시험 큰문제 하나를 쉽게 맞혔으니....
대승기신론소.
가만히 시간을 재 보니 이제 4시간 조금 넘었습니다.
상당히 빨리 왔군요.
저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7~8시간을 잡았는데....
숨은벽이 살짝보이고 상장능선 뒤로 도봉산 연봉이 보이는군요.
저 아래가 오늘 산행을 시작한 북한산성 매표소 집단시설지구.
그 이름에 비해 터무니 없게 왜소한 원효암.
급경사를 열심히 걸어 내려옵니다.
올라가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으시군요.
이 더위에 고생 많이 하시겠습니다.
막걸리 드시고 너무 소란 피우지 말아주시길....
이런 계단도 내려가느라 신경을 바짝 세우고....
오늘 마지막 문인 서암문입니다.
지도 #4의 '사'의 곳이고....
예전에는 성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이 시신을 대문으로 내보낼 수가 없어 이 서암문으로 내보냈다고 하여 '시구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의 시구문은 서울운동장 옆의 광희문이고....
전에 '장군의 아들' 영화를 보면 "시구문 밖 어쩌구 저쩌구..." 했었는데 거기가 광희문을 이야기하였던건가?
여기서 지금까지 내려왔던 성곽길을 버리고 효자리 안으로 깊이 들어가 '북한산 둘렛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군요.
우측 시구문 밖으로 나갑니다.
예전에 어느 시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둘렛길을 만나서 좌틀하고....
다리를 건너고는,
삼거리에서 우틀하면,
오늘 아침 산행을 시작했던 매표소입니다.
오늘 04:27에 출발하면서 사진을 찍었으니 5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군요.
4시간 55분.
중간에 조금 놀았으니 그런대로 뺀질거리지 않고 열심히 산행에 임했습니다.
막국수 한 그릇 먹고 차를 회수하여 막힌 도로를 따라 귀가를 합니다.
첫댓글 서암문에서 나가시지 말고 그냥 성곽따라 계곡까지 내려서면
수구문 있던 곳을 유추할 수 있었을터인데 13성문 탐방으로..
엄청 빠른 걸음이며 반장님에 이어서 또 다른 ktx 등장임다^^
통상적인 길은 아니군요. 무조건 따라가 볼 생각도 했었는데 올라오는 산객들이 많아서. . . 기회가 되면 한번 가봐야겠군요.
@현오 모 이리 빨리리셨네여
@현오 주차장 위 상가 뒤에서 철다리 건너 민가 몇채 지나는 옛적 등로이며
대부분의 산님들은 잘 몰라서 못갑니다. 쉽고 빠르며 호젓한 곳인데..
조망이 좋았네요. 언제 보아도 명산입니다.
북한산에대한 설명 잘 이해 했습니다.
더운 여름철 몸관리 잘하시고
즐거운 산행 하세요
북한산성문이 12개가 있어서 한번에 이어가기를 한다고 들었는데,자세한 설명과 뛰어난 조망이 멋진날이었습니다.잘 감상하고요,언제고 같은 코스로 걸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