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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데이비스 하프 미니스트리 :David`s Harp Ministry 원문보기 글쓴이: 신승주(승리하신 주님 찬양)
아이와 헤어져서 나는 집으로 왔습니다.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 조금 낫기는 했지만 아직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삼각 김밥을 먹은 후에 다시 누워서 잠이 들었습니다.
밤 늦은 시간까지 그 상태로 있었습니다. 푹 쉬고 나니까 몸이 조금 회복되었고 가벼워진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 바깥에서 떠들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친정에 갔었던 아내가
아이들과 같이 들어오는 소리인데 그 순간 강력한 어두움의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회복된 몸과 영혼이 다시 엉망이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이마가 묵직하고 뒤통수가 뻐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온 몸에 악한 기운이 덮여오는 것이 느껴지고 구토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일어나서 아내를 맞았는데 아내와 아내의 오빠가 식구들과 같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면서 이 어두움을 가지고 온 주범이 누구인지를 살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오빠의 머리에 어두운 기운이 감싸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오빠는 마음이 아주 여리고 착한 분입니다. 자신의 상황이 힘들 때에도 항상 상대방을 먼저 배려해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유머러스한 감각으로 분위기를 즐겁게 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질적으로 예민한 영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기질의 사람은 주의 영에 사로잡힐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서 중독이나 사고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주님께 헌신된 분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어두움의 영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어두움의 기운이 많은지 이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그 이유를 알아보고 싶어서 안방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아내와 오빠의 대화에
끼어 들었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즐겁고 유쾌한 것이었지만 옆에서 잠시 대화를 듣기만 했는데도 아내의 오빠가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메슥거리며 토할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습니다.
나는 대화 중에 그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 장인 어른이 아내의 오빠에게 시켜서 제사를 드렸으며 오빠는 장남이니 그 일을 할 수 없이 맡아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흑암의 기운에 잡혀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시대의 기독교는 너무 형식화 물질화되어 있어서 영적인 흐름에 대해서 거의 잘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실제적인 아름다움과 충만에 대해서도 잘 모르며 귀신들의 실제적인 움직임과 역사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와 그 움직임은 사람들이 모르고 못 느낀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옆에서 움직이고 있는 실제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악한 영들이 찾아오며 그 집안은 귀신의 소유가 되고 귀신들이 합법적으로 그들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무지합니다. 영계의 일은 공상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의 어느 밤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 날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리고 머리가 깨지는 듯이 아파서 밤새 씨름을 하고 귀신들과 싸우며 기도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아침에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어머니에게 어제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놀래면서 아버지가 그렇게 말리는데도 상에다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끔 일이 안 풀리면 고사를 지내야 한다고 어머니에게 강변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면 그 날부터 어머니는 기도를 시작하곤 했지요. 그래서 막상 약속한 날이 되면 무슨 급한 일이 생겨서 고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곤 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찬송을 들으며 깨어난 어느 날 아침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정말 기쁨이 가득한 어머니의 찬송이었습니다.
그 찬송은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하는 찬송이었는데 어머니는 기쁨과 감사로 가득해서 그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일어나서 어머니에게 그렇게 즐거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어머니는 환한 얼굴로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요즘에 일이 안 되는 것은 조상을 잘 모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꼭 제사를 드려야겠다고.. 아니면 이혼을 하겠다고 강압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어머니는 간절하게 제사를 드리지 않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약정한 날이 오늘인데 아버지가 바쁘기도 하고 다른 일도 생겨서 그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면서 기도가 응답되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계속하여 이 찬송을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은 갑자기 상을 차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그것을 제지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비록 약식이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우상에게 절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떠돌아다니는 악한 영들이 우리 집에 잠시 들어오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그 밤에 그 마귀들과 한판 씨름을 벌여야 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면서 영적인 실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사 행위도 단순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드리는 것, 그것은 단순한 문화가 아니며 의식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귀신들에게 양도하는 행위입니다. 귀신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며 절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영을 부어주고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합니다.
명목상으로 교회를 다니고 세상을 사랑하며 대강 대강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은 어차피 주님과 천국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평소에 악한 영들의 통제 속에서 삽니다. 그러나 주님께 자신이 드려진 헌신된 이들이 그렇게 멋모르고 제사를 드리거나 그러한 행위에 참여하거나 하게 되면 그 때부터 그들은 엄청난 공격과 전쟁에 시달리게 됩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명백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제사를 금하고 있습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고전10:20-22)
흔히 사람들이 명절에 조상의 은덕을 기억한다고 하면서 드리는 제사 행위.. 그것은 조상에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귀신을 부르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제사에 오는 영들은 그들의 조상의 영이 아니며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귀신의 영들입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배에 대한 차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것에서 예배를 드리며 주를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결혼은 결혼식이 아니고 결혼 예배입니다. 결혼으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하며 새로 시작되는 가정이 주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이 주인이 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하늘나라에 가시면 임종예배를 드립니다. 일생의 삶을 인도하신 것을 감사드리며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이사를 가면 이사 예배를 드립니다. 모든 움직임과 여정이 주님의 손에 있음을 감사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업을 시작하면 개업예배를 드립니다. 이 사업의 사장님은 주님이시며 주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이 사업장에 있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갈 때도 예배를 드리며 집에 도착하면 예배를 드립니다.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모든 삶 속에 하나님이 왕이시며 주인이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고백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오직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 안에 거하고 그분만을 높여드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합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방법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자신을 높이고 사람을 높입니다.
그들은 예배 대신에 제사를 드립니다. 조상에게 제사를 드림으로써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속임수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제사 행위가 조상에게 감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실제적으로 귀신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드리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제사는 자신의 삶이 끝이 나고 육체가 사라져 영혼이 되었을 때에 그의 영혼을 빛의 세계가 아닌 어두움의 세계에 던지기로 하는 일종의 계약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우상에게 엎드려 절을 하면서 그 사람의 소속은 어두움의 영계, 귀신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의할 것입니다. ‘나는 결코 귀신들에게 내 영혼을 양도한 적이 없다.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천국의 주인이시며 그분은 빛의 왕으로서 당당하게 우리와 계약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주께 드리고 경배하며 감사하고 공개적으로 그분을 찬송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정식 계약을 맺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거짓으로 속일뿐입니다. 그들은 항상 유혹을 던지며 건강과 부와 명예와 성공을 약속합니다. 그리하여 어리석고 무지해서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이들의 영혼을 은밀하게 사로잡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면 온갖 귀신들이 옵니다. 그것은 만유인력의 법칙보다 더 분명한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지 못한 조상들은 지옥에 있으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지옥에 있는 조상들을 위해서 엎드려봤자 이미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다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지옥에 있는 조상들은 그 후손들이 아무리 제사를 지내도 올 수 없습니다. 제사는 오직 악령들을 부르는 것이며 그것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악령들에게 헌신하여 자신을 동일한 어두움으로 떨어뜨리는 것 밖에 아무런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장인 어른이 제사를 드렸다니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장인 어른이 다니시던 교회의 목사님이 제사를 드려도 된다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불교의 스님을 교회에 초청해서 설법도 듣는다고 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장인어른은 그러한 것을 보고 목사님의 신앙 수준이 아주 높다고 생각하시고 있었는데 나는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도자의 무지 때문에 수많은 영혼들이 잘못된 길에 빠지게 된다는 것.. 그것은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영적 세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목회자들이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더 포용적이고 원숙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가치관이나 인격에 대해서 적대적일 필요는 없으며 그들의 인격이나 선택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뿐이며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오신 분도 오직 예수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그분을 높이고 예배하며 그분께 속하는 것.. 그 외에는 구원과 천국에 이르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타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십계명 중에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없애버렸습니다.
그 종교에서는 워낙 우상을 많이 섬기고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그대로 놔두어서는 그 종교가 유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제사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있다고 해도 그 영혼의 운명이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의문이 아닌 실제적인 영계, 실제적인 영혼의 자유, 실제적인 주님과의 교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눈을 뜨지 않으면 모든 종교행위는 하나의 의식에 그칠 뿐입니다.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행위입니다.
간음도 살인도 도적질도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도전하는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는 곧 하나님을 모독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킵니다. 이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지..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는 내 방에 들어왔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대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님께 대신 회개를 하고 나서 악한 영들을 대적하였습니다.
다른 곳에서 드린 제사를 통해서 이 집에 들어온 그 귀신과 영들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집은 하나님의 집이며 귀신들이 올 수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곧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것이 사라졌습니다.
뒤통수가 뻐근한 것도 사라졌습니다
구토가 나오려고 한 것도 멈추었습니다.
악한 영들은 당황했고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내의 오빠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내 몸은 거의 회복되었지만 그의 머리에는 아직도 흑암이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펼치고 제사의 죄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귀신을 부르는 행위이며 하나님을 진노케 하시는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장인어른의 집에 다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각 집마다 영이 민감한 사람이 있고 둔감한 사람이 있는데 둔감한 사람은 귀신이 와도 모르지만 민감한 사람은 파장이 맞아서 그 영향을 바로 받기 때문에 중독이나 사고나 재앙이 올 수 있다고 그러한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몇을 지적했습니다.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악한 영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체질과 파장에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사고가 많이 나는 곳이 있습니다.
어떤 장소에서 큰 사고가 나서 사람이 크게 다치고 죽고 하게 될 때 그 곳에는 악한 에너지, 영들, 파장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 들 중에 영적으로 그 악한 기운을 받기 쉬운 파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나갈 때 그 사람은 그 에너지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자살하는 곳에는 비슷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러한 영향력 가운데 있게 될까요?
대체로 합리적이고 냉철한 사람은 영계와 그리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이며 기분이나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귀가 얇으며 자기 조절이 조금 어려운 사람들은 대체로 영감이 예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들이 주님께 속하지 않게 되면 어두움의 영계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들이 제사를 드리게 되거나 그러한 흐름에 노출되면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내의 오빠는 기질적으로 영이 예민한 편이었습니다. 그는 한 때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여러 기도의 응답과 은총들을 경험하기도 해서 그러한 영적 감각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놀라서 다시는 제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요구하셔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꼭 교회에 가고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영적 무지로 인해서 그러한 행위에 참여는 했지만 늦게라도 그렇게 이해한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오빠의 식구들이 대전에 있는 집으로 내려간 후 나는 즉시로 아내, 주원이, 예원이와 함께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인도한 그 영적 흑암의 기운이 아직 이 집에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기운을 청소해야했습니다.
우리는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예원이는 피아노를 치고 주원이는 드럼을 쳤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찬양을 드리며 온 땅위에 오직 주님만이 높으신 분이신 것을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이 가정의 왕이신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임재와 영광이 이 가정에 가득하게 임하시도록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나는 곧 기쁨과 행복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볍고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음놓고 주님을 높이고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이 가정의 주인이 남편이나 아내나 아이들이 아니고 오직 주님이시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감격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예배란 곧 천국의 임함이며 모든 영광과 행복의 비결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선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천국의 영계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매사에 주님을 높이며 기쁘시게 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며 자신의 기분과 감정으로 살며 자기 중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지옥적인 영의 세계에 거하는 것입니다.
많은 대화가 허무함을 낳는 것도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 때문입니다.
많은 간증이 귀신들을 부르는 것도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두움에서 벗어나 모든 것에서 주를 기억하며 주를 높이며 오직 주께 감사하면 동시에 그의 영혼은 천국의 영계로 수직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낮은 수준의 삶을 사는 이유는 자기 중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의 삶을 살 때 우리는 변화되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추석이나 명절이 피곤한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서로 잘난척하고 자기를 드러내며 남을 비난하고 시기하며 사람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 예배가 있고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고 경외가 있다면 그곳은 곧 천국이 됩니다. 그곳은 영광의 장소가 됩니다. 주님이 임하시는 곳.. 그곳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들어온 악한 기운으로 인하여 고생을 치르고 다시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임재를 통하여 기쁨과 빛과 행복을 경험하면서 나는 빛의 세계와 어두움의 세계, 빛의 영계와 어두움의 영계의 차이를 다시금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세계..
그것은 곧 영광의 세계이며 천국의 세계입니다.
그 기쁨과 행복과 자유함을 맛본 이들은
아무도 다시 그 어두움의 세계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 그 곳은 바로 천국입니다.
거기에는 천국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빛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진정한 예배를 통하여
진정한 주님 사랑을 통하여
그 세계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더 놀라운 천국의 영광을 맛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2003. 9. 16
<일상에서 경험하는 주님의 은혜> 중에서..
가져온 곳: 정원목사 독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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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데이비스 하프 미니스트리 :David`s Harp Ministry 원문보기 글쓴이: 신승주(승리하신 주님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