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나이가 되도록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좁은 문과 지드의 좁은 문이 연관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긴 하지만
지드作(1909)는 알리사와 제롬의 러브스토리라는 것 외에는 내용 파악이 안 됩니다.
우리 딸내미 소싯적 잠 잘 때 읽어주던 동화책 마냥 누가 간단하게 스토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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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해 주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좁은 문은 산상보훈의 결론부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을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는 말로서 본론의 결론을
지으시고 이제 세 가지 비유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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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십니다. 여기에 좁은 문이 언급 되는데 제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구절입니다.
더 나은 의를 추구하는 성도의 삶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걷는 것처럼,
이 세상이 그 가치를 모르고 거절하는 방식입니다. 그 길은 선택이 아니라 그 길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반드시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할 문이고(7:7)뒤 돌아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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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야 할 길입니다(눅9:62). 그것은 십자가가 빠진 부활과 같습니다.
나를 부인함 없이는 하나님과 이웃을 인정함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열매로 나무를 판단할 수 있듯이, 우리가 맺은 열매는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있는
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다만 길 다르고 속 다른 거짓 선지자를 분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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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열매처럼 보이기에 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열매는 그 영향력의
정도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남을 속이기 전에 내가 먼저 외적인 결과로 인해 나를 속일 수 있습니다.
주의 뜻에 순종하는 것만이 의이고 다른 것은 다 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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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만 단위 돈을 만지다가 구멍가게에서 푼돈 몇 푼 얻어먹는데 그마저도 보증금
1,300을 까먹고 이전을 했습니다. 체감 경기가 완전 바닥인 걸 알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확장이전을 했는데 매형이 자신의 투자 금을 회수 해 가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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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섭섭함이 드는 건 난 아직도 멀었지요? 매형이 부모도 아니고 누군들
자기돈 1000만원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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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문(門)'의 상징이 길(道)'의 상징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이 본문의 핵심은 제자의 결단과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도라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 바로 좁은 문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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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법을 행하지 않고 믿음의 집을 잘 짓고 있는가?
우리가 꿈꾸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2.
제롬은 모친이 죽은 후 외삼촌댁에 머무르게 됐는데 그의 이모도 한 달
가량 머물었고 이모의 수다스러움 속에서 알리사가 자기 어머니와 닮았음을
의식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제롬과 줄리어트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된
알리사는 동생 줄리어트가 제롬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후에 제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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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를 했을 때 "우리는 이대로 행복하잖니?"라며 거절합니다.
제롬은 파리에 공부하러 온 후 그의 친구인 아벨 보티에 에게 알리사가 보낸
"나이가 많아서 부적당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제롬에게 행복을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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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벨의 설득에 용기를 얻고 알리사를 직접 만나보기 위하여 퐁그스마르
로 떠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얻은 것은 알리사의 서글픈듯하면서 변함없는
마음과 줄리어트의 다른 사람과의 약혼 담이었습니다. 신년 휴가로 제롬이
블랑티에 있는 이모 집에 갔을 때 이모를 통해 알리사가 동생이 결혼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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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하겠다는 결심을 알아냅니다. 알리사의 긴장되고 고통스러운 표정,
자신이 주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 햇던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것을
석연찮게 여기고 병을 앓고 있는 줄리어트를 만납니다. 줄리어트로부터
언니가 자신과 제롬이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제롬은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혼란 속에서 괴로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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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트가 마음에도 맞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려고 할 때 알리사는 거의
절망적인 어조로 애원하였습니다. "제롬, 이럴 수는 없어, 저 아이는 약혼자를
사랑하고 있지도 않은 걸, 제롬, 말려줘!" 하지만 줄리어트는 언니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포도원을 경영하는 에드아르 터시에르와 결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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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학교로 돌아온 제롬은 로베르를 통해서 알리사와 줄리에트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알리사는 제롬에게 줄리어트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군복무 중에도 제롬에게 많은 편지를 보내요.
제롬이 군복무를 마치고 알리사를 처음 만났을 때 둘 사이에는 진한 거리감과
어색함이 감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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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러 손님들 때문에 ,아니 의식적으로 알리사가 피함으로서 제롬은
몇 마디도 주고받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아요. 파리에 돌아온 제롬은 알리사의
편지 속에서 "나에게 너의 사랑은 머리 속 사랑이고 애정과 신의에 대한 지적
인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는 구절을 보고 충격을 받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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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친구이자 가정교사로 제롬을 보살핀 애스버튼이 죽었을 때 제롬은
다시 알리사를 보게 되는데 그러나 여기서도 둘은 침묵만 지키다가 작별
인사도 없이 헤어집니다. 부활절에 만난 두 사람은 전의 상봉 때 보다는
부드러웠으나 역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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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이 "줄리어트도 행복하니 우리도 ..."라고 말을 꺼내자 알리사는 "우리는
행복이 아닌 성스러운 것을 위해 태어난 것"이라며 제롬의 입을 막아요.
그 후 알리사는 제롬에게 덕행을 쌓으라고 편지 합니다. 제롬은 덕행이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며 사람이야말로 나를 나 이상의 위치로 끌어 올려
주는 것이라고 대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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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는 더욱 더 쌀쌀하게 굴었고 일부러 제롬이 좋아하는 물건을 다 치워
버리고 예전에는 항상 공감대를 형성했던 책에 대해서도 별로 흥미 없는 척
굴며 품위가 낮은 책에 대해 언급하자 제롬은 크게 실망합니다. 그러던 차에
아테네 학원의 추천을 받고 아무런 야망도 흥미도 없이 다만 떠난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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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탈출이나 하는 것처럼 당장에 입학을 승낙하고 말아요. 삼년 후 알리사의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두 사람은 상봉하게 됩니다. 그리고서 두 사람은 서로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가를 깨달았으나 이미 알리사는 병들어 있는 몸으로 슬픈
만남을 합니다. 그녀는 제롬에게 제롬의 어머니의 십자가를 내 보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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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의 딸에게 걸어 주지 않겠느냐고 물어요. 그리고 "잘 가! 아니 더 이상
오지 마, 아듀"라고 말하면서 조용히 물러납니다. 후에 줄리어트에게서 제롬
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옵니다. 알리사가 죽었다고, 제롬을 만난 후 알리사
는 몇 가지 가산을 정리한 후 아무도 모르게 요양원에 가서 죽어갔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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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제롬에게 남겨 둔 것으로 일기가 있었어요. 모든 것을 성스러운 것에서
구하고 제롬을 위하여 한 헌신적인 노력, 자기를 규제하려는 여러 가지 성경구절
(좁은 문에 대한)등등에 대해 기록되어있었다고 합니다. 알리사가 죽은 지
10년 이상이 흐른 뒤 제롬은 아들 둘 딸 하나의 엄마가 된 줄리어트를 만나요.
그녀가 "언제 결혼하실 거죠?"라는 물음에 "많은 일들을 잊어버린다면.
그런데 언제까지도 잊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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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의 여주인공인 알리사의 죽음은 이미 여러 연구에 의해 다루어진
주제입니다. 그 선행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알리사의 죽음이
윤리적 결벽증과 광적인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종교적 신비주의나 도그마화된 종교의 위험성에 대한 고발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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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과 주장은 작품의 논리상 충분한 설득력과 타당성을 지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이 앙드레 지드의 자전적 이야기란 점과 그가 문학
작품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무엇보다도 ‘자기구원의 의도’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선행연구의 관점을 바탕으로 알리사의 죽음이 지니는 문학적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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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하고자 합니다. 제 관점은 크게 ‘욕망의 대상과 가치의 문제’ 및 ‘알리사의
죽음이 지니는 문학적 의미’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됩니다. 그 첫 번째 축은
제롬과 알리사의 욕망 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알리사와 결혼을 원하는 제롬의 욕망은 사랑으로 포장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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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그 심층구조에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한편
알리사는 자신이 부도덕한 어머니를 닮았다는 원죄의식 때문에 자기 어머니와
정반대의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진정한 욕망의 대상으로 추구하는 인물
입니다. 두 번째 축인 ‘알리사의 죽음이 지니는 문학적 의미’는 앞서 전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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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을 바탕으로 원죄의 희생자인 알리사의 부조리한 죽음이 역설적으로 독자
들에게 삶의 가치와 지상에서의 행복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를 제공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은밀하지만
결정적으로 알리사의 죽음에 대한 반전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죽은 알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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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에 태어난 그녀의 동생 쥘리에트의 막내딸과 중첩시키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감정은 작품의 마지막 행에서 어둠을 밝히는 빛의 상징으로 연결
됩니다. 이렇게 그녀의 죽음이 지니는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여,
그것을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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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은 아버지를 여윈 후 어머니와 함께 뷰콜랭 외삼촌댁에서 살게 됩니다.
외삼촌 에게는 알리사, 쥴리어트라는 딸과 로베르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제롬은 자기와 비슷한 성격인 두 살 위 알리사를 좋아하게 됩니다.
어느 날 자기 어머니의 부정한 행동 때문에 고뇌에 사로잡힌 알리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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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은 자기의 일생을 결정해요. 즉 자기가 앞으로 하는 모든 일은 알리사를
위해, 그리고 목사님을 통해 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알리사 또한 제롬과 마찬 가지로 모든 것을 제롬을 위해서,
제롬을 통해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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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가톨릭의 교도주의 적 신학에 대하여 지드가 휴머니즘으로 맞서고
있다는것처럼 보여요. 알리사는 잘못된 금욕주의 신앙관 때문에 수도사들마냥
자기를 쳐 복종 시키는 희생을 감수 한 여자이고 제롬(지드)역시 교도주의의
폐단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고 갈등은 하지만 인본주의로 맞선 것은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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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이 암흑기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21세기에 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좁은 문'이란 강요된 희생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자발적인 자기 부정이며 창조의 원리에 맞게 사랑
하고 누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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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과 넓은 문_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_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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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피조 세계 전체를
배려해야 하나이다. 좁은 길을 가지 않으면 멸망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믿기 때문에 내 구원이 안전하다고 생각
하였던 것을 용서 하옵소서. 내게 비와 창수가 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하였사오니 잘 듣고 꼭 행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내 맘대로 살려는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천국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오주님,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으면 주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사오니 이제부터 기꺼이
좁고 협착한 그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특별히 자녀의 진로와 관련해
과외의 유혹을 뿌리치게 하시고 주신 은사를 잘 찾아서 Blue Ocean으로
양육하게 도와주옵소서.
2023.1.30.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