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테로 오는 봄
설날 귀성을 못하고 오는 주말 고향 걸음이 예정되어 있다. 고향을 지키는 일흔 중반 큰형님은 초등학교만 나와도 오래도록 한학에 궁구해 어느 경지 이르렀다. 큰형님은 내 어릴 적 농사일을 하며 서당 훈장 아래서 사서삼경을 독파했다. 그 당시 순수 한학을 정통으로 익힌 분이 많지 않았다. 큰형님은 그간 한문 문장과 한시가 상당한 편수 되어 문집을 펴낼 구상을 하고 계신다.
지난 세밑에 큰형님은 남겨가는 작품들을 한 질 복사해 아우에게 보내왔다. 아우가 시간 나는 대로 문장과 한시를 열람해 워드 잡업을 요청해 왔다. 워드 작업 전에 한문 원전이 쉽게 판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먼저 읽어보고 의문점은 며칠 뒤 큰형님을 찾아뵙고 해결해야 할 입장이다. 생활 속 남긴 한문 문장과 다른 집안 재실 기문이나 비문들이었다. 칠언 절구 한시들도 다수다.
이월 셋째 목요일은 우수 절기였다. 입춘 이후 봄날처럼 포근했던 날씨가 어제부터 급전직하했다. 어제는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한낮 체감온도가 영하권으로 내려갔다. 방한모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껴도 본포 강가로 나가 반월 습지공원을 걸었더니 추위를 심하게 느꼈다. 노변 국밥집으로 들어 곰탕을 받아 놓고 수저를 들었더니 손이 굳어 식사하기 불편을 느낄 정도였다.
목요일 아침나절은 큰형님 원고를 살펴보다 한살림에 주문해둔 메주를 찾아왔다. 우리 집은 아파트라도 장을 담근다. 예전에는 시골 형수님께 의뢰해 메주를 마련했는데 이제 나이가 많아 부탁할 수 없다. 병약한 아내는 음력 정월 장을 담그는데 근년에는 해를 걸러 담그는 모양이다. 메주와 소금을 나르는 일은 내가 돕는다. 나머지 장 담그는 절차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진 바 없다.
날씨가 차가웠지만 점심 식후 산책을 나서 창원 천변을 따라 걸었다. 한낮도 날씨가 추웠는데도 산책 나온 이들이 더러 보였다. 창원천 수변 산책로는 인근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산책을 즐겨 나오는 장소다. 천변에 심겨진 산수유나무는 양지 바른 곳이 아님에도 꽃망울이 제법 도톰해져 가고 있었다. 산수유나무와 나란히 자라는 벚나무의 꽃눈은 아직 부푸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봄방학을 맞아 틈을 내서 여기저기 봄이 오는 낌새를 찾아 나선다. 그 가운데 한 곳이 창원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꽃 양묘장이다. 일 주 전 마산 현동 묘촌으로 나가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봄꽃 양묘장을 들렸더니 비닐하우스에 일을 하던 아낙들이 있었다. 그분들로부터 코로나 감염이 우려로 견학을 허락받지 못해 바깥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발길을 돌려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엔 창원 천변 산책을 나선 김에 명곡교차로 인근 창원농업기슬센터 경내 명서동 양묘장을 둘러보고 싶었다. 반지동 대동아파트단지를 거쳐 유목교 밑을 지났다. 창원천엔 날씨가 추워도 백로와 흰뺨검둥오리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천변을 지나다가 유튜버 방송에 입문해 화초 가꾸기와 창원천 생태를 소개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는 미스트롯 경연대회 중간 평가도 했다.
친구는 올 겨울 지귀상가 근처 유목교 아래 웅덩이에 팔뚝만한 잉어 떼를 보고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왔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회신을 주길 육칠 년 전 그보다 더 아래 홈플러스 근처 용원지하도 부근에서 그런 잉어 떼를 본 적 있다고 했다. 친구 표현을 빌리자면 물속 잉어 떼들이 거름무더기 같다고 해 공감이 갔다. 창원천이 생태 복원이 된 증표이며 잉어는 3급수에도 서식했다.
시티세븐 근처에 닿아 명곡교차로 다리 밑을 지난 징검다리를 건넜다. 목표한 파티마병원 곁 창원농업기술센터로 갔다. 청사 사무실에 볼 일은 없고 비닐하우스 꽃 양묘장을 들렸다. 설 전 현동 묘촌 양묘장보다 더 넓은 면적에 어린 싹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곳 역시 외부인 출입을 통제해 바깥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추운 날씨에 발품을 판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21.02.18